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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우 같은 서번트 증후군 극소수, 보편적 자폐증 다뤄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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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9호 24면

[천근아의 세상 속 아이들] 미디어 속 자폐 

2016년도 연말 무렵 영화 ‘증인’을 연출한 감독님과 제작자가 찾아왔다. 시나리오 상 주인공이 자폐 소녀로 설정되어 있어 관련 자문을 받기 위함이었다. 그 전까지 자폐를 주연 캐릭터로 다룬 대표적인 한국 영상물은 영화 ‘말아톤’과 드라마 ‘굿 닥터’ 정도였다. ‘증인’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꽤 다각적이고 입체적인 시각으로 자폐 소녀와 그 주변을 잘 묘사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군데군데 비현실적인 부분들이 있었지만 영화적 허용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열광하고 있다. 영화 ‘증인’과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언론에서는 매주 이 드라마의 시청률 경신 소식을 알리고 포털에는 관련 기사들이 넘쳐난다. 어느 모임에 가던지 ‘우영우’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질문도 많이 받는다. 스토리가 짜임새 있고 박은빈 배우의 열연까지 더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자폐가 어떤 증상을 보이는지, 환자와 가족이 어떤 고통을 받는지 잘 알지 못했던 시청자라면 자폐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편견이 일정 부분 해소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드라마는 순기능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자폐에 대한 대중의 시각이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드라마, 자폐증 편견 깨는 데는 도움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우영우는 천재성과 자폐증을 동시에 가진 변호사다. 영화 ‘증인’ 살인 사건의 목격자인 ‘지우’ 또한 자폐증을 가지고 있다. [중앙포토], [사진 에이스토리]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우영우는 천재성과 자폐증을 동시에 가진 변호사다. 영화 ‘증인’ 살인 사건의 목격자인 ‘지우’ 또한 자폐증을 가지고 있다. [중앙포토], [사진 에이스토리]

1988년도 제작된 영화 ‘레인맨’의 실제 모델인 킴 피크(Kim Peek)는 보통 사람이 3분에 읽을 양을 단 40초 만에 읽고 내용의 98%를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했다고 한다. 이것은 그가 왼쪽과 오른쪽 눈을 좌우 페이지에 각기 맞추고 책을 읽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의 대뇌 좌우를 연결하는 뇌량(corpus callosum)이 결손되어 있었는데 좌우뇌가 서로 영향을 받지 않기에 나타난 비범한 능력이었다. 드라마에서 우영우가 자신의 사무실에 가득 쌓인 방대한 소송자료들을 순식간에 읽어내고 법정에서 변론 도중 자신이 읽었던 문서 몇 문단 몇째 줄에 해당 문장이 있다며 재판부에 상기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킴 피크의 속독 능력과 암기력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우영우와 피크, 굿닥터 주인공 모두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을 묘사한다. 서번트 증후군은 1887년도 영국의 존 랭던 다운 박사가 지능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분야 (미술, 음악, 계산 능력, 시공간 능력 중 하나)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10명의 사례를 관찰하고 그들을 바보 천재, 즉 ‘이디엇 서번트(idiot savant)’라고 명명한 용어에서 유래한다. 훗날 이디엇이라는 용어는 그것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로 삭제되고 서번트 증후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아직까지 서번트 증후군이 얼마나 발생하는 지에 대한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바는 없지만 현실에서는 극히 드물다. 수십 년 전 조사에서 지적장애 또는 자폐증 환자들 1000 명 중 1명 내외에 불과하다고 보고된다.

