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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인터넷의 아버지’ 빈트 서프 “디지털 기록 보존할 양피지에 도전”

중앙일보

입력 2022.07.28 06:00

업데이트 2022.07.28 17:56

그래픽=김혜림 디자이너

그래픽=김혜림 디자이너

구글에는 ‘수석 인터넷 전도사(Chief Internet Evangelist)’라는 특이한 직함을 가진 역사적인 인물이 있다. 1970년대에 현재 인터넷의 토대가 된 TCP/IP를 개발해 ‘인터넷의 창시자’로 불리는 빈트 서프(Vint Cerf·79) 박사다.

TCP/IP는 서로 다른 시스템을 가진 컴퓨터 간에도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한 통신 규약. 같은 회사 컴퓨터끼리만 소통할 수 있었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을 끝낸 기술이다. TCP/IP 덕에 인터넷은 ‘국방 기술’에서 ‘모두의 인터넷’으로 진화했다.

60년 가까이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서프 박사는 상전벽해한 인터넷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팩플팀이 지난 1일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그를 화상으로 만났다.

최근 그는 구글에서 디지털 기록의 보존을 연구하는 디지털 벨룸(Digital Vellum·전자 양피지) 프로젝트와 사물인터넷(IoT)의 보안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소개했다. 선천적 청각 장애로 13살부터 보청기를 착용해, 구글 제품의 접근성 개선에도 열정을 쏟고 있다.

팩플팀은 지난 1일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빈트 서프 구글 수석 인터넷 전도사를 화상 인터뷰했다. 쓰리피스 정장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 수십 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갖춰입었다고 한다. 사진 구글

팩플팀은 지난 1일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빈트 서프 구글 수석 인터넷 전도사를 화상 인터뷰했다. 쓰리피스 정장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 수십 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갖춰입었다고 한다. 사진 구글

인터넷의 아버지이자 전도사

인터넷 전도사라는 직함이 생소하다.
“인터넷은 여전히 전 세계 인구의 60%만 쓸 수 있는 기술이다. 아직 인터넷에 닿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인프라 투자를 활성화하는 게 나의 역할이다. 벌써 50년 넘게 이 일을 하고 있다.”
직접 개발한 TCP/IP를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면.
“만화처럼 설명해보겠다. 컴퓨터는 데이터를 보낼 때 패킷(packet)이란 작은 단위로 쪼개서 보낸다. 패킷은 우편 엽서와 비슷하다. 받는 사람, 보내는 사람의 주소(IP)가 있고 엽서 내용이 있다. 엽서를 우체통에 넣은 여러분은, 이게 목적지까지 잘 도착할지 어떨지 모른다. 때론 분실될 수도 있다. 패킷도 마찬가지다. 데이터가 손실될 가능성이 있다. 그걸 복원하고 재전송하는 시스템이 TCP다.

이번엔 친구에게 책을 보내고 싶다고 해보자. 근데 우편 체계상 여러분이 보낼 수 있는 건 엽서 뿐이다. 어떻게 할까? 책을 페이지마다 찢어서 엽서에 붙여야 한다. 붙이다 보니 중간에 누락되는 페이지가 없게 페이지 번호도 매겨야겠고, 혹시 모르니 사본도 떠놓는다. 엽서를 다 보내고 나서 여러분은 고민한다. ‘잘 받았다는 걸 어떻게 확인하지? 친구가 회신을 주면 좋겠지만, 연락이 안 되면?’ 결국 확인할 때까지 중복 엽서를 계속 보낸다. 그게 TCP/IP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그래픽=김혜림 디자이너

그래픽=김혜림 디자이너

그래서 TCP/IP가 바꾼 게 무엇인가.
“초기 인터넷은 지금과 같지 않았다. IBM 컴퓨터는 IBM 컴퓨터끼리만, HP 컴퓨터는 HP 컴퓨터끼리만 소통할 수 있었다. TCP/IP는 그걸 깼다. TCP/IP 표준을 쓰는 한 모든 네트워크가 서로 소통할 수 있다.”
인터넷은 수십 년새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가장 시급한 과제가 뭐라고 보나.
“앞서 얘기했듯 여전히 세계 인구의 40%에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과, 생각보다 ‘증폭 효과’가 거대하다는 점이다. 네트워크의 가치는 실제 사용자의 제곱 수로 증가한다. 예컨대 소셜 미디어(SNS)에 글을 쓰는 건, 마이크에 대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인터넷 자체는 좋은 정보와 나쁜 정보를 식별할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거짓 정보나 악성 소프트웨어도 아주 빠르게 유통된다. (인터넷의) 잠재적 해악을 인정하고, 이런 악의적 행위자들을 추적하고 사법 처리할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
19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빈트 서프 박사가 현재 인터넷의 원형이 된 데이터 네트워크 아파넷(ARPANET)을 시연하던 모습. 사진 구글

