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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의 덫에 걸린 MZ세대]처음 겪는 주식·코인 폭락장, MZ세대 빚 파산 급증…20대 우울증 127% 늘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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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9호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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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4일 서울 중구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서 주재한 제2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금리 인상의 부담을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후 정부는 청년 빚 탕감 정책을 담은 민생안정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4일 서울 중구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서 주재한 제2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금리 인상의 부담을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후 정부는 청년 빚 탕감 정책을 담은 민생안정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공대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정모(32)씨는 2020년 초부터 암호화폐 투자를 시작했다. 학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들이 높은 연봉을 토대로 국내외 우량주에 투자해 자산을 불려 나가는 것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정씨는 “2~3년 모은 돈으로 전세를 끼고 산 집이 순식간에 두세배로 오르는 것을 보니 이러다가는 나 같은 흙수저 대학원생은 영영 집을 못 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적은 돈으로 높은 수익을 노리다 보니 투자 대상은 코인이나 선물 같은 고위험 상품뿐이었다. 오피스텔을 월세로 돌려 구한 전세 보증금에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에서 빌린 2000만원까지 합친 돈으로 한동안 승승장구했지만, 금리 인상으로 코인과 주식 가격이 급락하자 상황이 반전됐다. 정씨는 “빚을 감당할 수 없어 개인 회생을 신청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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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의 덫에 걸린 MZ세대가 신음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통계에 따르면 20대의 가계대출이 질적으로 악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잘 드러난다. 올해 3월 말 기준 20대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보다 1463억원(0.2%) 줄어든 95조665억원으로 집계됐다. 가계대출 총량규제로 은행이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은행권 대출이 4192억원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 대출은 오히려 2729억원 늘어 27조원에 육박했다. 다중채무자 수도 5000명 줄었지만 유독 20대는 37만4000명으로 5000명 늘었다. 다중채무자는 3개 이상의 금융업체(대부업 포함)에서 돈을 빌린 사람으로 취약 차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자료를 제공한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코로나19로 가라앉은 경기가 회복되기 전에 금리가 급격히 올라 사회초년생의 빚 부담이 과도하게 늘고 있다”며 “청년들의 2금융권 대출과 다중채무를 관리할 수 있는 송곳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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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가 빚잔치를 벌이는 이유는 주식이나 암호화폐에 투자했다가 고금리와 폭락장으로 스노우볼(눈덩이)이 구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으로 갚아야 할 원리금은 늘어나는데 주식과 코인 가격의 급락으로 자산이 급감하면서 빚을 갚기 위해 더 고금리의 빚을 내는 악순환에 빠져든 것이다. 신성현(29)씨는 얼마 전 운영하던 33㎡(10평) 남짓의 카페를 내놓았다. 코로나 사태로 손님이 줄었고, 이때 부족한 생활비를 채우려고 대출을 받아 코인에 투자한 것이 잘못이었다. 신씨는 “4000만원가량 대출을 받았는데 원금, 이자를 합쳐서 매달 100만원 넘게 나간다”며 “한탕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코인에 손댄 건데 살길이 막막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코스피 상장사 넷 중 하나 주가 반토막

실제로 코스피는 지난해 8월 5일 최고가(3296.17)를 찍은 이후 현재 2415.53(27일 기준)로 30% 가까이 떨어졌다.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 종목 938개 가운데 222개(23.7%)는 최근 1년 내 최고가 대비 주가가 50% 이상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40% 이상 떨어진 종목은 455개(48.5%), 30% 이상은 678개(72.3%)에 달한다. 코스피 상장사 넷 중 셋은 30% 이상 떨어졌고 넷 중 하나는 반토막이 난 것이다. 2020년 새로 개설한 증권 계좌 10개 중 6개는 2030세대의 몫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2030 투자자가 유가증권시장의 41%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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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시장은 상황이 더 좋지 않다. 비트코인은 올 상반기에만 60% 가까이 내렸다. 암호화폐 거래 플랫폼인 빗썸은 2021년 49%였던 2030세대의 투자비중이 올 1분기에 62.4%까지 증가했다고 밝혔다. “지금 안 들어가면 늦는다” “월급으로 집을 못사니 투자를 해야 한다”는 분위기에 너도나도 투자를 시작했지만, 된서리를 맞은 셈이다. 지난 5월에는 암호화폐 루나 사태까지 벌어졌다. 116달러(약 150만원)를 넘나들던 가격이 일주일 새 0.0003달러(약 0.39원)로 떨어졌다. 하락세가 시작되기 전 루나의 시가총액이 약 53조원인 점을 고려하면 전 세계 루나 투자자의 피해액은 5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따르면 폭락 사태가 발생하기 전 국내 루나 이용자는 10만명, 보유량은 317만개였다. 1인당 5000만원 가까운 손실을 본 셈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청년층이 투기 성향이 높은 투자에 매달려 짧은 기간에 높은 이익을 얻으려는 모습이 아슬아슬하다”고 우려했다.

