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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측근에 엄하라는 다산의 지혜…불공정 판치는 오늘에 큰 가르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이 26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를 찾았다. 그가 다산의 서신들을 묶어 편역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 실린 다산의 초상화와 다중촬영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이 26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를 찾았다. 그가 다산의 서신들을 묶어 편역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 실린 다산의 초상화와 다중촬영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다산(茶山)은 『목민심서』에서 공정하고 청렴하면 나라 걱정이 없다고 했습니다.”

다산 정약용(1762~1836) 연구에 일생을 바쳐온 박석무(80) 다산연구소 이사장의 말이다. 그가 2004년 6월 다산연구소 창립과 함께 연재를 시작한 ‘풀어 쓰는 다산 이야기’는 다음 달 1일 1200회를 맞는다. 그가 다산의 사상을 토대로 현재의 정치·사회 세태를 바라본 글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때는 직언하지 않은 청와대와 여권을 다산의 저서 『목민심서』 사례에 빗대 “무개념의 내시정권, 환관정부”라 비판했고,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땅투기, 대장동 의혹이 터진 시점엔 “관(官)에서 아전과 함께 장사하며 아전을 놓아 간악한 짓을 시키니 온갖 질고 때문에 백성들이 편할 수가 없다”고 했던 다산의 편지글을 인용해 질책했다. ‘풀어 쓰는 다산 이야기’를 뉴스레터로 받아 보는 구독자는 36만명에 이른다.

26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만난 그는 “세상은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변화한다”면서도 공권력에 대해서는 “부패의 단위가 커지고 교묘하게 들키지 않는 방법이 발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사와 재판의 불공정도 지금 큰 문제입니다. 법원을 못 믿고 검찰 등의 수사를 못 믿죠. 공정한 나라라고 볼 수 없어요. 다산이 많이 쓰는 이야기에 ‘법을 적용하려면 최측근으로 시작하라’란 말이 있어요. 가족, 친척, 아내, 부모, 형제…. 이들의 잘못은 눈감아주고 남들만 수사하고 재판하면 법이 아니죠. 다산의 지혜가 지금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는 다산 사상의 정수로 이론을 넘어선 실천적인 실학 정신을 꼽았다. “어질 인(仁)자만 해도 주자(송나라 유학자)는 ‘이치’로 봤는데 그러면 행동이 안 나오잖아요. 다산은 ‘사람(人)이 둘(二)’이라 봤어요. 두 사람 사이에 잘하는 일이 인(仁)이라는 거죠. 변화하고 개혁해서 나라다운 나라가 되고 인간다운 인간이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실학의 묘미예요. 그대로 두면 나라가 망합니다.”

전남 무안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가 다산을 처음 접한 것도 4·19혁명을 직접 겪은 고등학생 때 월간지 ‘사상계’를 보고서다. 그는 어릴 적부터 한문 공부를 한 덕에, 변변한 한글 번역서가 없던 시절부터 다산의 저술을 한문 원문으로 읽고 연구했다. 1971년 논문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으로 전남대 법과대학원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3·14대 국회의원(평화민주당)을 거쳐 실학박물관 석좌교수, 성균관대 석좌교수, 고산서원 원장을 지냈다. 그가 펴낸 저서 20권도 대부분 다산 관련 내용이다. 다산의 귀양살이 시기 속 깊은 서신들을 엮어낸 번역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와 『목민심서』를 요즘 관점으로 풀어 쓴 『목민심서, 다산에게 시대를 묻다』 등 스테디셀러가 많다. ‘풀어 쓰는 다산 이야기’도 책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세계 3대 고전이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 다산의 『목민심서』,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죠. 두 고전은 세계사를 움직였는데 왜 『목민심서』는 우리 국가도 움직이지 못했을까요? 우리 정치가 무관심해서죠. ‘200년이 지났으니까 이제라도 우리 정치, 행정에 반영하자.’ 일반 사람들에게도 ‘최소한 『목민심서』 한 권이라도 읽고 다산의 정신을 실천에 옮기자.’ 죽을 때까지 이 말만 하다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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