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동윤 9단
바둑은 두뇌를 쓴다. 그러나 바둑 세상은 맹수가 선비를 이긴다. 핏빛 야성이 잿빛 이성을 이긴다.
지난주 33세 강동윤(사진) 9단이 그 ‘야성’을 앞세워 박정환 9단을 2대0으로 격파하고 YK건기배 우승컵을 따냈다. 한국바둑 투톱 중의 하나인 박정환의 우승이 점쳐졌지만, 승자는 강동윤이었다. 강렬한 수읽기와 예측불허의 변화를 앞세워 박정환을 꺾었다. 6년 5개월만의 우승이었다. 강동윤은 용성전에서도 결승에 올라 최강 신진서와 우승컵을 다툰다. 26일 1국에서는 졌지만 28·29일 2·3국을 남겨두고 있다.
강동윤은 이미 13년 전(2009년) 후지쓰배 세계대회서 우승했고 2016년엔 LG배 세계기왕전에서도 우승했다. 89년생 동갑인 김지석 9단과 함께 이세돌 9단의 후계자로 지목되곤 했다. 그러나 이세돌의 후계자 자리는 박정환에게 넘어갔고 다시 신진서라는 강력한 일인자가 등장했다. 무심한 승부 세계의 수레바퀴는 강동윤을 지나쳐 멀리 굴러가고 있었다. 강동윤은 여전히 맹수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지만 파미르고원의 눈표범처럼 정말 어쩌다 눈에 띄곤 했다.
그러나 올해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강동윤이 중요한 고비마다 두는 족족 이기고 있었다. LG배에선 8강에 진출했고 농심신라면배 한국대표로 선발됐고 앞서 말한 YK건기배에서 생애 9번째 우승컵을 따냈다. 한국랭킹은 지난 2월 13위에서 4위까지 급상승했다. 그리고 신진서와의 용성전 결승이 시작되었다. 요즘 강동윤의 기세를 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속단할 수 없다.
2008년 강동윤이 19세일 때의 신문기사를 찾아본다. 내가 쓴 기사인데 제목은 “강동윤 VS 이세돌 닮은꼴 맹수 … 누가 더 셀까”.
그의 랭킹은 지금과 똑같이 4위였다. 1위 이세돌, 2위 이창호, 3위 목진석, 4위 강동윤. 막 떠오른 신예 강동윤이 세계최강 이세돌 9단과 박카스배 결승전을 앞두고 있었다.
“고양잇과의 대표기사는 조훈현이고 그 맥락을 이은 기사가 이세돌이다. 이세돌은 스라소니처럼 사나우면서도 고독한 맹수의 발톱을 지닌 기사. 그 계열에 동참하는 또 다른 기사가 강동윤이다. 이 둘의 바둑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도 많다. 실리에 민감하면서도 공격적이라는 점, 예측불허의 수법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 찬스에 강해 한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점(…).”
나는 이 기사를 강동윤에게 보내며 두 가지 질문을 했다. 14년 전과 지금 똑같이 한국랭킹 4위지만 차이점은 많을 것이다. 그 차이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다른 하나는, 똑같이 세계최강이지만 선배로 맞이했던 이세돌과 후배 신진서의 차이는 무엇인가.
강동윤의 답변은 진지하다.
“어렸을 때는 수읽기와 순발력이 좋았는데 부분에 치우친 바둑을 두었고 지금은 수읽기가 많이 느려진 대신 반면 운영이 좋아졌다.”
“선배 이세돌과 후배 신진서는 공통점밖에 생각이 안 난다. 압도적인 수읽기와 위압감이 비슷하다. 굳이 따진다면 이세돌은 큰 승부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이고 신진서는 모든 바둑을 다 이긴다.”
강동윤은 바둑 스타일상 고양잇과로 분류되지만 사실 그는 감성이 매우 풍부한 기사다. 그의 가늘고 긴 손가락을 볼 때마다 나는 피아노를 떠올리곤 했다. 강동윤은 그 손가락으로 바둑판 위에서 격정적인 연주를 보여준다. 한때 그를 ‘깡통’이란 별명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강동윤의 강동을 격음화한 별명인데 존중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 별명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나빴다. 본인은 어땠을까.
나는 그가 ‘피아니스트’로 불리기를 희망한다. 승부는 계속 이길 수 없지만 바둑판 위의 연주는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계속 할 수 있다. 나이 서른이 넘으면 내리막이라지만 강동윤은 일단 다시 돌아왔다. 강동윤의 귀환을 환영한다. 설령 일시적일지라도 승부 세계의 귀환은 다 멋있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