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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고기서 종합식품 회사로…간편식 50개 신제품 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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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만든 음식은 좋고, 공장에서 만든 음식 그렇지 않다?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재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신선한 식재료를 소비자가보다 더 싸게 사서 더 깨끗하고 맛있게 조리하는 거죠. 가정식 대체재(HMR·Home Meal Replacement)가 아니라 가정식 그 자체(HMI·Home Meal Itself)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겠습니다.”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하림타워에서 만난 김홍국(65) 하림지주 회장은 간편식 시장에서 하림의 비전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하림은 지난해 10월 ‘더 미식 장인라면’을 시작으로 올해 5월 ‘더 미식 밥’ 등 가정간편식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닭고기 생산을 넘어 종합식품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다.

김홍국 하림지주 회장 단독 인터뷰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하림 사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하림 사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고기 향 넣은 가짜 국물? 뼈 20시간 고았다”

하림이 가정 간편식 시장에 진출하면서 내세운 것은 가정식 그 자체라는 의미의 HMI다. 간편식이 빠르게 우리 밥상을 대체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가공식품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는 데서 기회를 봤다.

하림은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생산하는 기업이라는 이점을 활용, 이런 인식을 넘는 건강한 가정 간편식을 내세운다. 김홍국 회장은 “인공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고 닭 뼈·돼지 뼈·소뼈·대파를 20시간 저온에서 푹 고아 농축한 액상 수프를 담은 라면을 만들고, 즉석 밥도 밥과 물만 넣고 무균 공정으로 만들어 보존제를 포함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음식을 만드는 하림의 식품 공장을 ‘퍼스트 키친(first kitchen)’이라고 표현했다. 김 회장은 “예전 집의 주방에서 하던 요리를 공장에서 대신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집은 오히려 세컨드 키친(second kitchen)이 됐다”며 “퍼스트 키친에서 만든 요리를 데우거나 간단히 조리해 즐기는 공간이다. 다만 재료 선택이나 공정에 더 공을 들였다”고 덧붙였다.

좋은 재료를 쓰고 공정을 첨단화한 만큼 값은 비싼 편이다. 장인라면은 개당 2200원으로 신라면 블랙(1700원)이나 오뚜기 진짬뽕(1700원)보다, 더 미식밥(2300원)은 CJ제일제당 햇반보다 20% 이상 비싸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가격이 프리미엄이 아니라 품질이 프리미엄”이라며 “국민 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가는 시점에 가격이 비싸도 제대로 된 식자재로 만드는 음식을 선택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답했다.

하림은 이취가 없고 하얗게 탈색하지 않은 밥 고유의 색깔을 내새운 프리미엄 즉석밥 '더 미식 밥'을 출시했다. [사진 하림]

하림은 이취가 없고 하얗게 탈색하지 않은 밥 고유의 색깔을 내새운 프리미엄 즉석밥 '더 미식 밥'을 출시했다. [사진 하림]

하림의 더 미식 라인은 향후 50여 개 품목으로 확대된다. 하반기에 아욱을 넣은 된장 라면과 김치라면, 부대찌개 라면 등을 출시할 예정이다.

“양재동 물류단지 5년 후 완공 목표”

다만 최근 원자잿값과 물류비가 오르면서 국내 식품 기업의 상황은 녹록지 않은 편이다. 김 회장은 “국제 원자재 시장 불안 등으로 가격 인상 압력이 커지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각 계열사가 개별 상황에 맞게 잘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하림그룹은 서울 양재동에 첨단물류단지를 계획하고 있다. e커머스(전자상거래)가 일상화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도시 내 생활물류 수요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다. 도심 물류단지는 국내선 처음 도입 및 시행되는 제도로 인허가권자인 서울시와 갈등을 빚으며 사업이 지연됐으나 지난해 감사원이 하림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재추진되고 있다.

김 회장은 “도심 내에 물류단지가 생기면 물류비가 내려갈 뿐 아니라 물류 단계가 줄면서 포장 쓰레기와 탄소 배출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며 “2015년에 관련법이 만들어지면서 추진했는데, 비싼 땅에 물류 단지를 짓는 만큼 법에 정해진 용적률 혜택 등을 받은 것이 일부 오해가 있어 지연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림은 물류단지 건설에 약 5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2027년 완공 목표다.

양재동 도시첨단물류단지 조성 개요. [사진 하림산업]

양재동 도시첨단물류단지 조성 개요. [사진 하림산업]

“시장에 자유 주는 게 중요”

김 회장은 맨손으로 양계 사업을 시작해 하림을 업계 1위 기업으로 일군 대표적 자수성가형 사업가로 꼽힌다. 특히 지난 2015년 곡물 유통 사업을 위해 해운사 팬오션을 인수하면서 자산 10조원 규모의 대기업 집단에 포함됐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해운업이 호황을 이어가면서 팬오션 인수가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최근 대두한 해운업 침체 우려에 대해 김 회장은 “2009년부터 해운업 불황이 10년을 갔고, 2019년부터 조금씩 좋아졌다. 이번 호황도 적어도 3~4년은 더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김 회장은 지난 5월 2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환영 만찬이 열렸을 때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지난 2011년 미 델라웨어주의 닭고기 회사 ‘엘런패밀리푸드’를 인수하면서 인연을 맺은 것이 계기가 됐다. 델라웨어는 바이든 대통령이 2009년까지 상원의원을 지낸 곳이다. 김 회장은 “환영 만찬에 참석하게 돼 영광이었다”면서 “미국 정치인들은 일자리와 직결된 기업 활동에 관해 관심을 갖고 지원하려 하기 때문에 하림을 특별히 기억해 부른 것으로 안다”고 했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하림 사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하림 사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김 회장은 27일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첫 대통령 직속 위원회인 국민통합위원회의 경제·계층 분과 민간 위원으로 선임됐다. 새 정부에 기업인으로서 바라는 점에 대해 김 회장은 “시장에 자유를 주는 게 중요하다. 방종이 아니라 스스로 통제도 하는 질서 자유주의”라며 “자유로운 기업 활동과 정상적 시장 원리가 작동하는 기업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하림이 대기업으로 지정이 되면서 각종 규제를 받고 있는데 오히려 JBS나 카길 등 자산 규모가 훨씬 큰 글로벌 식품 기업은 국내 사업에 아무런 규제가 없다”며 “해외 업체는 부당하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도 하는데, 국내 업체는 외려 모래주머니를 차고 사업하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김홍국 누구

1957년 전라북도 익산에서 태어났다. 11살 때 외할머니가 사준 병아리 10마리로 시작해 하림의 모체인 ‘황등농장’의 농장주가 됐다. 1986년 하림식품을 설립한 뒤 2001년 천하제일사료·올품·엔에스쇼핑 등을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이후 주원산오리·선진·엘런패밀리푸드·팬오션 등을 인수했다. 하림은 현재 자산 15조원으로 대기업 순위 27위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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