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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예영준의 시시각각

대한민국의 법치를 부정한 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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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

스스로를 ‘평양시민 김련희’라고 표현하는 한국 거주 12년 차의 탈북민 여성이 있다. 한국으로 밀항해 두 달 일하면 돈을 벌어 평양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브로커의 말에 속아 입국했으며, 남한에서 살 의사가 전혀 없으니 가족들이 살고 있는 평양으로 송환해 달라는 게 김련희씨의 일관된 요구사항이다. 2016년에는 서울에 있는 베트남대사관에 뛰어들어 망명을 요청했다가 거부당하고 한국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이 일로 국가보안법상의 잠입 탈출 혐의가 적용돼 재판까지 받고 풀려났다. 북한 외교관 출신의 태영호 의원은 김련희씨처럼 북한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탈북민을 보내고 대신 국군포로나 한국인 억류자 등을 돌려받자는 주장을 한다.

판문점 송환 순간 선원의 몸부림
생존본능 앞에서 ‘진정성’ 따진 건
국민을 속일 수 있다고 믿는 행위

올해 초 동부전선 경계망을 뚫고 북한으로 간 체조선수 출신 탈북민 김모씨는 참으로 안타까운 경우다. 그는 높이 3m의 철책을 넘어 귀순했고, 같은 경로로 다시 월북했다. 지인들의 증언으로 볼 때 1년 남짓의 남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북한행을 택한 듯하다. 탈북민 중에는 그런 사람이 더러 있고, 실제로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돌아간 경우도 있다. 경쟁사회에 익숙하지 않은 탈북민들에게 남한 사회는 결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닐 것이다. 체조선수 김씨를 ‘안타까운 경우’라 표현한 것은 그가 북한으로 돌아가 살려던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믿을 만한 대북 소식통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탈북 범죄자에 대한 처형이었는지, ‘코로나 오염 지역에서 넘어오는 모든 움직이는 것을 사살하라’는 방역지침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월북 후 오랜 시간을 살지 못했다고 한다. 인도적 동기에서 나온 태영호 의원의 제안이 실현되기가 쉽지 않은 이유를 이런 사례들이 말해 준다.

송환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경우도 간단치 않은 법인데 원치 않는 사람을 강제로 돌려보내는 건 어떤 이유를 붙여도 정당화할 수 없다. 2020년 11월 북한 선원 2명을 북한으로 되돌려보낸 이유에 대해 문재인 정부 당국자들은 ‘귀순의 진정성’이 없어서라고 주장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주장이다. 정의용 전 안보실장의 설명처럼 한국 해군에 나포돼 오는 순간엔 귀순 의사가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더 명백한 사실은 북한으로 돌아가려는 의사 또한 없었다는 점이다. 그건 얼마 전 공개된 송환 당일의 사진과 동영상 화면을 통해 생생히 증명된다. 사람의 혀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진정성 없는 말을 할 순 있어도 절체절명의 순간에 몰린 사람의 몸은 거짓말하지 못하는 법이다. 안대가 벗겨지는 순간 몸을 뒤로 빼는 선원의 행동은 생존본능의 발현이었고 그게 바로 ‘진정성’이었다. 국민은 1년8개월이 지난 지금에야 그 화면을 보고 판단하게 됐지만, 문재인 정부의 책임자들은 그들이 북송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애초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안대를 채우고 손을 묶은 게 바로 그 증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귀순의 진정성’이 없어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를 강변하는 건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하는 것이다. 국민을 속일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차라리 선량한 국민을 흉악범과 함께 살게 되는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귀순 의사를 묵살했다고 한다면 적어도 국민을 기만했다는 비난만큼은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선원 2명은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돌아간 지 며칠 만에 처형당한 것으로 정부 당국이 파악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믿고 싶진 않지만 서해에서 피살된 해수부 공무원 사건 등의 전례로 볼 때 당국의 판단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흉악범에게도 정당하게 재판받을 권리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것이 법치국가와 그렇지 않은 나라, 문명국가와 야만국의 차이점이다. 문재인 정부의 책임자들에겐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부정한 혐의가 추가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