자폐스펙트럼장애란 ‘사회적 의사소통 능력의 저하’와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과 관심사’를 대표적 증상으로 보이는 신경발달장애이다. 어린 시절의 우영우가 엎드려서 블록으로 줄 세우기를 하고 성인이 돼서도 고래와 그 생태계에 빠져있는 모습은 ‘제한적인 관심사’의 한 증상을 표현한 것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은 12개월 전후 영아기에 양육자와 눈 맞춤을 거의 하지 않고,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지 않고 행동하는 등의 징후를 보인다. 정확한 진단은 대략 만 2~3세 무렵 받는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가족력이 높고 유전적 요소가 근본 원인이다. 유전적 결함이 사회성을 담당하는 뇌 회로에 영향을 끼치면서 다양한 증상들로 발현되는 것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44명당 1명 꼴로 발생한다. 장애의 중증도 또한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정신장애진단통계편람(DSM-5)에서는 중증도를 세 단계로 구분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더 많은 요소들을 고려해서 심각도를 판단해야 한다. 예컨대, 아이의 방문 당시의 나이, 인지수준(지능), 언어능력, 자폐 증상의 심각한 정도를 기준으로 더 구체적인 조합으로 세분화해서 설명한다. 광범위한 스펙트럼 상에서 아이가 현재 어떤 단계에 위치해있는지 파악 후 향후 어느 수준까지의 완화를 목표로 할지 부모에게 설명한다.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지닌 아이 100명이 있다고 가정할 때, 100명의 증상 수준과 치료 방향이 다 동일한 경우는 없다. 중증도 수준이 가장 심각한 자폐증은 성인이 되어서도 말을 제대로 못하고 의사소통이 거의 되지 않는다. 아울러 상황이 자신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거나 기분이 불쾌해지면 괴성을 지르고 자신이나 타인을 공격하기도 한다. 이들을 위한 치료 목표는 조금이라도 문제행동을 완화 또는 제거시켜 잠재되어 있는 다양한 기능을 발휘되게 하여 독립성을 늘리는 것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 10명 중 7~8명은 지적장애와 언어장애를 동반한다. 평균 이상의 지능과 언어 능력을 갖춘 경우는 20~30%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그동안 미디어 속에서 다뤄진 자폐의 모습은 어떨까? 34년 전 ‘레인맨’이 상영된 이후 전 세계 대중들은 자폐증 환자가 서번트 증후군과 같은 특별한 재능을 지녔다고 믿기 시작했다. ‘레인맨’의 주인공 캐릭터가 대중에게 상당히 매력적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2017년도 노달 핸슨 교수는 자폐증을 다룬 전 세계 영화 26개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들은 모든 영화에서 자폐증 캐릭터가 교과서적인 진단 기준의 증상을 다 보여주면서도 대부분이 서번트 기술을 지닌 비현실적인 캐릭터였다고 보고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도 우영우가 진단 기준에 다 부합하는 전형적인 자폐증상을 보여준다. 어느 기사에서 우영우를 연기한 박은빈 배우가 기존 영상들을 거의 참조하지 않고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기준을 참고했다고 말했던 대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영우는 전형적인 자폐증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IQ가 164인 천재로 묘사된다. 현실에서는 전형적 자폐 증상을 지닌 경우에 지능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수준 높은 사회적 의사소통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요구하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는 어렵다. 내가 아는 한 변호사로서의 역량은 단순히 시각적 암기와 기억력만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실에서 정상적 지능의 고기능 자폐스펙트럼 환자들은 성장하면서 스스로 사회적 학습과 시행착오적 경험을 통해 후천적으로 사회성을 습득하여 겉으로는 자폐 증상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즉, 성인이 되어서도 전형적인 자폐 증상을 보이면서 천재적인 캐릭터는 현실적으로는 존재하기 어려운 모습인 것이다. 우영우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학의 동물학자 탬플 그랜딘 교수는 1947년생으로 현존하는 고기능 자폐증 환자이다. 그녀는 시공간 분석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났고 동물의 감각을 이해하는 남다른 능력으로 도축장 설계도를 인도적으로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랜딘 교수의 일대기는 영화로 제작되었고 실제 인물이라는 점에서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영화 ‘레인맨’ 이후 서번트 환자 부각

영화 ‘레인맨’은 실제 자폐증을 가지고 있는 ‘킴 피크’를 모델로 제작됐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레인맨’은 실제 자폐증을 가지고 있는 ‘킴 피크’를 모델로 제작됐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웨인 주립대학교 특수교육학과 레싸 교수는 올해 논문에서 “오늘날의 미디어는 일반 대중들에게 어필이 될 만한 자폐의 특별한 재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꼬집었다. 현대 미디어가 과거에 비해서 자폐증을 희화화하지 않고 훨씬 긍정적이고 다각적인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사한 지점이 있다. 그러나 천재적 능력이 있는 고기능 자폐만을 주로 다룸으로써 대중에게 자폐증에 대해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를 제공하는 측면이 있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중증도가 높은 자폐증은 거의 묘사되지 않는다. 그것을 의식해서였는지 드라마 에피소드 중 형을 상해 치사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중증 자폐증 청년 정훈이가 등장한다. 그리고 정훈이 어머니가 우영우에게 하는 대사는 자폐스펙트럼장애의 다양한 모습을 전달하려는 제작진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변호사님도 정훈이도 똑같은 자폐인데 둘이 너무 다르니까 비교하게 되더라구요. 자폐가 있어도 머리 좋은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듣긴 했는데, 이렇게 실제로 보니까 마음이 이상했어요. 자폐는 대부분 정훈이 같잖아요....” 정훈이와 같이 보편적인 자폐스펙트럼장애 환자가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과 그 부모와 형제의 마음을 잘 담아낸 또 다른 작품이 나와주면 좋겠다.

천근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의과대학 자폐연구센터 객원교수 역임. 서울시교육청 자문위원, 가정법률상담소 교육위원, 법무부 여성아동정책심의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홍보이사로 활동중이다. 저서로는 『아이는 언제나 옳다』, 『엄마 나는 똑똑해지고 있어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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