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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월드컵까지 넉 달, 치명적 약점 드러낸 벤투호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한일전 완패 직후 주저앉은 한국 선수들(붉은 유니폼)과 기뻐하는 일본 선수들. [신화=연합뉴스]

한일전 완패 직후 주저앉은 한국 선수들(붉은 유니폼)과 기뻐하는 일본 선수들. [신화=연합뉴스]

“한일전 직후 ‘일본이 90분 내내 한국보다 잘 뛰었고, 우리 선수들은 잦은 실수의 대가를 치렀다’는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축구대표팀 감독의 유체이탈 화법을 접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벤투는 도대체 어느 나라 감독인가.”

지난 27일 일본 도요타의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일본전 0-3 참패 직후 각종 온라인 축구 커뮤니티는 축구대표팀의 부진한 경기력을 성토하는 글로 도배됐다. 지난해 3월 0-3으로 무너진 ‘요코하마 참사’ 이후 1년 4개월 만의 한일전 리턴매치가 또 한 번의 ‘도요타 참사’로 마무리 되자 축구 팬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드러냈다. 특히나 손흥민(토트넘)을 중심으로 경쟁력을 입증한 공격진과 달리 좀처럼 견고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수비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동아시안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환호하는 일본 대표팀 선수들. [로이터=연합뉴스]

동아시안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환호하는 일본 대표팀 선수들. [로이터=연합뉴스]

동아시안컵 개막에 앞서 벤투 감독 스스로 “카타르월드컵 준비 단계로 삼겠다”, “한일전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반드시 우승해 대회 4연패를 달성하겠다”고 공약했던 터라 한일전 패배의 후폭풍이 더 거세다. 한 명의 사령탑이 두 번의 한일전에서 0-3으로 잇달아 무너진 사례는 한국 축구 역사를 통틀어 살펴봐도 흔치 않다. 축구인들이 “이번 패배를 교훈 삼아 오는 11월 카타르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대표팀 선수 구성 및 전술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벤투호가 삐걱대는 건 ‘비대칭 전력’의 부작용이다. 해외파 위주로 구성한 공격진의 경쟁력은 합격점을 줄 만하다. 지난달 2일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브라질과 A매치 평가전에서도 득점포를 터뜨렸다. 칠레, 파라과이(이상 2골), 이집트(4골) 등 대륙별 강호들을 상대로도 멀티 골을 만들어냈다. 월드 클래스 공격수 손흥민을 중심으로 황의조(보르도), 황희찬(울버햄프턴), 황인범(서울), 이재성(마인츠) 등 주변 공격자원들이 유기적인 움직임을 선보인다.

손흥민이 이끄는 축구대표팀 공격진은 브라질 등 강호들을 상대로도 득점포를 가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흥민이 이끄는 축구대표팀 공격진은 브라질 등 강호들을 상대로도 득점포를 가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비진은 상황이 다르다. 벤투 감독은 부임 이후 꾸준히 중앙수비 듀오 김민재(나폴리)-김영권(울산)을 중심으로 디펜스라인을 구성했다. 그런데 카타르월드컵 본선행 확정 이후 김민재가 발목 부상으로 장기 이탈하고, 김영권이 잔부상과 컨디션 난조에 시달리면서 수비 플랜에 차질이 생겼다. 중앙수비가 흔들리자 수비형 미드필더와 풀백 등 주변 수비수들의 역할 부담이 커지며 불안함이 가중됐다.

이후 벤투 감독이 수비 모든 포지션을 대상으로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지만, 카타르월드컵 개막을 116일(28일 기준) 남겨둔 현재까지도 본선용 수비 조합을 확정 짓지 못했다. 김민재가 복귀하고 김영권이 정상 컨디션을 되찾으면 불안감이 다소나마 줄어들겠지만, 두 선수에게만 의존하는 건 여전히 위험한 도박이다.

축구대표팀은 핵심 수비수 김민재의 공백을 메우지 못한 채 수비불안을 드러내고 있다. [뉴스1]

축구대표팀은 핵심 수비수 김민재의 공백을 메우지 못한 채 수비불안을 드러내고 있다. [뉴스1]

전술적인 개선도 필요하다. 벤투 감독은 최후방에서부터 패스워크를 통해 차근차근 전진하며 볼 점유율을 높이고 경기 흐름을 장악하는 ‘빌드업 축구’를 추구하는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공격진에 비해 수비진의 전반적인 볼 키핑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전방 압박 역량이 우수한 팀을 만날 때마다 고전한다. 손흥민 등 해외파가 모두 참여한 6월 A매치에서도 브라질, 파라과이 등 강하게 압박하는 팀에게 여러 차례 아찔한 실점 위기를 내줬다.

동아시안컵 한일전은 일본이 벤투호의 약점을 정확히 분석한 뒤 집요하게 파고들어 완승을 이끌어낸 사례다. 일본은 골키퍼 조현우(울산)와 두 중앙수비수 박지수(김천), 조유민(대전) 등이 허리 진영으로 패스하는 순간을 압박 포인트로 삼았다. 볼 받을 선수를 하프라인 언저리에서 이중 삼중으로 에워싸 패스 연결 루트를 차단한 뒤 실수를 유도해 역습했다.

동아시안컵 한일전에서 일본은 압박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한국 수비진의 약점을 파고들어 세 골 차 대승을 이끌어냈다. [로이터=연합뉴스]

동아시안컵 한일전에서 일본은 압박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한국 수비진의 약점을 파고들어 세 골 차 대승을 이끌어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는 벤투 감독이 패인으로 지적한 ‘선수 개개인의 실수’를 사실상 전략·전술의 실수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월드컵 본선 상대팀들이 한일전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면, 추후 맞대결을 할 때 같은 방식으로 벤투호 수비진을 공략할 가능성이 높다. 빌드업 축구를 고집하는 대신 상황에 따라 패스 길이와 강약을 조절하거나, 또는 상대 위험지역까지 효율적으로 볼을 보내기 위한 패턴 플레이를 개발하는 등의 전술적 유연성이 필요하다.

벤투 감독은 한국축구대표팀 역대 최장수 재임(4년) 기록을 세우고도 ‘전방 압박 대처 능력 부족’이라는 약점을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남은 건 ‘벼락치기’다. 100일 남짓한 기간 동안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통할만한 전술과 선수 구성을 서둘러 갖춰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월드컵 최종 엔트리를 구성하기 전 마지막 실험 무대인 9월 A매치 데이가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전술도 바꾸고, 새 얼굴도 과감히 발탁해야한다. 성적과 경기력이 뒷받침 되지 않은 감독의 철학은 고집으로 비칠 뿐이다.

숙적 일본에 세 골을 내주며 허무하게 무너진 한국축구대표팀의 수비진은 대대적인 보강이 필요한 상황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숙적 일본에 세 골을 내주며 허무하게 무너진 한국축구대표팀의 수비진은 대대적인 보강이 필요한 상황이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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