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방지' 블라인드 오디션 도입한 교향악단, 결과는 뜻밖[BOOK]

중앙일보

입력 2022.07.29 14:00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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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이후의 세계
김정희원 지음
창비

'공정'이 중요한 화두인 시대, '공정하지 않다'는 비판은 때론 전가의 보도처럼 쓰인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해관계를 가치중립적으로 포장하거나 상대방이 논의에 참여할 기회를 박탈하기도 한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를 특정 집단에 의해 의미가 왜곡되는 현상인 '담론적 폐쇄'로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횡행하는 '공정성' 담론과 모델은 개인책임, 각자도생, 능력주의와 결합해 "구조적·역사적 불평등을 무화시키고, 개인의 노력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사회적 맥락의 효과를 지워버리는 원자화 모델"이다. 저자는 이런 '개별주의적 존재론'이 결국 "분열과 경쟁을 더욱 악화시킬 뿐 아니라 불평등을 정당화한다"고 비판한다.

책에는 여러 분야의 학문적 개념과 함께 한국과 미국의 다양한 사례가 나온다. 과학고 등 여러 영재학교 신입생의 절반 이상이 서울 대치동의 같은 학원 출신이라는 보도, 미국 클래식계의 블라인드 채용이 가져온 결과는 절차적 공정성 이전 단계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뉴욕필은 신입 단원 채용에서 인종차별을 받았다고 두 흑인 음악가가 소송을 제기한 이후 오디션 과정에 가림막을 쳤다. 결과적으로 0%나 다름없던 여성 단원 비율은 꾸준히 늘어 최근에는 50% 수준에 이른다. 반면 흑인 단원은 여전히 손꼽을 정도로 적다.

저자는 블라인드 채용이나 소수자 배려 선발도 궁극적 해답이 아니라 차별과 불평등을 완화하는 임시적이고 잠정적인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명문대 등에서 소수자를 배려하는 '다양성 선발'은 학벌주의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렇게 선발됐다는 '꼬리표'가 또 다른 차별과 모욕을 낳는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방점은 '공정'을 넘어 '보편적 정의'로 향한다. 비례적 정의에 반대되는 개념이자 물적·사회적 분배정의의 적극적인 실현을 가리킨다. 책은 직장 같은 조직 내 정의도 비중 있게 다룬다. 우버의 창업자가 그랬듯, 유능하다는 이유로 폭언과 갑질을 묵인했던 실리콘밸리나 미국 기업들의 달라진 분위기와 함께 정의에 대해 한결 세분화된 개념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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