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빚투족의 상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안효성 기자 중앙일보 기자
안효성 금융팀 기자

안효성 금융팀 기자

지난 2년간 요란했던 유동성 파티가 끝났다. 남은 건 머리가 깨질 듯한 숙취뿐이다. 자산 가격에 낀 거품이 꺼지며 ‘빚투족’(빚내서 투자)과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이 비명을 지를 수 있다는 걱정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올 초만 해도 이들은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었다. 낮은 금리로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고신용자들은 ‘영끌’로 집을 샀다. 지난해 국내 주택(부속토지 포함)의 시세를 합한 주택 시가총액은 6534조1876억원으로 1년 만에 14.1%(808조4488억원)가 늘었다. 빚을 내 집을 산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의 자산격차는 더 벌어졌다.

집을 사지 못한 청년들은 일확천금을 노리고 암호화폐 투자에 나섰다. 가격 변동이 심한 코인에 부나방처럼 달려들던 이들의 구호는 ‘한강뷰 아파트 아니면 한강 물’이었다. 주식과 암호화폐 투자로 수십억 원을 벌어 직장에서 퇴사했다는 무용담에 밤잠을 설친 이도 많았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취약계층에 대한 채무 감면 등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취약계층에 대한 채무 감면 등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불과 몇 개월 사이 상황이 변했다. 각국 중앙은행이 긴축에 나서며 암호화폐 등 자산가격이 하락했다. 금리가 오르며 빚 상환 부담도 크게 늘었다. 이제 영끌족과 빚투족은 사회가 보듬어야 할 대상이 됐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은 지난 20일 ‘영끌한 2030세대와 주택가격 하락기 정책적 대안’에서 “저금리 시기에 주택을 매입한 20·30세대에게 고정금리 전환 및 재산세 이연 등 적극적인 정책을 통해 2030세대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금융위원회도 “청년·서민의 투자 실패 등이 장기간 사회적 낙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이자감면 등을 지원책을 내놨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아예 이들에 대해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해주고 도와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자 “빚투족을 위한 대책이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의 말처럼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아 금융 분야에 부실이 퍼지고 다수의 청년, 자영업자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경우 사회적 비용이 더 커질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빠진 게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8일 “최근 금리가 상승하고 주가, 가상자산, 아파트값 다 떨어졌다”며 “대부분의 사람이 손해를 봤고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빚투족이 자산가격 하락으로 입은 상처와 치솟는 집값을 보며 울화통이 터졌던 무주택자, 벼락 거지가 됐다는 박탈감에 시달렸던 청년의 상처 중 어느 쪽이 깊을까. 정부는 빚 탕감 정책이 성실히 일한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