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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개발 결재한 그 땅 샀다…투기가 너무 쉬웠던 LH직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6월 부동산적폐청산시민행동 이호승 씨가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LH 해체해 20-30세대, 무주택자, 철거민 희망주자 기자회견을 하던 모습. [뉴스1]

지난해 6월 부동산적폐청산시민행동 이호승 씨가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LH 해체해 20-30세대, 무주택자, 철거민 희망주자 기자회견을 하던 모습. [뉴스1]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보안은 허술했다. 보안보다 허술한 공직 윤리는 불법 투기로 이어졌다. 자신들이 결재하고 심의한 신도시 개발 정보를 활용해 토지를 매입하거나, 사장 결재를 건너뛴 공문을 만들어 불법 매입한 토지를 지인에게 되팔아 수억 원의 이득을 챙겼다.

감사원은 26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내부 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부당거래와 LH 및 국토교통부 직원들의 농지법 위반 현황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3월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이 터진 뒤 참여연대가 신청한 공익감사 청구 결과다. 감사원은 이미 경찰 수사를 받는 LH 임·직원을 제외하고도 감사 과정(2021년 5월~7월)에서 25명을 추가로 수사 의뢰했다. 50여명의 감사관을 투입해 2016년부터 2021년 4월까지 LH가 관여한 106개의 공공택지지구를 모두 살펴봤다. 미공개 개발정보를 활용한 부동산 투기 혐의는 LH 직원(8명)에게 집중됐다. 농지 불법 취득 혐의와 관련해선 LH 직원(10명)과 국토교통부 직원(5명) 그리고 민간인(2명)이 적발됐다. 감사원은 LH에 재발 방지 대책 수립과 수사의뢰자에 대한 해임 및 파면도 요청했다. 농지법 위반과 관련해선 실제 농지의 경작자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내부 정보 이렇게 활용됐다

LH 서울본부에 근무하던 A씨는 2018년 업무보고와 주간경영 자료를 결재하는 과정에서 남양주에서 진행 중인 도시개발사업을 확인했다. A씨는 이후 도시개발지구와 불과 131m 떨어진 지역에 토지와 건물을 배우자 명의로 5억 7000만원에 취득했다. 이번 감사 과정에선 서울뿐 아니라 대전과 전북·대구·경남지역 본부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견됐다. 이들은 모두 대외비성 업무자료를 보고받거나 직접 심의하는 과정에서 개발 정보를 알게 된 뒤 투기를 했다. 개발 지역과 인접한 토지를 매입했는데 개발지와의 거리는 최소 50m에서 최대 500m 이내 범위였다. 감사원은 LH가 업무보고 및 주간경영회의자료와 같은 공개 자료에 사업후보지가 실명으로 노출되게 했고, 직원들에 대한 보안의식 고취 노력도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5월 부동산적폐청산 시민행동 회원들이 31일 오전 서울 강남구 LH서울지역본부 앞에서 'LH 퇴출해 부동산투기공화국 해체하자 기자회견'을 연 뒤 LH 해체를 촉구하며 팻말을 발로 밟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5월 부동산적폐청산 시민행동 회원들이 31일 오전 서울 강남구 LH서울지역본부 앞에서 'LH 퇴출해 부동산투기공화국 해체하자 기자회견'을 연 뒤 LH 해체를 촉구하며 팻말을 발로 밟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LH의 토지매입 권한을 활용해 토지를 불법적으로 매입한 뒤 지인에게 되팔아 이득을 챙긴 경우도 있었다. LH강원본부에서 근무했던 B씨는 2015년 고등학교 동기 및 선배들과 상가 건설을 목적으로 토지를 취득했다. 이후 보유 토지와 인접한 강릉소방서 필지를 추가로 매입하려 LH를 동원했다. B씨는 LH를 통해 해당 필지를 비교적 저렴하게 매입한 뒤 자신과 상가 관련 토지를 함께 매입한 지인들에게 팔았다. 이후 해당 토지의 권리의무를 지인들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승계해 사인에게 되팔아 6억 1000만원의 이득을 챙겼다. LH가 해당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B씨는 사장의 매각 계획 승인과 동료와의 협의도 없이 전결 처리 등으로 토지를 매입하고 되파는 대범함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지인들에게 민원을 넣게 해 LH의 토지 매입 명분을 만들려 하기도 했다.

실제 농지 경작자는 조사 안 해 

농지법 위반은 실제 경작 의사 없이 농지취득자격증명 신청서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취득 이후 농작물을 경작하지 않고 타인에게 위탁하는 사례가 발견됐다. 한 국토부 공무원은 벼를 경작하겠다며 세종시의 농지를 취득한 뒤 한국농어촌공사에 전부 임대를 했다. LH 부산·울산지역본부 관계자는 농지를 취득한 뒤 시멘트 포장공사를 해서 공장과 창고로 임대했다. 감사 과정에서 3억 8000만원의 직접지불금이 불법 임대차 중인 농업인들에게 지급된 사실도 드러났다.

서울 종로구 감사원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감사원의 모습. 연합뉴스

감사원은 농지법 위반과 관련해 농림수산식품부가 농지이용실태와 관련한 경작현황 조사 방안을 수립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농지의 실제 경작자를 확인하는 경작 현황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불법 농지 임대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감사 과정에서 농식품부에 “농지 소유자로부터 경작 사실이 확인 가능한 자료를 제출받아 별도의 불법 임대 대처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통보했다. 농림부는 감사원의 지적을 받고 지난해 7월 농지이용실태조사 운영지침을 만들었다. LH도 감사 뒤 징계인사위원회 개최를 통해 신속한 후속절차를 진행하겠단 방침이다. LH관계자는 “작년 사태 이후 투기 재발 방지를 위한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전 직원의 재산등록과 토지 거래 상시 검증 시스템을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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