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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대통령 주변에 위징이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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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정민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민 논설실장

이정민 논설실장

취임 100일도 안 된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로 주저앉은 건 명백한 위기 징후다. 정권 안보를 걱정해서가 아니다. 리더십 난조로 자칫 갈 길 먼 나라의 장래에 치명적 오점을 남겨, 두고두고 후대의 발목을 잡는 족쇄로 작용할까 두려운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미·중 대결과 신냉전, 우크라이나 전쟁, 글로벌 공급망 위기, 기후변화… 전대미문의 퍼펙트 스톰이 이미 가시권 안에 성큼 들어와 있지 않은가. 언제 몰아닥칠지 모를 이 거대한 쓰나미 앞에 단 1분도 허투루 낭비할 여유 없이 다급한데, 풍랑을 헤쳐가야 할 백성들은 마음 의지할 곳 없이 스산하기만 하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 32%, 부정평가 60%. (7월22일 갤럽 조사) 초라한 정권의 ‘성적표’가 표류하는 민심을 대변한다.

‘대한민국호’ 선장 윤석열 대통령은 장·차관 워크숍에서 “정부 구성은 잘돼 있는 것 같다. 저만 잘하면 되겠다”며 심기일전을 다짐했다. 논란을 부른 발언이지만, 최소한 지금의 상황을 엄중히 느끼고는 있다는 완곡한 표현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희망적 사고가 아니길 바란다.) 각료와 참모들에게 “국회에 발이 닳도록 드나들라”거나 “언론과 소통하라”고 채근한 걸 보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심경이 아닐까 싶다.

부정평가 60%…위기 징후인데
대통령에 직언하는 참모 안보여
위징의 간언 수용한 태종의 치세
교훈 얻어 무너진 신뢰 되찾길

도대체 왜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가. 엄밀한 진단이 필요하겠다.

윤 대통령은 소주성(소득주도성장), 창조경제 같이 단번에 확 꽂히는 정책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정책 성과가 아직 나오지 않은 탓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그러니 ‘홍보’를 강조하고 ‘모두 뛰라’고 주문한다. 마치 실적을 올리라고 독려하며 직원들을 등 떠미는 판촉부서 장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제품이 철 지난 모델이라면? 유행색이 아니라면? 소비자는 관심 없는 엉뚱한 면을 부각하며 판촉을 한다면? 아무리 구두굽이 헤지도록 뛴다 해도 소비자의 눈길을 끄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갤럽 조사에서 드러난 대통령 부정 평가의 가장 큰 이유는 인사 잘못(24%)이다. 그리곤 경험·자질 부족, 독단적 국정 운영, 소통 미흡, 직무 태도 등이다. 예상외로 경제·민생에 대한 불만(10%)은 그리 높지 않다. 국정을 끌어가는 자세와 태도에 대해 국민들이 옐로카드를 빼든 것으로 읽히는 이유다. 국정·정치경험 없이 대통령으로 직행한 윤석열 정부의 태생적 한계 때문일 수도, ‘검찰총장’에서 ‘대통령’으로의 모드 전환이 완성되지 못한 데서 오는 ‘시차적’ 현상일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은 국민 정서와는 달리, 여러 번 “이렇게 훌륭한 장관들…” “이전 정부보다 낫지 않나”며 ‘엘리트 내각’에 대한 자부심을 한껏 드러냈다. 좋은 학교 나오고, 순탄하게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관료(사시·행시·외시 출신)와 교수·전문가 출신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짜였다는 각료·참모들을 두고 이들과 정치적 동지 내지는 동업자 관계로 이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검사 출신의 과도한 기용, 측근·사적 채용 논란, 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 잡음이 되풀이되고 있는데, 누구 하나 나서서 직언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정권의 지지율이 곤두박칠쳐도 책임지는 사람도, 사과하는 사람도 없다. 정권과 운명을 같이한다는 공동체 의식의 부재이거나, 아니면 똑같은 생각을 하는 집단사고에 포획돼 촉수가 벌써 녹슬어버린 것이거나, 둘 중 하나다. 정치9단의 경지에 오른 국민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성군(聖君)은 하루아침에 뚝 떨어지지 않는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치세를 연 당 태종(이세민)을 보라. 그는 전쟁과 쿠데타를 거쳐 29세에 집권했을 때 오만하고 미숙하단 소릴 들었으나, 8대 명신이라 불리는 소신파 신하들과 소통하며 국정을 이끌어 태평성대를 이뤘다. 그중 간언하는 참모의 대명사로 위징(魏徵)이 꼽힌다. 오긍이 쓴 『정관정요』엔 위징이 무려 300번 간언했다고 돼 있는데, 태종은 “나를 거스르면서 진실되게 간언했고 내가 그릇된 일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며 무한 신뢰를 표시했다. 위징이 병에 걸려 세상을 뜨자 “구리로 거울을 만들어 의관을 단정하게 하고, 역사를 거울삼으면 천하의 흥망성쇠를 알고, 사람을 거울삼으면 득실을 분명히 할 수 있다. 위징이 세상을 떠났으니 거울 하나를 잃었다”며 슬퍼했다고 한다.

위징처럼 300번 간언할 순 없을테다. 위징조차 “성격이 유약한 사람은 속마음이 충직해도 말하지 못하고, 관계가 소원한 사람은 신임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해 말하지 못하며, 개인의 득실을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 의심하므로 감히 말하지 못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나만 열심히 하면 되지’라는 마음가짐으론 난국을 추스를 수 없다. 오히려 함께 추락할 뿐이다. 대통령 스스로 결단하기 쉽지 않은 문제(2부속실 신설, 특별감찰관 임명 등)부터 매듭을 하나씩 풀도록 직언하는 게 지금 참모들이 할 일이다. 그게 무너진 신뢰를 되찾는 길이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