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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의 덫에 걸린 MZ세대]MZ세대, 금융 지식없이 묻지마 단타 투자…정부는 시장 과열 방치해 ‘빚 폭탄’ 키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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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9호 09면

SPECIAL REPORT

2020년부터 주식에 투자해온 초등학교 교사 임모(27)씨는 지난해 3월 해외 상장지수펀드(ETF) 투자에 발을 들였다. 평소 구독하던 유튜브 채널에서 ‘ETF 일단 무조건 사세요’라는 영상을 보고 매달 100만원씩 이른바 ‘무지성(묻지마) 투자’를 결심했다. 임씨는 “내가 공부해서 투자하는 것보다, 유튜브에서 추천해주는 종목을 구매하는 게 더 낫더라”며 “어떤 구조로 수익이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매달 배당금을 준다고 하니 믿고 구매했다”고 말했다. 투자한 종목 이름을 묻자 “매월 자동이체만 하다 보니 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며 “남들 다 사는 유명한 종목”이라고 웃어넘겼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로 ‘빚투’(빚을 내서 투자)한 MZ세대의 현실이다.

MZ세대 90% “금융교육 못 받았다”

주식·부동산·암호화폐 투자 열풍의 중심인 MZ세대는 전 세계적인 양적 완화로 시중에 돈이 풀린 상승장에 재테크를 시작했다. 시장 유동성이 크다 보니 주위에서 재테크로 수익을 내는 사례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각종 미디어에서는 ‘주식 안 하면 바보’ ‘일해서 돈 버는 시대는 끝났다’ 등의 콘텐트가 쏟아져 나왔다. 마치 투자를 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낙오될 것만 같은 분위기가 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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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하지만 일확천금을 노리며 빚까지 내 투자하는 이들을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최근 2~3년간 젊은 세대의 주식, 암호화폐, 부동산 투자가 급격하게 늘어나 시장이 과열된 상황에도 정부는 투자위험을 경고하거나 대책을 내놓지 않은 채 사실상 이들을 방치했다. 이윤우 한국경제교육학회 홍보이사는 “투자에 대한 개념이 불확실한 MZ세대가 일부 투자 성공사례만 믿고 뛰어들다 보니 빚더미에 오르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며 “교육기관에서 금융과 관련된 정보를 접하기도 어렵고, 특히 온라인으로 투자 종목을 찍어주는 ‘리딩방’ 등 비전문가의 투자의견을 맹신하다 하락기에 큰 충격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개념조차 모호한 암호화폐의 경우 정부가 투자와 관련된 규제를 강화하는 등 접근 장벽을 높이는 선제조치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그동안 “암호화폐는 화폐나 금융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암호화폐 시장이 과열되자 지난해 3월 암호화폐 거래소 신고제를 도입하는 등 소극적 조처를 했지만, 투기 열풍은 오히려 거세지며 역풍이 불었다. 5월 테라·루나 사태로 투자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문제가 커지자 뒤늦게서야 투자자 보호를 위한 가상자산 보호법 제정에 나섰다.

테라·루나 코인에 투자해 천만원 단위의 손해를 입은 직장인 김모(32)씨는 “예치만 하면 20%의 연이율을 주고, 자유로운 입출금도 가능하다는 투자 블로거들의 추천을 받아 무작정 돈을 넣었다”며 “50조원에 달하는 시가총액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약 1주일 만에 투자한 돈이 모두 증발했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스테이블 코인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인들의 말만 믿고 투자한 내가 진짜 바보”라며 자책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암호화폐 테라 백서를 보면 투자 위험성은 전혀 기재돼 있지 않고, 낙관적인 얘기밖에 없다”며 “주식시장의 상장폐지 규정 등을 암호화폐 시장에도 마련해야 했는데, 이런 규정이 전무했기 때문에 자본시장에서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애주기별 금융플랜부터 세워야

목돈이 필요한 부동산 투자의 경우 상황이 더 심각하다. ‘영끌’ ‘빚투’를 막겠다며 정부가 수십차례 부동산 정책을 수정했지만, 결과적으로 MZ세대의 ‘패닉 바잉(공황에 따른 매수)’만 부추긴 꼴이 됐다. 정부 정책이 갈팡질팡할수록 집값 거품은 거세졌고, MZ세대 사이에서는 ‘오늘 집값이 가장 저렴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지난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2억원대 아파트 분양권을 매수했던 이모(27)씨는 “대출 규제가 예고될 때마다 언제 (대출이) 다시 풀릴지 모르니 가능한 최대치로 대출을 받아 투자에 활용했다”며 “하지만 당시 구매한 분양권 가격이 최근 하락하고 있는데다 대출이자는 껑충 뛰고 있어 주식투자보다 더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서진형 공동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정부가 ‘영끌’하는 사람들을 투기로 규제하며 죄악시하는 동안 오히려 매수심리는 올라가기만 했다”며 “그 결과 채무 변제 능력이 부족한 청년들까지 주택 매수에 나섰고, 그 부작용이 최근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MZ세대가 충분한 금융 지식을 갖추기도 전에 가진 자산을 몽땅 털어 투자에 뛰어든 결과는 감당키 어려운 빚더미다. 2019년 한국갤럽과 금융위원회가 실시한 ‘금융교육 실태조사’에 따르면 MZ세대(19~39세) 10명 중 9명(91.5%)은 금융교육을 수강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본인의 금융 지식수준에도 확신이 없었다. 20대는 79.9%가, 30대는 62.5%가 본인의 금융 지식이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다. 소비습관도 과거의 ‘티끌 모아 태산’ 만들자던 청년층과는 달랐다. 일반적으로 막 사회에 발을 들인 청년들은 자산 축적을 위해 소비보다는 저축을 선호하는 반면 MZ세대는 중장년층(30%)이나 노년층(25.1%)보다도 소비를 선호하는 것(34.2%)으로 나타났다.

주식과 코인 투자로 큰 손실을 본 MZ세대의 재무상태는 더이상 손을 놓고 지켜만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은 “사기성 코인 등에 대한 적절한 감독 조치가 없어 투자자들의 피해가 확대됐다”며 “코인 투자자 2명 중 1명이 MZ세대인만큼 금융당국에서는 가상자산에 대한 시장질서 감독체제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이 이미 투자에 발을 들인 이상 정확한 투자지식을 쌓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윤우 이사는 “무엇보다 이들에게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시급하다”며 “본격적인 투자 이전에 생애주기별 금융 플랜 등 거시적인 투자계획부터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투자 열풍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쳐오며 우리 사회가 재테크를 비롯한 불로소득에 과도하게 몰입하기 시작했다”며 “사회적으로 큰 도덕적 해이와 근로의욕 상실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노동으로 얻는 소득을 기반으로 장기적 자산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야 하는 타이밍”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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