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취약층 돕기 위해 ‘기준 중위소득’ 충분히 올려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추경호 경제부총리(기획재정부 장관)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했다. 김상선 기자

추경호 경제부총리(기획재정부 장관)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했다. 김상선 기자

76개 정부 복지사업 기준선 상향 여지  

정부, 불황인 점 감안해 전향적 검토를

바람직한 복지의 기본은 취약층을 선별 지원하는 것이다. 소득에 따라 취약계층을 선별해 지원하는 시스템은 이미 갖춰져 있다. 박근혜 정부가 2015년 도입한 ‘기준 중위소득’이다.

중위소득은 우리나라 가구소득의 중앙값인데, 100명을 줄 세웠을 때 50번째 사람의 소득이다. 올해의 경우 1인 가구 기준 194만원이다. 매년 보건복지부가 중앙생활보장위원회를 열어 정하면 이를 기준으로 기초생활 보장 등 정부의 76개 복지사업 지원 대상자와 지원금이 확정된다. 소득 조사를 동반하는 거의 모든 복지제도에 기준선으로 쓰인다. 이를테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를 받으려면 가구소득이 기준 중위소득의 30% 이하여야 하고, 지원금도 기준 중위소득의 최대 30%까지다. 1인 가구의 경우 최대 58만3444원까지 받을 수 있다. 코로나 자가격리자 생활지원금도 이달 11일부터는 기준 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에만 지급된다.

취약계층의 ‘목숨줄’이라고 할 수 있는 기준 중위소득을 결정하기 위한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이번 주 초에 열렸지만 인상을 최소화하려는 기획재정부의 입장 때문에 결정이 29일로 연기됐다. 시민단체 등 민간위원들은 5%대 인상을, 기획재정부는 4% 초반 인상을 주장했다.

물가와 재정 부담을 감안해야 하는 재정 당국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보다 전향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고물가로 인한 취약층의 어려움이 우선 고려돼야 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6%대까지 치솟았다. 정부가 예상한 올해 물가상승률(4.7%)이나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5.0%)을 감안할 때 4% 초반의 기준 중위소득 인상은 충분한 수준으로 보기 힘들다.

소득재분배 차원에서도 불황일수록 취약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더 두텁고 촘촘하게 짜는 게 필요하다. 불황 때는 더 쓰고 호황 때는 덜 쓰는 방식으로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한다. 정부 스스로 복합위기라고 진단할 정도로 지금은 힘든 시기 아닌가.

재정 투입의 전체적인 효율성과 원칙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이미 자영업자 손실 보상 등을 위해 62조원 추경을 편성했고, 자영업자 채무조정에 최대 30조원의 재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빚을 내서 투자하는 ‘빚투’로 투자 손실을 본 만 34세 이하 저신용 청년층에 최대 50% 이자 감면까지 해줘 도덕적 해이 논란을 초래했다. 자영업자 빚을 최대 90%까지 탕감해 주는 조치는 원리금을 성실하게 갚아 온 채무자를 차별하는 행위가 될 수 있고, 코인이나 주식으로 손해를 본 청년의 빚투까지 이자를 깎아주는 건 세금 낭비라는 비판이 나왔다. 그런 정부가 유독 기준 중위소득 문제에선 깐깐한 곳간지기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