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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곳" 소문의 그 섬…귀한 백합이 지천에 깔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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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오디세이② 볼음도·주문도

볼음도 영뜰해변에서 백합을 잡고 있는 인천관광공사 민민홍 사장. 민 사장이 끌고 있는 게 그레라는 해루질 기구다. 그레를 갯벌에 박고 끌고 다니다 보면 덜컥 하고 백합이 걸려 올라온다.

볼음도 영뜰해변에서 백합을 잡고 있는 인천관광공사 민민홍 사장. 민 사장이 끌고 있는 게 그레라는 해루질 기구다. 그레를 갯벌에 박고 끌고 다니다 보면 덜컥 하고 백합이 걸려 올라온다.

“볼음도 가보셨나요? 딱 한 번 가봤는데, 세상에 이런 섬이 없습니다. 같이 가십시다. 여태 많은 섬을 다녀봤겠지만, 볼음도 같은 섬은 없었을 겁니다. 장담합니다.”

인천관광공사 민민홍 사장의 말은 솔깃했다. 민 사장의 제안을 듣기 전까지 볼음도는 소문 같은 섬이었다. 강화도가 거느린 여러 섬들 중 하나 정도로 알고 있었다. 선뜻 내키지는 않았었다. 석모도처럼 신심을 일으키지도, 교동도처럼 옛 추억을 불러오지도 못했다. 서해에 뜬 허다한 섬들처럼, 볼음도도 그렇게 잊혀 가는 섬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니란다. 인천관광공사 사장이 장담한단다. 세상에 이런 섬이 없다는 주문(呪文)에 홀려 새벽부터 서둘렀다. 강화도 서쪽 끝 선수선착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8시. 유난히 길었던 장마가 막바지에 접어든 7월 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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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의 섬

볼음도 저수지. 볼음도 서쪽 끝 방파제 옆에 있다. 저수지를 에두르고 강화나들길 13코스가 이어진다.

볼음도 저수지. 볼음도 서쪽 끝 방파제 옆에 있다. 저수지를 에두르고 강화나들길 13코스가 이어진다.

여객선은 승객이 많지 않았다. 백령도나 덕적도 들어가는 배는 빈자리가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역시 볼음도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듯했다. 사람은 적어도 차는 적지 않았다. 섬에 대중교통이 없다는 뜻이다. 승용차보다 화물차가 더 많았다. 관광객보다 주민이 더 많이 탔다는 뜻일 테다. 선수선착장에서 1시간, 볼음도선착장이 보였다.

숙소로 예약해놓은 ‘볼소리 펜션’의 이민우(63) 대표가 마중 나왔다. 차 없는 손님이 들어오면 픽업 서비스를 해준다고 했다. 여느 외진 섬처럼, 볼음도도 여행의 팔 할은 숙소다. 잠자리는 물론이고, 식사와 교통편까지 숙소에서 해결한다. 다행히 펜션 주인은 음식 솜씨가 좋았다. 볼음도에서 먹은 세 끼 모두 만족스러웠다.

천연기념물 제304호로 지정된 볼음도 은행나무. 은행나무를 오롯이 찍으려면 한참 뒤로 물러나야 한다.

천연기념물 제304호로 지정된 볼음도 은행나무. 은행나무를 오롯이 찍으려면 한참 뒤로 물러나야 한다.

갯벌 체험을 앞두고 섬을 둘러봤다. 볼음도를 대표하는 명물부터 찾아갔다. 섬 서쪽 끝의 ‘볼음도 은행나무’다. 높이 25m, 밑동 둘레가 9.4m나 되는 거목이다. 나무 아래에 서니 정말 어마어마하다. 섬을 지키는 나무로 받들 만하다. 볼음도에선 이 나무의 가지를 태우면 재앙이 내린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1950년대까지 나무 아래에서 풍어제를 지냈다고 한다. 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4호다.

나무에 밴 사연이 곡진하다. 800여 년 전 황해도에 물난리가 나 부부 은행나무 중 수나무가 바다로 떠내려왔다. 볼음도 주민이 그 나무를 주워 심은 게 지금의 은행나무다. 흥미로운 건, 북한에 아내 은행나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황해도 연안군 호남리 호남중학교 뒷마당에 있다는 아내 은행나무는 북한 천연기념물 제165호다.

