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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달·조코비치 안 두렵다. 이번엔 넘긴다"...US오픈 벼르는 권순우

중앙일보

입력

올해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에 나서는 한국 테니스의 간판 권순우. 우상조 기자

올해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에 나서는 한국 테니스의 간판 권순우. 우상조 기자

"이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는 그만, 완벽한 승리 보여드리겠습니다."

한국 테니스의 간판 권순우(25·세계랭킹 76위)가 2022년 마지막 메이저 대회를 앞둔 각오를 밝혔다. 권순우는 다음 달 29일 미국에서 열리는 US오픈에 출전한다. 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과 더불어 테니스 4대 메이저로 불리는 대회다. 미국 출국에 앞서 최근 서울 청담동에서 권순우를 만났다.

권순우(오른쪽)는 지난달 윔블던 1회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노박 조코비치를 만나 접전을 펼쳤으나, 아쉽게 패했다. [EPA=연합뉴스]

권순우(오른쪽)는 지난달 윔블던 1회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노박 조코비치를 만나 접전을 펼쳤으나, 아쉽게 패했다. [EPA=연합뉴스]

올해 그는 유독 세계적인 강자와 맞붙어 아쉽게 진 경기가 많았다. 지난달 27일 윔블던 남자 단식 1회전이 그랬다. 톱 시드의 디펜딩 챔피언 노박 조코비치(7위·세르비아)와 맞붙었는데, 2시간 27분 혈투 끝에 1-3으로 졌다. 1-1로 맞선 가운데 권순우는 3세트 중반까지 우세한 경기를 펼치다 뒷심 부족으로 무너졌다.

진땀승을 거둔 조코비치는 "3쿼터를 내줬다면, 경기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며 권순우의 실력을 인정했다. 조코비치는 라파엘 나달(3위·스페인), 로저 페더러(스위스)와 함께 남자 테니스 '빅3'로 불리는 수퍼 스타다. 메이저 우승 횟수만 21회로 이 부문 2위다. 나달은 22회로 선두, 페더러는 20회로 3위다. 조코비치는 결국 이번 윔블던에서 우승했는데, 결승까지 7경기를 치르면서 '패할 뻔했다'고 털어놓은 상대는 권순우뿐이었다. 지난 5월 프랑스오픈 1회전에선 당시 세계 7위였던 안드레이 루블료프(러시아)를 상대로 먼저 첫 세트를 따내고도 역전패했다.

"이제 '졌잘싸'는 그만 하겠다"고 각오를 밝힌 권순우. 우상조 기자

"이제 '졌잘싸'는 그만 하겠다"고 각오를 밝힌 권순우. 우상조 기자

권순우는 "윔블던 첫 세트 도중 '오늘 쉽게 질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코비치를 압박하면서 오히려 내가 여유가 생겼다"면서 "3세트를 따냈다면 이길 수 있었다. 결국 경험 차이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경기 후 조코비치가 '정말 힘든 경기였다'고 하더라. 대회 초반 랭킹이 센 선수와 붙으면 대진운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강자와 경기해 경험을 쌓을 좋은 기회라서 반긴다"고 말했다.

올해 마지막 메이저 대회를 앞두고 권순우는 잔뜩 벼르고 있다. 그는 윔블던 탈락 후 소셜미디어(SNS)에 "다음에는 넘긴다"고 적었다. 권순우는 "올해 경기력은 좋고, 이기는 경기를 하지 못했다. '넘기겠다'는 의미는 말그대로 다음 메이저 대회에선 맞붙게 될 상대가 조코비치든 나달이든 반드시 이겠다는 의미다"라고 설명했다. 권순우는 올해 1월 호주오픈 2회전, 5월 프랑스오픈 1회전, 윔블던 1회전의 성적을 냈다. 메이저 대회 최고 성적은 지난해 프랑스오픈 3회전(32강) 진출이다. 그는 "세계 10위권 강자들과 경기하면서 경험은 충분히 쌓았다. 이젠 랭킹 높은 선수들과 붙어도 밀린다는 느낌이 안 든다. 이번 US오픈에선 메이저 대회 최고 성적을 새로 쓰겠다"고 자신했다.

