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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비핵화 위해 북한이 우려하는 안보문제 다룰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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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정용수 기자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권영세 통일부 장관의 대북 구상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

정전 협정 체결 69주년이던 지난 27일. 서울 남북회담본부에서 만난 권영세 통일부 장관의 윗입술 오른쪽에 흉터가 보였다. 과로로 인해 입술에 생긴 물집이었다. 남북대화는 중단됐지만 취임 후 업무 파악과 대통령 업무 보고, 그리고 ‘담대한 계획’으로 불리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 그림을 그리고, 북한 어민 강제 송환 문제 등이 맞물려 돌아간 ‘정중동(靜中動)의 흔적’이다.

중앙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권 장관은 정상화와 원칙, 그리고 대화·협력을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단순한 과거의 답습이나, 전면 부정이 아닌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되 성과를 이어받는 ‘진화한 이어달리기’를 하겠다는 뜻이다.

원칙에 입각하면서도 유연하고 실용적 정책 추진할 것
북이 요청하면 필요한 만큼 식량·보건·의료 지원
국정원이 남북대화·협상 관여하는 건 이상한 상황
남북대화와 별개로 종교계 등 민간 교류 적극 권장
북, 핵 실험하면 미·일·EU와 별도의 제재 추진할 것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지난 27일 중앙일보와 만나 정부의 대북 정책 구상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대화와 교류 협력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우상조 기자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지난 27일 중앙일보와 만나 정부의 대북 정책 구상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대화와 교류 협력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우상조 기자

어민 북송 문제가 향후 남북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헌법과 법률에 따라 처리해야 하는 문제다. 그걸 북한이 뭐라고 할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 그동안 북한과 대화를 위해 원칙을 훼손하고 양보하며 뒤섞인 측면이 있다. 대화를 할 때 하더라도 우리의 원칙과 기본에 관한 부분은 원칙대로 가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원칙에 입각하면서도 실용적이고 유연한 대북 정책을 추구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의 태도를 북한에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에 있어 뭐가 원칙이고, 뭐가 유연한 것인가.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다. 그러나 대화나 협상과 관련해서는 유연하게 가져갈 계획이다. 보수층이 반발하고 있지만 북한의 방송과 언론을 우리가 먼저 개방할 의도가 있다. 특히 인도적인 부분은 북한의 태도와 상관없이, 외부적인 정치·군사적인 상황과 관련 없이 협력할 수 있다.”
대북 지원을 염두에 둔 것인지.
“보건·의료 부분에 있어서는 북한이 필요하다고 하는 만큼 협력할 생각이다. 그 과정에서 제재 면제가 필요하다면 추진할 수도 있다. 북한이 요청한다면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 지원도 가능하지 않겠나. 결국 그게 신뢰를 쌓는 길이고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과 전염병 창궐, 가뭄 등으로 올해 북한의 식량 생산량이 악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도 북한에선 자연재해 등으로 식량 생산량이 줄어 올해 추수까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최근 ‘월드 팩트북’을 통해 북한의 식량 부족 규모를 약 86만t으로 추정했다. 북한 주민들이 2개월가량 소모하는 양이다.

현재 수립 중인 담대한 계획이 그건가.
“담대한 계획이란 건 북한이 비핵화를 할 경우, 말 그대로 담대하게 지원을 해주겠다는 거다. 거기에 플러스가 있다. 북한은 ‘소위’ 안보 우려라고 하는데, 북한이 주장하는 안보 우려 부분까지 다루겠다는 것이다. MB정부 때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북한이 안보 우려 때문에 핵을 만들었다고 하니 이 부분을 없애면 북한의 핵 개발 명분이 사라질 것이다. 안보 우려 해소를 위해 무슨 조치를 해야 하는지 대화에서 북한에 물어보고 싶다. 북한과 대화가 없는 상태에서 담대한 계획을 작성중이라는 게 아쉽다. 북·미관계 개선도 얼마든지 도와줄 용의가 있다.”
남북 대화를 공개적으로 제안했지만 북한의 응답이 없다.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복안이 있다면.
“창의적인 방안을 고민 중이다. 아무리 유명한 셰프가 진수성찬을 차려도 먹는 사람이 안 먹으면 끝이다. 민간이 먼저 대화의 문을 열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정부가 적극 뒷받침할 생각이다. 진보 정부 때도 민간 교류에 제한이 있었다. 정부가 주도한 탓이다. 특히 종교계의 교류는 정치색이 없으니 적극 권장할 것이다.”

북한은 권 장관과 인터뷰 다음날인 28일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공세를 퍼부었다. “대북 선제타격 등 위험한 시도에 나설 경우 전멸할 것”이라는 위협도 했다. 권 장관은 28일 통화에서 “위협적 언동으로 자신들이 원하는걸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오산”이라면서도 대북 지원과 관련해선 인터뷰 당시와 입장이 변한 게 없다고 했다. 단, 권 장관은 북한의 무력 행동에 대해선 단호한 대응을 예고했다.

