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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정유사에 ‘횡재세’ 과세 필요할까…기름값 진실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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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리시 수낙 영국 재무장관이 지난 5월 의회에 출석해 에너지 기업에 대한 초과이윤세 도입 등 물가 안정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탈리아, 영국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은 고물가를 잡기 위해 에너지 기업에 초과이윤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AP=연합뉴스]

리시 수낙 영국 재무장관이 지난 5월 의회에 출석해 에너지 기업에 대한 초과이윤세 도입 등 물가 안정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탈리아, 영국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은 고물가를 잡기 위해 에너지 기업에 초과이윤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AP=연합뉴스]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기름값이 최근 보합세를 보이고 있다. 여전히 높은 가격이지만 두 번에 걸친 유류세 인하와 국제 유가 하락으로 조금은 안정되는 분위기다. 이른바 ‘횡재세(초과이윤세)’ 도입 논의는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기름값에 민감한 소비자가 많다.

특히 횡재세 논란이 반향이 컸다. 횡재세는 영어로 ‘windfall tax’라고 부른다. ‘바람에 떨어진 과일’처럼 기대하지 않은 행운을 가리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원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원유 시추를 독점하는 유럽·미국 글로벌 석유회사가 20% 넘는 영업이익을 누렸다. 이에 따라 특별한 노력 없이 ‘떨어진 과일’을 주운 ‘오일 자이언트’에게서 초과이윤을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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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4대 정유사도 지난 1분기 4조7668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불과 2년 전 분기당 1조원 가까운 손해를 봤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반전이다. 유가가 급등하면서 국내에서도 초과이윤세 주장이 제기됐던 배경이다. 기름값은 어떻게 형성되며 정유사들이 일부 주장처럼 노력 없이 큰돈을 벌게 된 걸까. 팩트체크 형식으로 기름값의 진실을 풀어봤다.

국내 기름값은 얼마나 비싼가.
먼저 기름값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내 기름값은 국제 제품 가격에 기반한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석유 시장을 자유화한 미국·일본·유럽연합(EU) 등에선 싱가포르 현물시장의 국제 가격(MOPS)에 내수 가격이 연동한다. 산유국에서 원유를 들여와 정제해 판매하기 때문에 실제 원유는 30~40일가량 이전 가격으로 구매하지만 국내에서 판매하는 제품 가격은 국제 제품 가격과 거의 동일하다는 의미다. 
나라마다 가격이 다른 건 세금 체계가 달라서다. 지난 18일 기준으로 국내 휘발유 가격은 L당 2026.2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 평균(2517.9원)보다 낮은 수준이다. 영국(2923.9원)이 가장 비싸고 오스트리아(2723.6원), 이탈리아(2655.1원)도 한국보다 비싸다. 유가가 저렴한 편인 미국(1677.8원),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일본(1638.9원) 정도가 한국보다 기름값이 싸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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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사들은 폭리를 취하고 있나.
정유사의 영업이익률은 평균 2~4%대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국내 정유 4사는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급감, 사우디-러시아 간 유가 전쟁 등으로 5조원 넘는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소비자가 주유소에서 사는 제품 가격은 정유사의 이익구조와 큰 관계가 없다. 중동 등 거리가 산유국에서 원유를 도입하다 보니 재고 가격에 따라 손익이 발생하긴 하지만 단기적인 변화일 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원유 시추를 하지 않는 국내 정유사들은 원유를 들여와 정제한 뒤 제품으로 판매하는 ‘정제마진’에 수익이 좌우된다. 실제로 국내 정유사의 수익 가운데 재고 관련 이익을 제외하면 1분기 영업이익률은 6% 정도 된다. 
문제는 정제마진이 하락세에 접어들었단 점이다. 2분기에도 정유사는 호실적을 이어가겠지만, 이는 정제마진이 좋았던 덕분이다. 정제마진은 최근 급락하는 추세다. 지난달 넷째 주 배럴당 29.5달러에 달했던 정제마진은 이번 주 3.6달러까지 떨어졌다. 조만간 유가가 상승하면 정제마진이 마이너스(-)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고유가와 물가상승에 따른 수요 위축, 글로벌 경기 하락 때문이다. 3분기부터 유가가 떨어지면 재고 손실도 반영될 전망이다.  
초과이윤세 부과해야 하나.
국내 정유사는 정제마진으로 수익을 보는 구조다. 더욱이 국내 정유사는 원유 가격, 국제 제품 가격 등 외부적 요인에 따라 경영 환경이 급변한다. 현재의 고유가 상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친환경 사업 전환에 따른 정유업 투자 감소 영향으로 전 세계적 수급이 불균형해진 탓이 크다. 일시적 가격 상승에 대해 초과이윤세를 부과하기엔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이 세금이 높아지면 정유사는 공급을 줄이려고 한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영국이 초과이윤세 부과를 결정하자 석유 메이저인 BP는 180억 파운드(약 28조4700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에서도 초과이윤세는 원유를 시추하고 생산하는 이른바 ‘업스트림(upstream)’에 부과한다. 원유를 도입해 정제하는 정유사는 해당하지 않는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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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세를 내렸는데도 왜 기름값은 그대로인가.
정유사는 유류세 인하 당일 자정부터 공장 반출 기준 물량 전부를 인하된 가격으로 판다. 하지만 주유소의 80%는 ‘자영주유소’다. 재고 소진 등을 이유로 가격 인하의 시차가 발생하는 것이다. 자영주유소는 개인 사업자인 만큼 이미 공급받은 물량을 모두 소진한 뒤 내린 가격을 반영하고, 경우에 따라 1~2주 시차가 생기기도 한다. 물론 정부는 주유소 가격 담합 등 불공정 행위가 없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유류세 인하가 정답인가.
높아진 기름값에 대해 정부는 세금 인하를 통해 국민의 부담을 낮춰주고 물가를 안정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8조원에 달하는 세수 감소는 다시 납세자 부담이 될 공산이 크다. 일본의 경유 정유사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이 구입하는 기름값을 억제한다. 일본 경제산업성 자원에너지청은 L당 5원 정도로 시작한 보조금 규모를 40원까지 올렸다. OECD 국가 가운데 일본의 휘발유 가격이 낮은 수준인 이유다. 
전체 유류세를 인하하는 것이 승용차 이용이 많은 고소득자의 혜택으로 돌아간다는 주장도 있다. 독일처럼 대중교통 관련 지원책을 사용해 승용차 이용을 줄여야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기름값이 오르면 서민들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가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7월초 서울 시내 한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이 L당 2136원을 기록한 모습. [연합뉴스]

기름값이 오르면 서민들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가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7월초 서울 시내 한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이 L당 2136원을 기록한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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