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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N차 관람...'탑건 : 매버릭'의 흥행 역주행 비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퍼즐] 노가영의 요즘 콘텐트 썰(1)

6월 중순 톰 크루즈가  ‘탑건 2 : 매버릭’홍보를 위해 내한한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흥행에 대해서는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한국보다 먼저 개봉한 북미와 캐나다에서 개봉 첫 주 1억 3000만달러(제작비의 70% 회수)라는 박스오피스를 기록했고, 제작진의 내한 시점에는 제작비의 4 배가량을 이미 회수한 뒤였다. 게다가 유난히도 한국인이 애정하는 친절한 '탐형'의 10번째 한국방문과 심상치 않던 '범죄도시2'의 흥행이 코로나 이후의 첫 번째 천만영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 등 극장 분위기도 더할나위 없었다.

40~50대 아재들만의 추억인건가 

모든 시장 지표와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영화의 대박을 가리켰지만 개봉 전 20만장이라는 예매 건수는 이름값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노스탤지어 블럭버스터’가 갖는 확장의 한계라거나 ‘중장년층은 사전예매보다 당일 예매나 현장 발권을 하는 경향이 높다’는 방어 논리를 들기도 했다. 그렇게 첫 주말까지 기다려 봤음에도 관객수 140만명에 그쳤으니, 당시 기준으로 잘해야 최종 300만명 정도 갈 수 있는 수치였다. 결국 남성들의 로망인 전투기와 오토바이, 활주로에서 깔리는 O.S.T, 그 웅장한 ‘Anthem’의 추억은 40~50대 아재들만의 것이었던 걸까.

이제 구전효과의 시대는 끝났다. 지금은 상품이나 서비스의 바이럴이 소셜미디어의 피드와 밈을 통해 전파되는 시대인데, 소셜 바이럴의 주체들이 ‘탑건’이 개봉된 1987년 이후 족히 10년은 훌쩍 지나 세상에 태어난 거다. 그들에게 탐형은 헐리우드 노땅배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게다. 향수 자극용이었던 영화 포스터의 구도와 분위기 역시 ‘어쩔티비, 저쩔티비’로 받아졌을 테니 말이다.

1987년과 2022년의 탑건 그리고 2022년 6월 제작진의 내한 행사. [사진 탑건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1987년과 2022년의 탑건 그리고 2022년 6월 제작진의 내한 행사. [사진 탑건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사실 세대 간 양극화나 장벽치기는 비단 미디어 시청에 국한된 담론은 아니다. 소통은 물론이고 브랜드 소비나 커머스, 폐쇄형 IT 서비스, 투자 방식 등 산업 전반에 팽배해 있는 현상이다. 이를 콘텐트 소비 측면으로 좁혀보자면 디지털 세상에서 소비자는 흩어지고 개인의 취향은 깊어지고 있다. 심지어, 디지털 콘텐트를 넘어 극장과 TV 미디어에서까지 세대 간 장벽을 쳐가고 파편화된 취향에 따라 커뮤니티가 만들어진다.

‘탑건 2 : 메버릭’은 4050 커뮤니티로, 영화 ‘마녀 2’와 ‘토르: 러브 앤 썬더’는 청소년과 2030으로 구분된다. TV 예능판에서도 레트로에 집중하는 ‘놀면 뭐하니’는 1020에겐 재미가 없다. 그들의 레트로 시절과 기성세대의 레트로가 엄연히 다른 탓일 것이다. 말 그대로 필자를 포함한 X세대를 만족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최근 스타 유튜버이자 경제 셀럽인 ‘슈카월드’의 콘텐트에서는 멜론 Top 10 차트의 대여섯 곡이 가수 임영웅 노래인 것을 놓고 ‘어르신의 습격’, ‘인구 노령화’라는 키워드로 설명했다. BTS와 임영웅의 음원을 분절된 각자의 세대층에서 스밍총공(차트 상위권 진입을 위해 스트리밍에 총 집중한다는 덕질 용어)해도 결국 머릿수와 자산 규모로 중장년층이 이긴다는 논리다.