이런 손실은 부채 증가와 개인 회생으로 이어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20~39세 가구주의 평균 부채는 9986만원으로 869만원 늘었다. 특히 30대 가구주는 전 연령대에서 유일하게 2020년 대비 부채가 10% 이상 증가했다. 한계를 넘어선 빚을 진 청년들도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30 차주의 9%는 임계수준을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계수준을 초과하는 차주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45.9%를 넘어서 정상적인 생활을 제약하는 경우를 말한다. 전 연령대에서 임계수준 초과 차주 비중이 6.3%인 것과 비교하면 2030세대가 얼마나 빚에 취약한지 알 수 있다.

올 5개월 새 20대 1만5584명 회생 신청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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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투자 손실과 이자 부담이 급증하는 점을 고려하면 2030의 빚은 더 불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그만큼 개인 회생을 신청하는 2030도 늘어났다. 올해 1∼5월 중 접수된 20대 개인회생 신청자 수는 총 1만5584명이다. 월평균 3116명으로 지난해 1,2분기(2954명)를 웃돈다. 전체 연령대에서 2030세대가 차지하는 비중도 2020년 42.2%에서 2021년 45.1%로 증가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20대의 자산대비 부채비율은 40% 이상인 반면 60대 이상은 20%에도 못 미친다. 젊은이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2030세대는 돈을 번 기간이 짧아 소득이나 자산이 40·50대 비해 적을 수밖에 없다”며 “같은 수준의 부채도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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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실패는 심리적인 타격으로 이어졌다. 회사원 김성진(31)씨는 빚이 7000만원까지 불어나면서 최근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 올해 들어 주식에 투자한 원금 5000만원이 반토막 났다.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2금융권, 3금융권까지 빚을 졌다. 월급은 족족 빚 갚는데 빠져나가다 보니 무력감은 점점 심해질 뿐이다. 주변에 힘든 상황을 푸념해도 위로는커녕 ‘그러게 누가 주식하랬냐’ ‘욕심부리지 말지’라고 타박받기 일쑤다. 김씨는 “온전히 내 투자 실패로 얻은 빚이라 누구도 원망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한강 교량에 설치된 ‘SOS생명의전화’를 통해 응어리진 마음을 드러내는 사례도 늘었다. 한국생명의전화에 따르면 올 상반기 ‘SOS생명의전화’ 상담 건수가 지난해 상반기 대비 8% 증가했다. 오혜진 한국생명의전화 상담사는 “과거보다 투자실패에 대한 상담 요청이 많이 들어오는 게 사실”이라며 “SOS생명의전화 뿐만 아니라 개인 휴대전화로도 젊은 목소리의 청년들이 투자 실패와 관련한 우울함을 호소하곤 한다”고 전했다.

코인·주식 투자 실패 상담 요청 급증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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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해 우울증 환자 수가 93만3481명으로, 2017년(69만1164명)보다 35.1%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중에서도 20대가 17만7000명으로 127%, 30대가 14만명으로 67% 각각 증가했다. 다른 연령층에 비해 환자 수도 많고 상승세 역시 가파르다. 물론 경제적 요인이 모든 우울증의 원인은 아니지만, 전문가들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진단한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과 전문의는 “2017년 이후 비트코인이나 주식 투자 실패에 따른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는 20대, 30대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며 “미국은 이미 수년 전부터 투자 실패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청년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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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과 ‘빚투’(빚내서 투자)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시작됐다. 대학원생, 중소기업 직원, 자영업자 등 상대적으로 고정적인 수입이 적은 청년들은 주변에서 투자로 돈을 벌거나, 손실을 보더라도 감당이 가능한 대기업, 전문직 고연봉자들과 비교해 상실감을 느낀다. 서울 상위권 대학의 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중소기업에 다니는 한정원(33)씨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나름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가 아니더라”며 “비슷하게 공부를 해도 이과를 가거나 코딩을 배운 친구들이 나보다 두배 이상의 연봉을 받는 걸 보면 내가 왜 이렇게 힘든 길을 선택했을까 후회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과거보다 절대적인 삶의 수준은 높아졌다지만 준거 집단끼리의 비교가 청년층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고 이야기한다. 개인의 노력으로 자산을 키워가는 것이 당연했던 고성장 시대와는 다르게 저성장 시대에서는 각기 다른 출발점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 전체를 위해 미래 세대를 빚 구덩이에서 건져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빚으로 청년들의 경제 활동이 심각하게 억제될 경우 사회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며 “선별하는 것이 힘들 수는 있겠으나 고금리 사채 시장으로 내몰리는 청년들에 한해 지원하는 것은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빚의 직접적인 면책이나 탕감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있다. 우석진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돈을 벌 때는 내가 이익을 보는데 손해는 면책되면 굉장히 위험한 구조가 될 수 있다”며 “이자율을 낮춰주거나, 빠르게 회생 법원으로 가도록 지원해주는 식의 간접적인 도움을 통해 사회가 책임을 나눠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산업연구원의 김광석 경제연구실장은 “특정 기준에 부합하는 중소기업에 취업할 경우 1% 미만의 정책금리를 적용해주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 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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