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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객 안돼, 환자 선택권 보장해야”…‘비대면 진료’ 2년5개월만에 가이드라인

중앙일보

입력

# 비대면 진료 플랫폼 ‘닥터나우’는 지난달 16일 '원하는 약 담아두기' 서비스를 시작한지 한 달 만에 중단했다. 이 서비스는 환자가 원하는 약을 선택하면, 처방 가능한 의료 기관이 자동으로 연결되고 진료·처방을 하는 방식이다. 처방전 발급 이후 약국 역시 자동으로 연결되고, 약국은 조제한 약을 퀵서비스나 택배 등으로 환자에게 배달한다.

지난달 보건복지부는 이 서비스에 대해 “의사가 환자에게 필요한 의약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가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전문 의약품을 선택해 받게 된다는 점에서, 오남용 우려가 있다”고 했다. 또 “(해당 약품의) 조제 가능 약국이 한 곳 뿐인 상황이 아니라면 약국을 자동 매칭하는 것은 약사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비대면 진료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자 보건복지부가 비대면 진료 플랫폼 운영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2020년 2월 24일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한 이후, 2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정부가 내놓은 지침이다.

복지부는 28일 “이용자의 의약품 오·남용, 환자의 선택권 제한 등의 문제가 우려되면서 의약계의 의견을 수렴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며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 간담회 이후 가이드라인 내용을 확정해 공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후 열린 플랫폼 업체 간담회에는 장지호 닥터나우 대표, 오수환 엠디스퀘어 대표 등 플랫폼 업계 대표가 참석했다.

서울의 한 병원에서 의사가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와 비대면 진료를 하고 있다. 기사와 무관한 자료 사진. 연합뉴스

서울의 한 병원에서 의사가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와 비대면 진료를 하고 있다. 기사와 무관한 자료 사진. 연합뉴스

“호객·유인 행위 말아야”…약품명·효과·가격 등 안내 불가

이날 복지부가 공개한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환자의 의료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플랫폼은 의료기관·약국 등의 정보를 환자에게 제공하거나 환자와 의료인 사이를 연결하는 중개 서비스만 제공해야한다. 환자가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할 수는 있지만, 사은품 제공·의약품 가격할인 등 호객 행위로 환자가 의사와 약국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세부 준수 사항으로 '환자에게 처방 의약품의 약품명, 효과, 가격 등의 정보를 안내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또 환자 이용 후기에 ▲의료 행위 및 약사 행위에 관한 내용 ▲특정 의료기관명(약국명) 및 의료인(약사)의 성명 ▲불필요한 의료 서비스 및 특정 의약품이 처방 또는 배달 가능하다는 내용 등 처방 의약품의 오·남용을 조장하는 내용이 담기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만약 후기에 이런 내용이 담겼을 경우, 환자 유인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의료기관의 요청이 있으면 즉각 삭제하는 등 적극적인 관리 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내 정보란에 진료 및 약품 관련 가격이 안내 돼 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내 정보란에 진료 및 약품 관련 가격이 안내 돼 있다.

플랫폼은 환자가 원하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의료인의 성명, 면허 및 전문 과목 등을 정확히 제공해야 한다. 환자가 플랫폼을 통해 약국에 처방전을 전송하려면, 반드시 환자 본인이 약국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위치 정보를 바탕으로 가까운 약국 정보를 제공하고, 플랫폼에 가입하지 않은 약국은 정보 제공이 제한될 수 있음 역시 안내해야 한다. 또 서비스가 제공되는 과정에서 처방전 재사용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창준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 직무대리는 “모든 의료행위는 대면진료가 원칙이 되어야 하며, 비대면 진료는 의료기관·약국 등에 대한 환자의 선택권이 보장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 쥐고 있는 플랫폼…“산업 관리 안 되는 무질서한 상황” 

올 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확진자가 폭발하면서 비대면 진료 수요는 급격하게 늘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비대면 진료 누적 건수는 2300만 건 이상이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역시 코로나19 유행 규모에 따라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해왔다.

복지부 관계자는 “하나의 사업 형태도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따로 행정적으로 관리하고 있지는 않다”면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은) 30개 내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현재 비대면 진료 플랫폼 사업을 어떤 업종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정의가 없다”며 “산업 관리가 전혀 안 되는 무질서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이번 가이드라인은 비대면 진료 행태에서 벌어지고 있거나 이미 드러난 부작용을 관리하는 차원에서는 적절해 보이지만, 플랫폼이 소유하는 정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등 입법적 미비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플랫폼 사업자가 환자뿐 아니라 의료인(의료기관)·약국 등에 대한 정보를 쥐고 있다는 점에서 나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박수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홍보이사)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의료 계통 관련 개인 정보는 민감 정보로 분류돼 있는데 개인 사업자인 플랫폼 측은 동의를 얻어 취하고 있다”면서 “정보를 익명이나 비식별화해서 보험 회사에 넘기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 “가이드라인은 법적인 효력이 없기 때문에 환자나 의료인에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막는 안전장치로 보긴 어렵다”면서 “비대면 진료의 한시적인 상황이 끝나면 철회하고, 제도화와 관련해 원점부터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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