국제 비즈니스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마우로 기옌 박사는 최근 저서인 『2030 축의 전환』에서 앞으로 수십년간은 1960~1990년 사이에 늘어난 인구수의 절반 정도만 증가할 것이라고 확언했다. 인구통계학적인 측면에서 노령층 시장의 가치와 세대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함께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런데 ‘탑건 2 : 매버릭’에서 아주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극장 박스오피스는 통상 둘째 주에 30~40% 이상이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개봉 둘째 주의 평일과 주말 스코어 모두가 첫째 주를 상회하는 기묘한 현상이 일어난 거다. 그리고 개봉 30일이 넘어가며 전국 관객 650만명을 달성하고 여전히 질주 중이다. 심지어 개봉 4주차에는 신작 영화들을 다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탈환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극장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4050의 관람률이 개봉 3주차에 10% 이상 하락한 반면 2030의 관람률은 52%에 달했다고 한다. 10대의 경우 신용카드 부재로 직접 결제율이 낮아 정확한 수치 도출이 어렵지만 포털에서의 관람 리뷰를 보면 10대의 관람 역시 시작되었음이 읽혀진다. 즉, 개봉 초기 ‘탑건 노스텔지어’ 군단이 점령했던 주 관람층이 콘텐트의 힘과 바이럴을 타고 30대 – 20대 - 10대로 하강해가는 놀라운 뒷심을 보인 것이다. 관람층이 내려가는 것 역시 일반적이지 않은 현상이다.

비슷한 코드의 노스텔지어 블록버스터인 ‘007 노타임투다이’(지난해 10월 개봉)의 경우 4050 남성을 중심으로 관람하고 밑으로 내려오지 못했다. 그간 바이럴의 핵심은 2030 세대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콘텐트 이노베이터들이 집약된 2030 세대에서 관람이 시작되고 보편적으로 좋은 콘텐트의 경우 소셜 바이럴을 통해 중장년층으로 넓어져 가며 흥행작이 탄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흔히 업계에서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엄마, 아빠, 어르신까지 다 보면 천만 영화 된다’라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오늘은 아니야”매버릭에 뜨거운 눈물  


또 다른 영화 배급사 임원은 모든 세대가  ‘탑건 2 : 매버릭’을 좋아하지만 콘텐트를 바라보는 시선이 상호 위배된다는 점을 흥미로운 포인트로 지적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사회에서 퇴물이 되지는 않을까, 내 역할이 머지않아 대체되지는 않을까, 늘 불안한 기성세대는 매버릭으로부터 통쾌한 위로를 선물 받았다. 한 50대 남성이 쓴 관람 후기에는 해군 소장이 매버릭에게 무인 비행의 시대에 사라져갈 파일럿의 역할을 말할 때 ‘But Not Today (오늘은 아니야)’라고 던지는 매버릭의 대사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이 있었다.

반면 2030 세대는 영화를 게임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보인다고 한다. 고공 훈련 중 어딘가를 통과할 때는 수직상승을 해야 하고, 중간중간 끼어드는 장애물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단계별 미션을 해결하며 그것을 하나씩 깨뜨려 나가야 목적지에 도달하는 패러다임이 게임의 그것과 유사한 패턴이다. 즉, 거대한 내러티브 안에서 스토리에 집중하기보다는 각자의 방식으로 콘텐트를 쪼개서 분석하며 그 안에서 나만의 즐거움을 찾는다. 이 현상이 꼬마 관객인 10대에게는 더할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유난히 아이맥스, 4DX, 스크린 X 등의 특별관 ‘N차’ 관람 열풍으로 이어지는 것 또한 고공 비행전을 게임 엔터테이닝으로 즐기는 트렌드로 해석할 수 있다. 극장 관계자들 역시 특별관 재관람률이 기존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보다 월등히 높다고 분석했다.

이래나 저래나 이 영화의 기획은 노스탤지어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노스탤지어의 한계를 뚫고 아래로 내려오며 바이럴이 두터워진 건강한 신드롬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지점이 바로 모든 블록버스터가 목표로 하지만 참 어려운 미덕이다. 지난 내한 행사 때 전설적인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가 한국에서 남긴 한마디는 “우리는 모든 관객이 즐기는 영화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였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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