19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빈트 서프 박사가 현재 인터넷의 원형이 된 데이터 네트워크 아파넷(ARPANET)을 시연하던 모습. 사진 구글

“IoT 보편화 우려…글로벌 개인정보보호 표준 채택해야”

사물인터넷(IoT)의 개인정보 보호를 연구하고 있다고.
“IoT는 상당히 유용하지만, 개인정보가 다 관여돼있다. 보안이 조금만 허술해도 허가받지 않은 사람들이 e메일이나 웹캠에 접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를 비롯한 동료들의 우려가 많다.”
구글도 인공지능(AI) 비서인 구글 어시스턴트, 구글 홈 등 IoT 제품을 많이 내놨는데.
“구글은 개인정보 보호를 엄청나게 중시한다. 모든 제품과 서비스의 설계 단계부터 개인정보 보호를 신경 쓴다. 데이터 전송 과정은 암호화하고, 사용자들에게 2단계 인증을 권고한다.”
그렇더라도 IoT가 확산할수록 개인정보는 더 위협받는 것 아닌가.
“IoT 기기의 안전과 보안에 관한 글로벌 표준을 채택할 때가 됐다고 본다. 이제까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표준을 채택해왔다. IoT 기기도 의약품처럼 성능과 안전성 기준을 세우고, 이를 평가할 국제 기구와 정부 당국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로벌 표준엔 어떤 항목이 들어가야 할까.
“제일 먼저, IoT 기기에 드나드는 모든 정보와 제어 기능이 철저하게 암호화 되고 있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다음으로, IoT 기기 제어 권한 유무를 각 기기가 판별할 수 있는지도 봐야 한다. 즉, 디지털 인증을 통해 사용자 신원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IoT에서 정보를 바꾸거나 제거하려는 모든 시도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단 뜻이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때때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에서 실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정 소프트웨어가 IoT에 침투해 데이터를 빼가려고 할 때, 그 원천을 파악할 수 있어야 사고를 방지한다.”
1997년 12월 빈트 서프(왼쪽) 박사가 동료 로버트 칸(Robert E. Kahn)과 함께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인터넷 창시의 공로를 인정받아 전미 기술 메달을 수여받는 모습. 사진 구글

1997년 12월 빈트 서프(왼쪽) 박사가 동료 로버트 칸(Robert E. Kahn)과 함께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인터넷 창시의 공로를 인정받아 전미 기술 메달을 수여받는 모습. 사진 구글

“구글 문서 100년 후엔 못 열지도…디지털 양피지 만든다”

서프 박사는 디지털 콘텐트를 수백 년 이상 보관할 방법을 연구하는 ‘디지털 벨룸’ 프로젝트도 맡고 있다.

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나.
“인류의 기록 보존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고대 도시에서 쓰던 점토판은 5000~6000년을 간다. 그후 나온 양피지는 1000~2000년, 종이는 500년까지 보존된다. 희한하지 않나. 종이 다음에 나온 디지털 저장매체는 생명이 더 짧다. 요즘 플로피 디스크나 CD를 읽는 기기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으니까. 지금 우리가 쓰는 구글 독스(google docs) 같은 문서가, 100년 뒤 운영체제(OS)에선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축적되는 지식은 점점 늘었는데, 왜 보존 기간은 짧아졌을까.
“비용의 문제일 수도, 편의성의 문제일 수도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저장 용량은 꾸준히 개선돼왔다. 가령 종이는 점토판을 쌓는 것보다 공간을 훨씬 적게 차지한다. 1979년엔 10메가바이트(MB) 디스크 드라이브를 1000달러 주고 샀었는데, 지금은 그 10만배 용량인 1테라바이트(TB)짜리를 50달러에 산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더 낮은 비용으로 저장할 수 있게 되면서 기록 기술과 저장 기술도 급격히 발전했다. 변화가 쉽고 빠른 세상이 된 것이다.”
디지털 벨룸 프로젝트는 뭔가.
“새로운 소프트웨어, 새로운 OS가 나와도 지금의 데이터를 이해할 수 있도록 비트(bit, 데이터의 기본 단위)를 변환하거나, 판독하는 기술을 만드는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손자들 그리고 후세대까지 과거의 기억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디지털 벨룸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는 빈트 서프 박사. 사진 유튜브 캡처

디지털 벨룸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는 빈트 서프 박사. 사진 유튜브 캡처

접근성은 ‘마법의 가루’가 아니다

구글 제품의 접근성 개선에도 참여해왔는데.
“나는 거의 60년간 보청기를 써왔다. 지금도 실시간 자막을 켜놓고 있다. 평생 접근성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접근성은 제품을 다 만들어놓고 그 위에 ‘마법의 가루’처럼 뿌려서 되는 게 아니다. 나중에 ‘추가’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고려해서 디자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줄 수 있나.
“시각장애가 있건, 청각장애가 있건, 사지가 불편하건 누구나 편하게 디지털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예가 있겠지만, 지금 떠오르는 건 저시력자를 위한 이미지 확대, 적록 색맹을 위한 색상 대비, 운동 장애가 있는 이들을 위한 음성 인터페이스, 청각 장애인용 자막 등이다. 이런 게 서비스 설계 단계부터 고려되어야 한다.”

