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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육지선 만나기 힘든 '제주의 맛' 선보이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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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강병욱의 제주 식재료 이야기(1)

셰프라는 직업으로 지내오면서 한국과 해외에서 무수히 많은 음식과 식재료를 직접 만나고 느껴보았다. 과거에 경험해왔던 이야기를 지금의 제주와 연결해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나는 이미 해외에서 취직돼 주방 막내 생활을 해외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막내 생활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지만 책에서만 볼 수 있던 다양하고 신선한 식재료를 직접 만져보고, 먹어볼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얻어 하루하루 견디며 주방에서ㄹㄹ 시간을 보냈다.

짧게 끝날 줄 알았던 해외 생활이 홍콩을 시작으로 두바이, 필리핀, 카타르 등을 거치면서 유명 레스토랑에서 근무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던 중 굉장히 흥미로운 레스토랑을 하나 발견했다. 발효를 중심으로 음식을 만든 던 레스토랑이었는데, 당시 셰프로부터 휴가를 받아 무급으로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메주를 빚던 영국인 셰프

처음 방문한 레스토랑의 천장에는 메주가 달려있었고 항아리에서 무언가 발효가 되고 있었다. 그 셰프는 영국인이셨는데, 어떻게 이런 것이 이곳에 있냐고 여쭤보았다. 셰프는 예전 한국 여행을 하면서 직접 경험한 한국의 발효음식에 빠져 공부를 했고 한국의 식재료와 발효기술은 어느 나라보다 뛰어나다고 극찬했다. 나보다 더 한국의 식재료와 음식에 관심을 가진 셰프를 보면서 창피한 느낌이 들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한국의 음식을 태어날 때부터 경험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메주를 어떻게 해야 잘 만들 수 있냐고 질문하는 셰프에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말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셰프라면 자국의 요리를 더 사랑하고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주방 막내로 해외에서 일을 시작했다. 짧게 끝날 줄 알았던 해외 생활은 홍콩을 시작으로 두바이, 필리핀, 카타르 등을 거치면서 유명 레스토랑에서 이어졌다. [사진 강병욱]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주방 막내로 해외에서 일을 시작했다. 짧게 끝날 줄 알았던 해외 생활은 홍콩을 시작으로 두바이, 필리핀, 카타르 등을 거치면서 유명 레스토랑에서 이어졌다. [사진 강병욱]

그 곳에서 일한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한국의 식재료와 서양의 음식들이 다양하게 섞여 조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한국의 식재료와 음식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많은 공부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레스토랑에 취업을 했다. 하지만 근무를 할수록 일에 흥미가 떨어졌다. 해외에서 근무할 때는 앞에 농장에 가서 직접 신선한 재료를 채취해 손질하고 요리를 했지만 한국에서는 새벽에 비닐에 담겨 배송되어 조리대위에 올라와 있는 식재들을 보면서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마음에 채워지지 않는 것이 생기기 시작하자 다시 한국의 농촌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시간이 가능하면 농촌 프로그램에 참여해 직접 일도 하고 팜투테이블을 즐기곤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마음이 편해졌고 다시 발과 손에 흙을 느끼고 싶었다. 농촌에 가까워지면서 농촌에서 발생되는 현상에도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농부가 키우는 작물이 못생기거나 상처가 생기면 판매가 힘들어 모두 버린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작은 상처가 생긴 것을 버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모두 생김새가 틀리지만 각각의 인격이 존중받으며 살아가는데, 살짝 상처가 있다고 버려지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셰프로서도 이런 일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그 때부터 B급 농산물, 못난이 농산물에 관심을 가지고 수면위로 끌어올려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가장 먼저 소비자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직접 요리를 해서 시식을 할 수 있는 체험을 준비했다. 그곳에서 얻은 결과는 ‘아무 문제없다’는 것이다.

이런 행사를 진행하면서 좀 더 현장 이야기를 바로바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제주라는 곳을 우연히 방문했는데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바로바로 농장에 갈 수 있는 환경이 바로 제주였다. 제주에 정착하고 정말 많은 농장을 직접 다니면서 공부했다. 신기하게도 제주도 한국이지만 육지와는 굉장히 다른 식문화와 식재료가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본 식재료도 있었고 조리 방식도 달랐다. 사면이 바다여서 날씨만 거칠지 않으면 언제든지 어패류나 해초류를 채취 할 수 있고, 기온이 따뜻해 사계절 신선한 채소를 재배할 수 있기 때문에 육지에 비해 저장 식품이 많이 발달하지 않았다.

식재료의 보고 제주

누군가는 기록하고 보존해야한다는 생각에 제주에 음식 연구소를 만들었다. 제철 식재료와 점점 사라져가는 제주의 전통 식재료를 보존하고 발굴해 현대적 표현으로 음식을 담아내고 있다. [사진 강병욱]

누군가는 기록하고 보존해야한다는 생각에 제주에 음식 연구소를 만들었다. 제철 식재료와 점점 사라져가는 제주의 전통 식재료를 보존하고 발굴해 현대적 표현으로 음식을 담아내고 있다. [사진 강병욱]

또한 육지에 비해 고춧가루를 활용한 음식도 드물다. 또한 지역에 기후에 맞게 발달한 보석같은 식재료가 널려 있다. 하지만 직접 찾아보지 못하면 우리의 전통식재료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제주 넘은 봄’라는 제주음식 연구소를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제주의 제철 식재료와 점점 사라져가는 제주의 전통 식재료를 보존하고 발굴해 현대적 표현으로 음식을 담아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국의 전통 식재료도 빠르게 사라져 가는데 제주의 식재료의 소멸성은 이것보다 더 빠르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나의 후세가 된장과 고추장을 알지 못하고 감자튀김과 햄버거만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누군가는 나서서 이것들을 기록, 보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빠르지는 않지만 위와 같은 이야기를 제주에서 계속 진행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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