은행나무 옆으로 난 저수지 제방을 따라 강화나들길 13코스가 이어진다. 강화도 구석구석을 연결한 강화나들길이 볼음도에도 있는 줄 몰랐다. 강화나들길 13코스는 볼음도 둘레길이다. 전체 길이가 13.6㎞로, 4시간 정도 걸린다.

조개의 왕

볼음도 갯벌 체험에 나선 관광객들. 사진에 보이는 트랙터를 타고 30~40분 갯벌로 나간다. 모래 갯벌이 단단해 발이 빠지지 않고 걸을 수 있다.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모래 갯벌의 감촉이 좋다.

볼음도 갯벌 체험에 나선 관광객들. 사진에 보이는 트랙터를 타고 30~40분 갯벌로 나간다. 모래 갯벌이 단단해 발이 빠지지 않고 걸을 수 있다.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모래 갯벌의 감촉이 좋다.

이제 갯벌에 나갈 시간이다. 볼음도 갯벌 체험은 조개골해변과 영뜰해변에서 모두 가능하다. 개중에서 영뜰해변이 더 유명하다. 물이 빠지면 최대 6㎞까지 갯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볼음도 갯벌이 그 유명한 강화갯벌이다. 강화도 서남부 해안과 볼음도를 포함한 강화도 서남쪽 일부 섬의 갯벌을 강화갯벌이라 하는데, 면적이 서울 여의도의 53배(약 435㎢)나 된다. 천연기념물 제419호로, 강화갯벌은 규모가 가장 큰 천연기념물이기도 하다. 이 거대한 갯벌을 법으로 보호하는 이유가 있다. 세계적인 희귀종 저어새의 최대 서식지가 강화갯벌이다. 실제로 볼음도 갯벌에선 전 세계에 2400여 마리밖에 없다는 저어새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갈매기 사이에서 긴 부리 저어대며 먹이를 잡는 흰 새가 저어새다.

볼음도에서 한두 시간 만에 잡은 갯것들. 백합을 가장 많이 잡았고 소라와 모시조개도 꽤 잡았다.

볼음도에서 한두 시간 만에 잡은 갯것들. 백합을 가장 많이 잡았고 소라와 모시조개도 꽤 잡았다.

나라가 지키는 갯벌이어서 볼음도 갯벌은 아직 건강하다. 조개골해변도 이름처럼 조개가 흔하지만, 영뜰해변에는 그 귀하다는 백합이 허다하다. 볼음도에선 백합을 ‘조개의 왕’이란 뜻의 ‘상합(上蛤)’이라 부른다. 여느 갯벌에선 바지락·꼬막 따위를 캐는데, 볼음도에선 어른 손바닥만 한 백합을 캔다. 볼음도 어촌계에 체험비(1인 1만3000원)를 내면 트랙터 타고 갯벌 끝까지 나갈 수 있다. 갯벌 끝에 도착하면 ‘그레’라는 해루질 장비를 나눠준다. 긴 끈 아래에 칼날을 묶어 끌고 다니다 보면, 칼날에 돌부리처럼 걸리는 게 나온다. 십중팔구 백합이다. 유영락(63) 볼음어촌계장은 “갯벌 3∼5㎝ 아래에 백합이 산다”며 “관광객 중에 10㎏이나 잡은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볼음도에서 백합은 1㎏ 1만5000원 정도에 팔린다.

갯벌에서 잡은 백합으로 백합탕을 끓였다. 뽀얀 국물이 개운했다.

갯벌에서 잡은 백합으로 백합탕을 끓였다. 뽀얀 국물이 개운했다.

갯벌에서 잡은 백합으로 끓인 백합죽.

갯벌에서 잡은 백합으로 끓인 백합죽.

생전 처음의 그레질이 서툴렀으나 백합이 걸릴 때의 손맛은 확실히 느꼈다. 한두 시간 만에 20여 마리를 건졌다. 뜻밖의 수확도 있었다. 갯벌에 소라가 널브러져 있었다. 백합 캐고 소라 줍는 갯벌이라니. “이런 섬이 없다”고 했던 인천관광공사 민민홍 사장이 새삼 고마웠다. 내리쬐는 뙤약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레질에 빠졌다. 이날 잡은 백합과 소라로 저녁에 백합탕과 소라숙회를, 이튿날 아침에 백합소라죽을 해 먹었다. 참, 백합은 회로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조개다. 큰놈 몇 개는 갯벌에서 날로 먹었다. 백합은 해감 안 해도 모래가 안 씹힌다는 어촌계장의 호언은 사실이었다.