권순우는 대기만성형 선수다. 포기하지 않고 훈련해 성인이 된 뒤 정상급 선수가 됐따. [AFP=연합뉴스]

권순우는 대기만성형 선수다. 포기하지 않고 훈련해 성인이 된 뒤 정상급 선수가 됐따. [AFP=연합뉴스]

권순우는 대기만성형 선수다. 고교 테니스에선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한때는 1~2년 후배들에게 밀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끈기만큼은 최고였다. 그는 훈련이든 경기든 쉽게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권순우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감 하니만큼은 자신 있었다. 아무리 강한 상대를 만나도 '이기기 어렵다'는 생각은 안 했다. 한 번 마음 먹은 건 우직하게 밀고 나갔다"며 성장 비결을 밝혔다. 그러면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한잔하고 싶은 나이다. 하지만 테니스를 못 치면서 놀고 싶진 않았다"고 덧붙였다.

덕분에 대학 진학 후 기량이 만개했다. 국내 랭킹 1위로 올라섰다. 2019년 세계 100위 이내로 진입했다. 현재 세계 100위 안에 든 한국 선수다. 권순우는 지난해 아스타나 오픈에서 생애 첫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단식 우승 트로피를 품었다. 한국 선수로는 역대 두 번째 투어 우승으로, 2003년 시드니 인터내셔널 대회 이형택(은퇴) 이후 18년 만이었다.

아스타 오픈 우승을 차지한 권순우. [사진 ATP]

아스타 오픈 우승을 차지한 권순우. [사진 ATP]

권순우의 주무기는 강력한 포핸드다. [로이터=연합뉴스]

권순우의 주무기는 강력한 포핸드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5일 애틀랜타 오픈 단식 1회전에선 마르코스 기론(55위·미국)을 2-1로 꺾고 ATP 투어 단식 50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형택(161승 164패), 정현(86승 69패)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세 번째 기록이다. 키 1m80㎝, 체중 72㎏인 권순우는 거구들이 즐비한 국제무대에선 아담한 체구다. 그는 공격적인 포핸드와 시속 220㎞에 가까운 서브 스피드로 불리한 신체조건을 극복했다. 강자들과 잇따라 경기를 치르면서 운영 능력도 업그레이드했다는 평가다.

권순우는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투어 선수 생활을 시작해 1년 중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낸다. 한국에선 40~50일 남짓 머문다. 대회 개최지에 따라 국가 간, 대륙 간 이동이 잦아 시차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등 고충이 적지 않다. 그렇게 싸인 스트레스는 먹는 것으로 푼다. 경기가 있을 땐 부담 없는 생선 위주로 먹는다. 특히 굴비, 고등어, 연어 등에 흰 쌀밥을 즐긴다. 한국에선 메뉴가 달라진다. 권순우는 "해외에선 2~3주 동안 파스타만 먹고도 잘 지내지만, 귀국했을 땐 예외다. 가장 좋아하는 곱창과 짜장라면을 실컷 먹는다. 철저한 식단으로 유명한 조코비치도 대회 우승 후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푼다"며 웃었다.

권순우는 어린 시절 축구를 즐겼다. 아버지의 권유로 테니스에 입문했다. 우상조 기자

권순우는 어린 시절 축구를 즐겼다. 아버지의 권유로 테니스에 입문했다. 우상조 기자

유튜브도 틈틈이 챙겨본다. 주로 손흥민(토트넘)의 활약상이나, 먹방 콘텐트를 즐긴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테니스에 입문했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클럽 축구 선수로 활약했다. 테니스 동호인인 아버지의 권유로 라켓을 잡았다. 권순우는 "어느 날 아버지가 축구 하러 가자고 하셔서 같이 길을 따라나섰는데, 도착해보니 테니스장이었다. 하기 싫어서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왕 테니스를 시작한 거 '테니스계의 손흥민'으로 불릴 정도까지 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좋아하는 연예인은 배우 조보아다. 권순우는 "내 이상형이다. 예쁜 외모와 예능 프로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보여준 털털한 성격에 반했다. 기회가 있다면 조보아 씨에게 테니스를 가르쳐 주고 싶다"고 말했다.

권순우는 "세계 10위 안에 진입한 뒤, 메이저 대회 정상에 서겠다"며 목표를 밝혔다. 우상조 기자

권순우는 "세계 10위 안에 진입한 뒤, 메이저 대회 정상에 서겠다"며 목표를 밝혔다. 우상조 기자

권순우는 자신의 꿈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세계 100위 안에 들었으니, 다음은 10위 이내 진입이 목표"라면서 "조코비치·나달·페더러가 대단한 건 꾸준해서다. 나도 톱100 선수로 꾸준히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거면 충분하냐'고 물었다. 권순우는 고개를 저으며 "마지막 꿈은 메이저 대회 우승"이라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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