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들어요, 내 말 듣고 답을 해요!”(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실과 다른 내용을 퍼트리지 않습니까!”(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2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선 야당 의원들과 감사원의 실세로 불리는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거칠게 충돌했다. 감사원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군사법원 업무보고를 위해 열린 회의였지만 ‘신스틸러’는 유 사무총장이었다. 야당 의원들의 공세에 유 사무총장은 “저는 평생 누가 시킨다고 뭘 하거나 하지 않는다”며 맞섰다. 질의 중에 뒷목을 잡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별개로 최재해 감사원장은 “올해 하반기 공수처에 대한 기관운영 감사에 착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공수처 설립 뒤 첫 기관 감사다. 최 원장은 “공수처의 통신조회 등 인권 수사 관련 문제점이 많다”는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의 지적에 “잘 검토해보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공영방송 감사에 대해서도 "공익 청구가 들어와 검토 중"이라며 감사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반기에도 감사원과 야당 간의 공방이 불가피 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불편한 관계인 유 사무총장과 야당 의원들 간의 충돌은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서 시작됐다. 김 의원은 최 원장 뒷자리에 앉아있던 유 사무총장을 “실세 총장이라 소문이 나 있다”며 불러세웠다. 곧바로 3년 전 유 사무총장이 응급실에서 의료진을 폭행해 입건됐다는 기사를 스크린에 띄웠다. 김 의원이 질의를 시작하려는 찰나, 유 사무총장은 바로 “100% 오보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김 의원의 말을 끊고 반박했다.
박범계 질의에 뒷목 잡고 버럭한 유병호
유 사무총장의 언성은 박범계 민주당 의원과의 질의에서 더 커졌다. 두 사람은 2년 전 국회에서 여당 의원과 정권에 찍힌 월성원전 감사 담당 국장으로 마주했던 구면이다. 그땐 박 의원의 일방적진 질타가 이어졌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달랐다. 박 의원은 유 사무총장의 의료진 폭행 무혐의 처분에 대해 “검찰의 봐주기가 있었다”고 주장했고, 유 총장은 “그땐 문재인 정부였다”고 받아쳤다.
▶박범계 의원=“끝까지 들어요. 내 말 듣고 답을 해요!”
▶유병호 사무총장=“사실과 다른 내용을 퍼뜨리지 않습니까!”
▶박범계 의원=“검찰과 감사원 간의 협의체가 있어 사건을 무마했다는 것이 제보 요지입니다.”
▶유병호 사무총장=“문재인 정부였습니다. 제가 미운털이 박혔는데 누가 봐주겠습니까?”
▶박범계 의원=“알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유병호 사무총장=“의원님 말씀은 의원님 몫이고요. 전혀 사실관계가 다릅니다.”
두 사람의 질의 뒤 여야 의원 간의 충돌도 이어졌다. 마이크를 잡은 김남국 민주당 의원이 “조수진 의원이 (질의 중) 박수를 치고 브이자를 그린다. 어떤 의미로 하신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고, 조 의원은 “야당이 됐으면 부끄러울 줄 알라”며 반박했다.
유병호 “권익위 제보에 묵과 못할 내용 담겨”
이날 여야 의원들은 감사원과 공수처를 둘러싸고도 공방을 벌였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최근 감사원이 전현희 권익위원회위원장을 겨냥해 시작한 특별 감사를 언급하며 “제보를 받고 시작하지 않았느냐. 야당 정치인, 권익위원장을 타깃한 감사가 아니냐”고 최 원장을 몰아붙였다. 이에 대해 유 사무총장은 “제보 사항에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내용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권칠승 민주당 의원도 전날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감사원에 권익위 감사를 의뢰하겠다”고 한 발언을 언급하며 “윤핵관이라는 모 의원이 지적하니까 바로 권익위에 감사 자료 요청이 들어간 것이 우연일 수 있겠느냐”고 했다.
이에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최 원장에게 백현동 비리의혹 감사를 언급하며 “백현동 사건의 가장 중요한 책임자이자 모든 특혜를 주었을 것으로 의심되는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에 대해선 별도의 수사 요청을 하지 않으셨다”고 야당을 겨냥한 질의를 했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도 “이재명 의원만 빼고 공무원 세 명에 대해서만 배임 혐의로 수사를 의뢰한 게 상식적이냐”고 물었다. 최 원장은 “저희가 감사 결과 거기까지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렇게 했다”고 답했다.
“감사원은 대통령 국정운영 지원기관” 발언 논란
이날 회의에선 최 원장이 “감사원은 대통령 국정운영 지원 기관이라 생각한다”고 답변한 것을 둘러싼 논란도 이어졌다. 최 원장은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의 “감사원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인가”라는 질문에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감사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지만 법률상 직무에 관한 독립적 지위를 갖는 헌법기관이다. 최 원장의 답변에 김도읍 법사위원장이 “저도 귀를 좀 의심케 하는데 조정훈 위원의 질의 때 답변을 충분하게 못 하신 것 같다”고 재차 질의하며 발언을 수정할 기회를 줬다. 이에 최 원장은 “대통령이 국정을 잘 운영하도록 감사원이 도와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 기관이냐는 것으로 받아들여서 그렇다고 말씀을 드렸다”고 비슷한 답변을 내놨다. 야당 의원들은 “감사원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흔드는 발언”이라며 강력히 반발했고, 민주당에선 별도의 논평에서 “최 원장은 감사원법을 부정한 발언에 책임을 지고 감사원장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