북한의 7차 핵실험 준비 상황은.
“물리적인 준비는 어느 정도 돼 있다고 본다. 정치적인 결단에 달렸다. 단, 중국이 북한의 핵실험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업무보고에서 북한의 무력 도발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수단이 있나.
“핵과 미사일은 다르다. 미사일과 관련해선 일부 국가(중국·러시아)가 추가 제재에 호응하지 않았지만 7차 핵실험을 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설령 유엔 안보리 차원의 추가 제재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한국과 뜻이 같은 미국·일본·유럽연합(EU) 등과 별개의 제재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재임 중 역점을 두는 다른 부분이 있나.
“국가정보원과 통일부의 역할 분담이다. 지금까지 통일부는 국가안보실이나 국정원에서 결정한 정책을 집행하는 성격이 강했다. 통일부가 단순히 집행부서 정도가 아니라 콘텐트 자체를 통일부에서 만들고 (정책의) 방향도 통일부에서 정해야 한다. 정보 수집과 필요에 따라선 공작을 해야 하는 국정원이 대북 협상과 대화에 관여하는 건 이상하다. 7·4 남북 공동성명 때부터 정보기관이 남북대화에 관여한 건 잘못된 부분이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돌리는 게 정상화다. 또한 여와 야를 설득해 국민적 공감대를 통한 대북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나 이선권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선 남과 북이라도 대화하고 협력해서 서로 헤쳐 나갈 필요가 있다. 북한이 대화에 나서 남북관계가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게 협력하길 바란다.”  

“북송 어민, 한국 형사법으로도 처벌 가능”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2019년 11월 강제 북송된 북한 어민 2명과 관련, 한국에서 재판을 했다면 최소 징역 20년 형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권 장관은 “최근 사형을 선고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형량도 다소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며 “그러나 (북송된 어민이 동료선원) 16명을 살해했다면 무기징역이나 수십 년 징역형을 피할 수 없다. 범죄가 경합(동일한 대상에 대하여 같은 효력을 가지는 권리가 중복)이 되면 가중처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각에선 증거가 부족하고, 국내에서 처벌이 쉽지 않다는 견해가 있다”며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과거 탈북자를 유인해 북한에 넘긴 사람을 처벌한 사례도 있고, 내가 법률가인데 한국의 형사법으로 충분히 처벌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이 자백했다면 한 명의 진술은 자백이 되고, 다른 한 명의 진술은 보강증거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선을 정밀 조사해 혈흔이 나온다면 처벌 증거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게 권 장관의 입장이다.

특히 권 장관은 어민 북송시 유엔군사령부 소속의 병사(유엔사 판문점 경비대대)가 다른 사례와 달리 보이지 않는 건 유엔사가 가담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유엔사가 당초 단순 북송으로 판단하고 어부와 한국 관계자의 판문점 출입을 허가했지만, 포승줄에 묶이고 북송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고 경비 병력이 철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연철 당시 통일부 장관의 페이스북 내용에 대해선 “정치적이고, 정책적으로 (북송을) 판단할 수는 있지만 법리적으로는 북송의 근거가 없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 전 장관은 미국에 거주하는 자녀를 만나고 귀국한 뒤 27일 “해설자료(2019년 11월 15일)와 국회 상임위에서 충분하고 상세하게 설명을 했기에 그동안 일체 대응하지 않았다”며 “통일부의 업무영역은 공개적이고 투명하다. 법률자문관을 비롯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했기에 덧붙일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단, “16명을 살해한 흉악범을, 남북간 사법 공조가 불가능하고 대한민국 법률 체계에서 이들에 대한 처벌이 가능한가”라며 “결과적으로 풀어주자는 현 정부의 주장에 동의할 국민은 많지 않을 듯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권 장관은 “절대,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나도 법률가지만 어디를 찾아봐도 합당한 법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 흉악범이니 돌려보내야 한다는 건 전형적인 전체주의적인 사고방식이다. 소위 진보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라면 앞장서서 반대했어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그는 3년 전과 사실관계가 달라진 건 없지만 “진보라고 자처하는 문재인 정권에서 본인의 귀순 의사와 달리 이들을 북송한 건 놀랍다”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어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통일부가 이념 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것과 관련해 권 장관은 “사회가 양극화하며 진영논리만 남았다. 바름과 정의가 없어진 것 같다. 북송 어부 문제를 다시 다루는 게 이를 바로잡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로 통일부가 중심에 서는 게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탈북자 북송)의 어떤 준거가 돼서는 안된다. 인권과 기본적인 원칙과 관련된 부분이라면 정치적인 논쟁에 휘말릴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