“웹 3.0은 정의되지 않은 마케팅 용어”

최근 인터넷 업계는 ‘웹 3.0’으로 떠들썩하다. 웹 3.0이 무엇인가부터, 웹 3.0과 웹3를 구분해야 한다는 시각, 웹 3.0에선 어떤 서비스가 돈을 벌 것이란 예측까지 여러 논의가 오간다. 이 과정에서 웹 3.0은 정확한 정의가 나오기도 전에 블록체인, 메타버스, NFT(대체불가능토큰), P2E(돈 버는 게임), 탈중앙화 앱(dApps) 등 핫한 기술 서비스를 통칭하는 말로 변질되기도 했다.

현재 시장이 이해하는 가장 보편적인 웹 3.0의 핵심 가치는, 블록체인 같은 탈중앙화 기술을 통해 ‘데이터 소유권을 개인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다. 구글·메타·네이버 같은 거대 플랫폼이 웹에 사용자들이 ‘무료’로 남긴 데이터를 기반으로 막대한 부와 권력을 쌓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출발점이다.

서프 박사에게 웹 3.0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나는 웹 개발자는 아니니 감안하라”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전했다. 월드와이드웹(WWW, 이하 웹)과 인터넷은 혼동하기 쉽지만, 웹은 인터넷 위에서 돌아가는 서비스의 일종이다. 인터넷에서 가장 성공한 서비스가 웹인 셈. 웹의 개발자는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다.

월드와이드웹(WWW)을 만든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와 인터넷(TCP/IP)를 만든 빈트 서프. 웹은 인터넷에서 돌아가는 서비스의 일종이다. 사진 구글

월드와이드웹(WWW)을 만든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와 인터넷(TCP/IP)를 만든 빈트 서프. 웹은 인터넷에서 돌아가는 서비스의 일종이다. 사진 구글

웹 3.0이 난리다. 실체가 뭘까.
“웹 3.0은 정의되지 않은 마케팅 용어다. 팀 버너스 리는 최근 이 용어 자체를 부정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웹 3.0이 2차원 상호작용을 3차원으로 옮기는 거라고 오해하는 것 같다. 누군가는 웹 3.0을 ‘메타버스’와 동일시하기도 하고. 모두 적절한 정의가 전혀 아니다. 기술에 대한 더 깊고 심층적인 이해가 이뤄진 다음에 정의해도 될 용어 같다.”
기술계에선 정의를 미룬 셈이고, 학계나 산업계는 웹 3.0을 어떻게 보던가.
“글쎄, 솔직히 인터넷과 관련된 새로운 발명이면 다 웹 3.0를 갖다붙이는 것 같다(웃음). 이런 핫한 유행어(buzzword)에 올라타는 게 아무래도 편하니까. 그래도 이런 실험들 가운데서 의미있는 시도도 나올 거라고 본다.”

“우린 못했지만, 너흰 할 수 있어”

60년 넘게 현업에 남아있을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하다.
“내게 인터넷은 공상 과학 소설의 첫번째 장에 사는 것 같은 기분을 주는 공간이다. 사람들이 인터넷을 활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계속 생각해 내는데, 그게 너무 매력적이다. 가상현실(VR) 고글을 끼고 하는 복싱이라던지, 원격 수술 같은 건 옛날의 난 상상조차 못했던 서비스들이다. 머신러닝의 발전으로 컴퓨터는 우리의 목소리를 이해하고, 스스로 목소리를 생성하고, 이미지를 인식하고, 악성 종양을 추적하고, 새로운 소행성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가 됐다. 끊임없이 호기심과 발명이 계속되는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건 매우 즐거운 일이다.”
빈트 서프 박사와 그의 아내 시그리드 서프. 사진 구글

빈트 서프 박사와 그의 아내 시그리드 서프. 사진 구글

살면서 혹은 구글에서 일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건 역시 나보다 낫고 현명한 두 아들인 것 같다. 솔직히 아내가 두 녀석 다 멋지게 키워놓은 거지만(웃음). 구글에서 뿌듯한 순간은 젊고 똑똑한 직원들에게 내가 모르는 걸 물어볼 수 있고, 그들이 나한테 뭘 물어보면 ‘25년 전 우리가 해봤을 땐 실패했지만 너흰 가능할 수도 있어’라고 답할 때인 것 같다. 옛날엔 컴퓨터가 너무 비싸고, 무겁고, 용량이 작고, 느려서 할 수 없었던 게 정말 많았다. 이젠 아니지 않나. (젊은 직원들이) 시도하는 새로운 아이디어 중에 과거의 내가 좌절했던 것들이 보이면 무척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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