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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문자 유출, 오해 일으켜 유감”…이준석 “양두구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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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윤석열 대통령의 ‘내부 총질’ 텔레그램 메시지 파장이 27일에도 이어졌다.

대통령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언론에 노출시켰던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사과했다. 권 대행은 “사적인 문자 내용이 저의 부주의로 인해 유출 공개돼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당원 및 국민 여러분에게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권 대행은 “사적인 문자가 본의 아니게 유출됐기 때문에 그 내용에 대해선 확인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한다. 제 프라이버시도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이라며 추가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이준석 “대통령 메시지 정확하게 이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7일 경북 울릉군 사동항에서 선박 탑승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7일 경북 울릉군 사동항에서 선박 탑승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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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도 진화에 나섰다. 최영범 홍보수석비서관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권성동 직무대행께서 입장을 밝히고 설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대통령실이 공식적으로 추가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도 “사적인 대화 내용이 어떤 경위로든지 노출돼 국민이나 여러 언론에 일부 오해를 일으킨 점에 대해서는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다.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최 수석은 사견을 전제로 “당무는 당 지도부가 알아서 잘 꾸려 나갈 일이고, 윤 대통령이 일일이 지침을 주거나 하는 일은 없다”며 “우연한 기회에 노출된 문자메시지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거나 정치적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하는 것은 조금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전날 한 사진기자 카메라에 포착된 권 대행 텔레그램 메시지에서 윤 대통령은 “우리 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에 이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고 보냈다. 윤심(尹心)이 ‘이준석 징계’에 영향을 줬다는 해석이 가능한 문구다.

대통령실이 “오해”라고 하자 침묵하던 이준석 대표가 곧바로 반박에 나섰다. 울릉도에 체류 중인 이 대표는 관련한 중앙일보의 질문에 “오해할 여지없이 윤석열 대통령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카톡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 대표는 또한 페이스북에 “그 섬에서는 카메라가 사라지면 눈 동그랗게 뜨고 윽박지르고, 카메라가 들어오면 반달 눈웃음으로 악수하러 오고”라며 “이 섬은 모든 것이 보이는 대로 솔직해서 좋다”고 했다. ‘그 섬’은 여의도 정치권을, ‘이 섬’은 울릉도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어 “앞에서는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뒤에서는 정상배들에게서 개고기 받아와서 판다”며 ‘그 섬’의 광경을 비판했다. 겉은 번지르르하나 속은 변변치 않다는 사자성어 ‘양두구육(羊頭狗肉)’을 설명한 대목으로, 자신의 징계에 관여했다고 의심하는 세력을 겨냥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당원권 정지 6개월 중징계를 받고도 그간 불복 절차를 밟지 않고 전국을 돌며 현실정치와 거리를 둬 온 이 대표가 이번 파문을 계기로 본격적인 여론전에 나선 것이다. 당내 주류 세력, 즉 ‘윤핵관’에게 핍박받는 이미지를 강조할 가능성도 있다.

같은 날 권성동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과의 문자와 관련해 “국민께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허리를 숙이고 있다. 김상선 기자

같은 날 권성동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과의 문자와 관련해 “국민께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허리를 숙이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이른바 ‘이준석 키즈’로 불리는 청년 정치인들도 가세했다. 김용태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통령께서 당 대표를 싫어하셨다는 소문이 원치 않은 방식과 타이밍에 방증 된 것 같아 유감”이라며 “문재인 정권 때 문비어천가를 외쳤던 민주당 의원들을 강하게 비판하고, 586 앵무새처럼 안 되려고 옳은 소리 낸 것을 ‘내부 총질’로 인식했다는 게 매우 아쉽다”고 했다. 천하람 국민의힘 혁신위원도 “윤 대통령이 강한 워딩으로 이 대표에 대한 생각을 드러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윤핵관 그룹에 영향을 준 것 아니냐”고 했다.

여권에선 ‘권성동 책임론’도 불거졌다. 앞서 권 대행은 대통령실 9급을 둘러싼 ‘사적 채용’ 논란이 커지자 “장제원 의원에게 (내가) 압력을 가했다” “7급에 넣어줄 줄 알았는데 9급이더라” 등의 발언으로 논란을 자초했다. 지난 4월엔 ‘검수완박’ 법안에 합의했다가 번복했다.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권 대행의 메시지가 삐끗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홍준표 “대통령도 사람입니다” 글 올려

지난 26일 국회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문자로 대화한 휴대전화 화면 모습.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지난 26일 국회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문자로 대화한 휴대전화 화면 모습.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다만 여권 인사들은 공개 비판을 자제했다. 차기 당권 주자로 분류되는 김기현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사적인) 문자를 공개하는 게 좋은 일은 아니다. 아주 곤혹스러운 상황”이라면서도 “그걸 가지고 여기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닌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반면에 홍준표 대구시장은 자신의 온라인 채널에 ‘윤석열 본심 드디어 드러났는데, 한마디 해주십시오’라는 질문이 올라오자 “대통령도 사람입니다”며 윤 대통령을 감싸는 듯한 언급을 했다.

민주당은 “이 대표 제거가 윤 대통령과 ‘윤핵관’의 공동 작품이라는 게 사실로 확인됐다”며 공세를 폈다. 우상호 비대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집권 여당 대표를 제거하고 나서 기분이 좋아서 직무대행에게 이런 문자를 보낼 정도로 대한민국이 한가한가”라며 “언제는 이 대표에 의지해 젊은이들에게 표를 구걸하다가 이제 ‘내부 총질한다’며 잘라내는 윤 대통령과 윤핵관의 미소를 보며 정치가 잔인하다고 한 번 더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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