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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백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지도에 나온/조선국 자리 위에/시커멓도록/먹물을 칠해가며/가을바람을 듣네.’ -‘9월 밤의 불평(九月の夜の不平)’ 중.

일본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는 1910년 9월, 일본의 조선 병합에 대한 분노를 단카(短歌)로 적었다. 지도 위 일본과 같은 색깔로 그려진 조선을 보고 싶지 않았는지 먹으로 칠했다. 그는 일본 이와테현 출신이다. 혼슈 북부로 근대화에서 비켜선 ‘깡촌’이었다.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그는 26세로 요절할 때까지 많은 단카를 남겼는데,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도시에서 느끼는 쓸쓸함 등을 서정적으로 담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시카와를 좋아했던 평북 정주 출신의 시인 백기행은 필명을 백석(白石)으로 지었다. 이시카와(石川)의 ‘石’을 가져온 것이다. 도쿄에서 공부한 백석도 도시적 감성보다 평안도 사투리를 녹인 향토색 짙은 시를 남겼다. 그에게서 이시카와의 영향을 찾는 평론가도 있다.

한국과 일본은 정치적 긴장 속에서도 문화적으로 많은 영향과 자극을 주고받았다. 그런 가운데 양국 문화가 발전해왔다. 2018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2020년 미국 아카데미상을 휩쓴 봉준호 감독은 서로 팬을 자처하는 사이다.

최근 유희열의 사카모토 류이치 표절 의혹은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이후 1990~2000대를 풍미했던 많은 가요에서 일본 음악과의 유사성이 지적되고 있다. “추억을 도둑맞은 기분”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영향을 인정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