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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금리역전, 정부 당장은 괜찮다지만…지켜봐야할 숫자들 [view]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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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미국 Fed가 물가를 잡기 위해 지난 6월에 이어 또 한번 '자이언트 스텝'을 밟았다. 한국과 미국간의 기준금리는 2년 반만에 역전됐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로이터=연합뉴스

27 미국 Fed가 물가를 잡기 위해 지난 6월에 이어 또 한번 '자이언트 스텝'을 밟았다. 한국과 미국간의 기준금리는 2년 반만에 역전됐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정책금리가 한국의 기준금리를 앞질렀다. 27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물가를 잡기 위해 지난 6월에 이어 또 한 번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으면서다. Fed의 맹렬한 긴축에 미국 정책금리(연 2.25~2.5%) 상단은 먼저 금리인상 시동을 켠 한국의 기준금리(연 2.25%)를 추월했다. 2020년 2월 이후 다시 나타난 한미 금리 역전이다.

이 국면은 한동안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은행이 다음 달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면 한ㆍ미의 금리 상단(연 2.5%)은 같아지지만, 통화 긴축 고삐를 바짝 죈 Fed에 다시 역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한은이 올해 세 차례(8ㆍ10ㆍ11월) 금통위에서 최소 두 번 0.25%포인트씩 금리를 올려 연말 금리가 연 2.75~3%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이 27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올해 연말 미국의 정책금리 상단(3.5%)과 비교하면 최대 0.75%포인트 차이가 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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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지면 국내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우려가 커진다. 외국인 투자자가 고수익을 위해 금리가 더 높은 미국으로 자금을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며 기축통화국이다. 안전한 시장으로 꼽히는데 금리까지 높다면 투자자가 몰릴 수밖에 없다. 국내 주식 등 자산을 파는 외국인의 ‘셀코리아’는 달러 수요를 늘려 원화가치 하락(환율 상승)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금융시장 변동성은 커지고, 원화가치 하락으로 수입품 가격이 뛰면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과거 역전기 해외 자금 유입”

정부와 한국은행은 ‘한미 금리가 역전되더라도 대규모 자금 유출 가능성은 적다’고 선을 그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8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Fed의 결정은 대체로 시장에 부합하는 수준”이라며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자금은 금리보다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이나 글로벌 이벤트에 대한 적절한 대응에 영향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13일 금통위 정례회의 직후 “과거에도 금리가 역전된 경우가 있었고, 단순히 (금리) 격차보다 자본ㆍ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과거 한ㆍ미 금리가 역전됐던 3번의 시기에 외국인 자본(주식+채권)은 오히려 순유입됐다. LG경영연구원과 한은 통계 등에 따르면 1999년 6월~2001년 3월(174억 달러), 2005년 8월~2007년 8월(347억 달러), 2018년 3월~2020년 2월(165억4000만 달러) 등으로 모두 약 686억 달러 상당이 유입됐다. 다만 주식만 놓고 보면 두 번째 역전 시기인 2005년에 231억 달러, 세 번째 역전 시기인 2018년 53억7000만 달러 정도가 빠져나갔다.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3고 덮친 현재는 침체 불씨 될 수도”

다만 고물가ㆍ고금리ㆍ원화 약세(고환율) 삼중고가 겹친 지금은 과거 역전기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시각도 있다. 국내외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금리 역전이 자본 유출은 물론 경기 침체의 불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로 올해 원화가치는 약세다. 2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당 원화값은 1296.1원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보다 17.2원 올랐지만(환율 하락) 연초(달러당 1191.8원)와 비교하면 7개월 사이 100원 넘게 하락했다. 이달 15일엔 13년 2개월 만에 장중 한때 1320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원화 약세가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증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관세청에 따르면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는 원화 약세에도 지난 4월부터 3개월 연속 적자다. 이달 들어서도 지난 20일까지 81억 달러 적자를 기록해 4개월 연속 적자를 낼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급등과 원화값 하락으로 수입액은 많이 늘어난 반면 수출 증가율은 둔화한 영향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과거 금리 역전기엔 원자잿값 등 교역 환경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며 “무역수지 적자는 달러 유출로 원화 가치가 하락하고, 수입 물가를 끌어올리면서 소비 심리까지 위축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금리 역전이 장기간 지속하면 자본 유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가 역전되면 바로 자본 유출로 이어진다고 보긴 어렵지만, 장기간 금리 격차가 0.75%포인트 이상 나면 리스크(위험)가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한국 국채를 산 외국인 투자자가 만기가 돌아오면 재투자하지 않고 수익률이 높은 미국으로 떠날 수 있다는 게 안 교수의 설명이다.

한은, 추가 빅스텝 가능성은 작아  

시장의 관심은 한은이 다음 달 25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추가 빅스텝에 나설지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7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가 끝난 후 ‘8월 빅스텝을 단행할 수 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다음 금통위 때 말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한은은 이달 13일 기준금리를 1.75%에서 2.25%로 인상했다. 소비자 물가가 1년 전보다 6%로 치솟자 첫 빅스텝을 단행했다. 전문가들은 한미 기준금리 역전은 이미 예상했던 시나리오였던 만큼, 한은이 연속 빅스텝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분석한다.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대출금리가 뛰면서 가계와 기업의 부담이 커지고 경기가 침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도 지난 13일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당분간 금리를 0.25%포인트씩 점진적으로 인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금융권이 전망하는 연말 기준금리 수준(연 2.75~3%)에 대해 “합리적 전망”이라고 평가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은의 긴축 속도나 보폭이 자칫 소비위축 등으로 급격한 경기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한미간의) 금리 격차는 물론 물가와 고용 등 경기 여건을 충분히 고려해서 통화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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