장군과 교회

주문도 서도중앙교회. 내년이면 건립 100주년을 맞는 건물이다. 팔작지붕 아래 현판에는 '기독교 대한감리회 진촌교회'라는 옛 이름이 걸려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왼쪽 문이 남자 출입구고, 오른쪽이 여자 출입구다.

주문도 서도중앙교회. 내년이면 건립 100주년을 맞는 건물이다. 팔작지붕 아래 현판에는 '기독교 대한감리회 진촌교회'라는 옛 이름이 걸려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왼쪽 문이 남자 출입구고, 오른쪽이 여자 출입구다.

볼음도는 주문도·아차도·말도와 함께 강화도 서도면을 이루는 네 개 유인섬 중 하나다. 이 네 개 섬을 강화도에선 ‘서도’라 한다. 서도의 중심은 제일 큰 섬 볼음도였다. 지금은 중심이 주문도로 옮겨갔다. 주문도가 강화도와 더 가깝다. 서도면사무소도 주문도에 있고, 인구도 주문도(435명)가 볼음도(284명)보다 많다. 11.3㎞ 길이의 강화나들길 12코스가 주문도를 에두른다.

볼음도와 주문도 모두 임경업(1594~1646) 장군에게서 이름이 유래한다. 임경업 장군이 명나라를 오가다 보름달을 봤다는 섬이 볼음도고, 중국으로 가던 장군이 풍랑을 맞았다는 글을 써 임금에게 알렸다는 섬이 주문도다. 볼음도와 주문도는 뱃길로 30분 거리다. 주문도에서도 백합이 잡힌다. 주문도에서 가장 큰 해변은 대빈창해변이나, 백합은 뒷장술해변에서 많이 나온다.

서도중앙교회 내부. 대들보와 서까래가 훤히 드러난 전형적인 한옥 건물이다. 신도가 예배 보는 자리에 앉았더니 천정에서 십자가가 보였다. 십자가형 형광등이다.

서도중앙교회 내부. 대들보와 서까래가 훤히 드러난 전형적인 한옥 건물이다. 신도가 예배 보는 자리에 앉았더니 천정에서 십자가가 보였다. 십자가형 형광등이다.

주문도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내년이면 건립 100주년을 맞는 서도중앙교회다. 팔작지붕 얹은 한옥 교회로, ‘진촌교회’라는 옛 이름이 걸렸다. 교회 문이 두 개다. 왼쪽이 남자 출입구고, 오른쪽이 여자 출입구다. 교회 내부도 영락없는 한옥이다. 열두 개 나무 기둥 위로 대들보와 서까래가 훤히 드러났다. 서도중앙교회 박형복(61) 목사는 “새 교회 건물이 있지만, 요즘도 새벽 예배는 옛날 교회에서 본다”며 “지금도 남자는 왼쪽에, 여자는 오른쪽에 앉는다”고 말했다. 신도가 예배 보는 나무 바닥에 앉아봤다. 서 있을 땐 안 보였던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천정에 맨 십자형 형광등이었다.

여행정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강화도 선수선착장에서 볼음도 들어가는 배가 하루 세 번(오전 8시 50분, 오후 12시 50분, 4시 20분) 뜬다. 여름 성수기 요금 어른 7900원(유류할증료 포함), 차량 4만5000원(중형 기준). 주문도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선수선착장에서 출발해 볼음도·아차도 들렀다가 주문도(느리 선착장)까지 가는 배를 타거나(어른 8800원), 선수선착장∼주문도(살곶이선착장) 직항을 이용하거나(어른 5950원). 인천시·인천관광공사 등이 공동으로 ‘인천 섬 도도하게 살아보기’ 프로모션을 진행 중이다. 볼음도·덕적도·백령도 등 인천 섬 7개를 여행하는 체험관광 상품으로, 볼음도는 2박3일 일정이다(월·수요일 출발). 1회 정원은 20명으로 10월 21일까지 총 6회 진행한다. 1인 체험비 11만3000원, 예약은 프로모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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