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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문자 파문에 침묵 깬 이준석, '싸움닭' 대신 뜻밖의 반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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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할 여지 없이 윤석열 대통령의 (텔레그렘) 메시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27일 경북 울릉군 사동항 여객터미널에서 선박 탑승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27일 경북 울릉군 사동항 여객터미널에서 선박 탑승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정국에 파문을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의 이른바 ‘내부 총질’ 문자 메시지와 관련된 중앙일보의 질문에 이준석 대표가 27일 오후 보내 온 카톡 메시지다.
그는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후 전국을 돌며 중앙 정치와 거리를 둬왔는데, 윤 대통령의 문자가 확인된 다음날 이 대표가 정치적 침묵을 깬 모양새다.

전날 윤 대통령은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에게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에서 이 대표를 일컬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고 언급했다.

 권 대행은 전날 밤 페이스북에 사과의 글을 올리며 “윤 대통령이 일부에서 회자되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파장은 더욱 커졌다. 특히 더불어민주당까지 “윤 대통령이 이 대표 징계에 관여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며 공격에 가세했다. 그러자 대통령실은 "사적인 대화 내용이 어떤 경위로든지 노출이 돼 국민이나 여러 언론에 일부 오해를 일으킨 점에 대해서는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다.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대통령실 관계자가 "“이 대표가 오해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고 하자 침묵을 지켰던 이 대표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울릉도에 체류 중인 이 대표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그 섬에서는 카메라 사라지면 눈 동그랗게 뜨고 윽박지르고, 카메라 들어오면 반달 눈웃음으로 악수하러 오고”라며 “이 섬은 모든 것이 보이는 대로 솔직해서 좋다”고 했다. ‘그 섬’은 여의도 정치권을, ‘이 섬’은 울릉도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어 “앞에서는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뒤에서는 정상배들에게서 개고기 받아와서 판다”며 '그 섬'의 광경을 비판했다. 겉은 번지르르하나 속은 변변치 않다는 사자성어 ‘양두구육(羊頭狗肉)’을 설명한 대목으로, 자신의 징계에 관여했다고 의심하는 세력들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셈이다.

그간 윤리위원회 재심 청구나 징계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 등의 불복 절차를 밟지 않고 침묵을 지켜온 이 대표가 이번 파문을 계기로 본격적인 여론전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지지율 하락 국면에서 윤석열 정부의 움직임을 관망해온 이 대표가, ‘이제는 반등의 모멘텀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이 대표 징계 후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 대한 긍정 여론이 동반 하락하고 있고, 일부 여론 조사에서는 이 대표가 차기 당 대표 선호도 1위였다. 그래서 이 대표가 여론전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는 설명이다.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 398회 임시회 6차 본회의 대정부 질문도중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문자대화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 398회 임시회 6차 본회의 대정부 질문도중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문자대화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경찰국 논란으로 경찰 수사의 공정성 시비가 붙고 있는 현실이 이 대표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이 대표의 성 상납·증거 인멸 교사 의혹 관련 수사를 진행중이다. 이 대표의 또다른 측근은 “지금 경찰은 윤석열 정부의 경찰국 신설에 ‘독립성’을 이유로 맞서고 있다”며 “이 대표를 기소하면 경찰이 ‘윤심(尹心)’의 영향을 받았다는 의심을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대표가 ‘공격 일변도’의 모습을 보였던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여론을 이끌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 대표는 징계 직전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배후에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관계자)’이 있다”며 공격적인 모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이제는 여론 추이를 지켜보며 당내 주류 세력에게 핍박 받는 ‘약자’의 이미지를 강조할 가능성이 있다.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어쨌든 지금 당내에서 강자는 윤핵관 그룹이다. 가만히 있어도 이 대표가 점수를 따는 구조에서, 일부러 윤 대통령이나 윤핵관 그룹을 공격해 ‘싸움닭’ 이미지를 부각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 대표는 이날 일부 언론에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마음이 혼란스럽다. 주변에서 비슷한 얘기를 해도 말을 꺼내지 말라고 했던 게 저”라며 다소 차분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대표의 대리전에는 이른바 ‘이준석 키즈’로 불리는 청년 정치인들이 일제히 나섰다. 김용태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MBC라디오에서 “대통령께서 당 대표를 싫어하셨다는 소문이 원치 않은 방식과 타이밍에 방증 된 것 같아 유감”이라며 “문재인 정권 때 문비어천가를 외쳤던 민주당 의원들을 강하게 비판하고, 586 앵무새처럼 안되려고 옳은 소리 낸 것을 '내부 총질'로 인식했다는 게 매우 아쉽다”고 했다.

이 대표가 주도한 대변인 오디션 ‘나는 국대다’ 출신의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이준석 대표의 투쟁, 그 과정에 많은 부침이 있었던 게 사실이나 그것이 ‘내부 총질’이라는 단순한 말로 퉁칠 수 있는 것이었나”라고 글을 썼다.

천하람 국민의힘 혁신위원은 YTN라디오에서 “윤 대통령이 강한 워딩으로 이 대표에 대한 생각을 드러냈기 때문에,어떤 형태로든 윤핵관 그룹 (의 이 대표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은 계속 나올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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