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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ㆍ금리ㆍ환율 3중高…한층 더 커진 ‘R’ 공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7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 환율 등이 표시돼있다. 연합뉴스

27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 환율 등이 표시돼있다. 연합뉴스

‘우울하고 한층 더 불확실한(Gloomy and more uncertain)’.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을 비롯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춰 발표한 지난 26일(현지시간). 올리비에 블랑샤 전 수석이코노미스트가 IMF 공식 블로그에 올린 글 제목이다. IMF와 같은 주요 경제전망기관과 경제 석학이 최근 던지고 있는 메시지는 한결같다. ‘경기 침체가 오고 있다’는 경고다.

26일 CNBC 조사에 따르면 펀드매니저ㆍ경제분석가ㆍ경제학자 30명 가운데 63%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물가를 잡기 위해 벌이는 강도 높은 긴축 노력이 경기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고 봤다. 55%는 침체가 1년 안에 닥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 달 전 응답 때보다 20%포인트 오른 수치다.

이들 대부분은 가벼운(mild) 정도의 경기 침체를 예상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하며 ‘닥터 둠’이란 별명을 얻은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이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25일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경기 침체가 짧고 가볍게 지나갈 것이란 예측은 완벽한 망상”이라고 일축했다.

한국 경제에도 ‘R(Recessionㆍ경기 침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물가와 금리가 오르고 원화 값은 주저앉으며(환율은 상승) 경기 하강 위험이 한층 커졌다.

침체 우려에 시장이 가장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2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 값은 전날보다 5.7원 내린 1313.3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는 소폭(0.11%) 올랐지만 원화가치는 내리막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후 한때 1314.9원까지 하락하는 등 내내 불안하게 움직였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기준금리 향방을 결정짓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외환시장의 불안감을 키웠다. Fed가 지난달에 이어 0.75%포인트 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전망이 압도적이다. 물가가 어디까지 올라갈지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자이언트 스텝’을 이어간다는 분석이다. 달러화 ‘몸값(금리)’이 치솟으면서 상대적 원화가치가 더 떨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 물가 상황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최고인 6%(6월)로 올라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언제 ‘피크(정점)’를 찍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날 한국은행은 지난달 기대인플레이션이 전달보다 0.8%포인트 오른 4.7%라고 밝혔다. 소비자가 1년 뒤 물가 상승률이 얼마일지 예상한 수치다. 2008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고다. 현장 물가는 심리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종현 한은 통계조사팀 과장은 “소비자들이 현재 보여지는 물가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최근 물가가 높아지면서 1년 후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 예상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가를 잡기 위해, 치솟고 있는 미국 금리를 따라잡기 위해 한은도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서두를 가능성이 커졌다. 1859조원 가계빚에 짓눌린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다. 경기 회복 동력이었던 소비마저 고금리ㆍ물가 탓에 힘을 잃어가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로 소비가 살아나며 올 2분기 0.7%(전 분기 대비) ‘반짝’ 경제 성장이 가능했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2분기 ‘서프라이즈(기대 이상 성장 호조)’는 역설적으로 하반기 조정의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며 “인플레이션과 코로나19 재확산 등이 6월 중순 이후 소비 심리를 잔뜩 위축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26일 부산 남구 용당부두에 가득 쌓여있는 컨테이너들 모습. 뉴스1

26일 부산 남구 용당부두에 가득 쌓여있는 컨테이너들 모습. 뉴스1

이날 한은이 발표한 조사 결과를 봐도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6으로 한 달 전보다 10.4포인트 내렸다. 3개월 연속 하락하며, 코로나19 한파가 극심했던 2020년 9월 이후 처음으로 90 밑으로 내려앉았다. 100을 기준으로 수치가 낮을수록 소비 심리가 나쁘다는 의미다.

김예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경기 둔화에도 불구 금리 인상 기조는 이어지고 (정부의) 재정 여력도 제한되면서 소비 심리는 추가로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다시 10만 명을 훌쩍 넘어선 것도 소비 위축을 가중시킬 요인이다.

경제위기 때마다 버팀목 역할을 했던 수출은 오히려 경기 둔화 위험을 키우는 요소가 됐다. 관세청 집계에 따르면 이달 1~20일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 적자는 81억200만 달러(약 10조6000억원)를 기록했다. 지난 4월부터 4개월 연속 적자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원자재 가격 상승, 원화 값 하락으로 수입액이 크게 불어난 반면 수출액 증가율은 예년만 못해서다.

최유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무역수지 적자 등) 무역지표 약화의 원인은 수입 증가와 수출 둔화 두 가지”라며 “수입 증가는 (에너지 가격 안정 시) 개선 여지가 있으나 수출 둔화는 경기 하강을 반영하고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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