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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문란" vs "14만 전체 경찰회의"…30일 '경란' 분수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을 둘러싼 경찰 내부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경위·경감급 전국현장팀장회의 주최측은 30일로 예고된 회의를 ‘14만 전체 경찰회의’로 확대 추진키로 했다. 정부에서 “중대한 기강 문란”이나 “쿠데타”와 같은 강경 발언 기조가 이어지자 일선 경찰관들의 반발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다만 전국총경회의를 주도해 경찰청으로부터 대기발령 조치를 받은 류삼영 총경이 26일 오후 전체 경찰회의를 만류하는 글을 경찰 내부망에 올린 것이 변수로 떠올랐다. 30일 회의가 참석자 규모 등에 따라 ‘경란(警亂)’의 분수령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치안감 번복사태 이어 또다시 ‘국기문란’ 등장

 윤석열 대통령은 26일 지난 전국총경회의 등경찰 내부 반발에 대해 “정부가 헌법과 법에 따라 추진하는 정책과 조직개편안에 대해 집단으로 반발한다는 것이 중대한 국가의 기강 문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에 이어 재차 ‘국기 문란’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 역시 전날 “쿠데타에 준하는 상황”이라고 비유한 데 이어 이날도 “부화뇌동(附和雷同)이며,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지난 24일 전국현장팀장회의를 처음 제안한 김성종 서울광진경찰서 경감은 이날 경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현장 동료들의 뜨거운 요청들로 ‘전국 14만 전체 경찰회의’로 변경하게 됐다”고 공지했다. 김 경감에 따르면 참석자는 1000여명 규모로 예상된다. 회의는 유튜브로 생중계된다. 지난 23일 50여명이 현장에 참석하고, 140여명이 온라인으로 참여한 전국총경회의보다 규모와 범위가 더 커지는 것이다. 장소도 충남 아산인재개발원 강당이 아닌 대운동장으로 바뀌었다.

 전날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가 “더는 집단 의사표시 행위는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경고했지만, 집단 반발의 세는 늘어나는 모습이다. 김 경감은 '쿠데타' 발언을 겨냥한 듯 “이번 회의는 총, 무기와 1도 관계없는 저 혼자서 기획·추진하는 토론회로 쿠데타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썼다. 그런 뒤 윤 후보자를 향해 “총경들에게 하셨던 불법적인 해산명령을 저희 14만 전체 경찰에도 똑같이 하실 건지 똑똑히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가 26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뉴스1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가 26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뉴스1

“국기문란 상습범 됐다” 경찰 내부 반응도

 대통령과 장관의 강경한 언사에 일선에선 “벌써 국기 문란 2범이 됐다”“이제 국기문란 상습범이다”라는 등 냉소적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 경찰관은 “법률적 문제를 떠나 대통령과 장관의 발언에 이미 여러 번 상처를 받았다”며 “경위·경감급은 잃을 게 별로 없는 사람들이라 쉽게 말릴 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빨리 조직을 안정시키고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 신뢰를 회복할 것”이라고 한 윤 후보자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장은 다음 달 4일로 잡힌 국회 인사청문회에 집중하면서 이후 총경급 워크숍 등을 통해 소통 행보를 늘려가려던 계획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당내 윤석열 정부 경찰장악저지 테스크포스(TF)를 당 차원 대응 기구인 ‘경찰장악저지 대책위원회’로 격상하는 등 총력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국회 청원 10만명 넘자 류삼영 총경 글 올려 

 변수는 전국총경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총경의 제안이다. 류 총경은 이날 오후 6시30분쯤 경찰 내부망에 글을 올렸다. 그는 “전국 총경회의 이후, 경찰국 설치 및 지휘규칙 신설에 대한 국민적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향후 국회에서도 경찰의 민주적 통제방안에 대한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한다”며 “여기서 경찰관이 다시 모임을 추진하는 것은 국민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드릴 수 있다”고 썼다. 류 총경의 글은 경찰국 신설을 반대하는 국회 ‘국민동의’ 참여 인원이 이날 시작 8시간 만에 10만명을 돌파한 직후 올라왔다. 국회법상 10만명을 넘으면 소관 상임위원회가 정식으로 해당 안건을 다뤄야 한다.

 류 총경은 동료 경찰관들을 향해선 “정제되지 않은 의견 제시와 항의만으로 경찰의 민주적 통제장치가 마련되는 것은 아니다”며 “일단은 국회에서 논의되는 과정을 살펴봐주시고, 지지하는 방안에 대해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힘을 실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윤 후보자에게도 “직무대행께서 동료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공식 지시를 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류 총경의 글이 올라온 이후 경찰청은 27일부터 3일간 전국 18개 시ㆍ도청장 주관으로 현장 경찰관을 대상으로 한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23일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에서 류삼영 울산중부경찰서장(총경)이 인터뷰를 마치고 회의장을 향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3일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에서 류삼영 울산중부경찰서장(총경)이 인터뷰를 마치고 회의장을 향하고 있다. 뉴스1

경찰국 신설안, 국무회의 통과…다음 달 2일 공포·시행

 한편 정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행안부 경찰국 신설을 위한 ‘행정안전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일부개정령안’을 의결했다. 행안부에 경찰국을 신설하고 경찰 12명을 포함해 총 13명을 증원 배치하는 내용이다. 행안부 경찰국 신설안은 다음 달 2일부터 공포ㆍ시행된다. 경찰 내부망에는 “1990년 치안본부 시절로 돌아간다. 역사의 죄인이 된 것 같다”는 등의 반응이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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