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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한유아가 미래 될 수 있다" K팝 최전성기에 이런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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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평론가 차우진이 지난 5월 27일 서울 성수동 자택에서 인터뷰 중 포즈를 취했다. 박상문 기자

음악 평론가 차우진이 지난 5월 27일 서울 성수동 자택에서 인터뷰 중 포즈를 취했다. 박상문 기자

음악평론가 인터뷰 시리즈(3)

“K팝의 탄생과 위기, 성장을 지켜본 대중음악 평론가들은 현재의 K팝 산업의 비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음악 평론가 인터뷰 시리즈 세 번째 순서로 차우진(47)을 만났다. 차우진은 1990년대 말 음악 잡지에 인디 앨범을 소개하며 평론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재는 TMI.FM (티엠아이.에프엠)이라는 뉴스레터 서비스를 통해서 구독자에게 최신의 음악 뉴스와 분석 콘텐트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의 음악 산업이 다른 산업과 어떻게 융합, 발전해 왔는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버추얼 가수, 이 가상의 존재들은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음악 평론가 차우진은 단호하게 “그렇다”고 말한다. “하이브를 보세요. 하이브는 게임회사 넥슨의 대표를 지낸 박지원씨를 대표로 영입했습니다. 많은 IT 인재를 영입하고 있으며, IT 회사를 인수하기도 합니다. 바로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그는 버추얼 가수는 그저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버추얼 가수들이 현재 별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는 건 “기술이 덜 발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메타버스, 블록체인, NFT(대체불가 토큰) 등의 등장 역시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술적으로는 한국 음악계가 다른 나라에 비해 15년 정도 앞서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서울 성수동 자택에서 차우진을 만나 K팝이 문화와 기술과 어떻게 융합하며 발전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버추얼 가수들이 어떤 점에서 경쟁력 있다고 보나.  
로지나 한유아처럼 현재까지 등장한 버추얼 가수들은 조금 비현실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들이 일반 가수들처럼 데뷔하고 연예 기획사와 계약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이미 데뷔한 가수나 그룹을 활용해서 게임이나 웹툰을 만들고 있지만, 미래에는 거꾸로 게임이나 웹툰을 먼저 내놓고 이를 기반으로 한 K팝 그룹이 데뷔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현상이 뒤바뀌는 건 금방일 수도 있다.영화계에서는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 마블은 만화를 기반으로 실제 사람이 허구의 캐릭터를 연기한다. K팝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 가수들은 실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가상 인간' 로지는 지난 2월 싱글 '후 엠 아이'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사람 연예인이 가상 인간과 경쟁하는 시대는 생각보다 빨리 본격화될 수 있다. [사진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

'가상 인간' 로지는 지난 2월 싱글 '후 엠 아이'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사람 연예인이 가상 인간과 경쟁하는 시대는 생각보다 빨리 본격화될 수 있다. [사진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

그러면 앞으로 연예인들은 버추얼 연예인과도 경쟁해야 하는 건가.  
그럴 것이다. 사람 연예인이 버추얼 연예인과 가장 다른 점은 중요한 이슈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게 어렵다. 예민한 이슈에 대해 의견을 말하는 연예인에게 사람들은 꽤 잔혹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이슈들에 침묵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가령 차별금지법 도입처럼 반대 의견이 많을 수 있는 주제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K팝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드러내거나 그 누구든 해가 될만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 이게 한국에서는 답일지 모르지만, 글로벌에서는 금방 도태되는 이유가 될 거다. 한국 소비자들이 여러 문제에 있어서 민감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기획사들이 나서서 아티스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보호해줘야 한다. 회사들이 깨달아야 하는 건, 아티스트는 단순히 상품이 아니라 보호되고 존중해야 할 자신의 IP(지식재산권)의 주인이자 회사의 파트너라는 점이다.  
차우진 평론가에 따르면 K팝 아티스트가 정치적 신념을 보이지 않는 것은 한국에선 답일 수 있지만 글로벌 무대에선 도태되는 이유가 된다. 가수 김우석이 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3월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사전투표소로 들어서고 있다.뉴스1

차우진 평론가에 따르면 K팝 아티스트가 정치적 신념을 보이지 않는 것은 한국에선 답일 수 있지만 글로벌 무대에선 도태되는 이유가 된다. 가수 김우석이 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3월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사전투표소로 들어서고 있다.뉴스1

IP의 주인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
IP 비즈니스란 쉽게 말하자면 콘텐트를 확장한다는 것이다. 음악은 더는 그 자체로 돈이 되지 않는다. 20년 전 미국 팝 가수 데이비드 보위가 이미 예견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음악이 무료로 제공된다고 생각한다. ‘이거 유튜브에 들어가면 다 들을 수 있던데?’ 하고 생각하지 굳이 앨범을 사야만 음악을 소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단 거다. 그래서 기획사들은 음악을 이용해서 사람들이 특정 그룹을 좋아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그룹을 좋아하니까 콘서트에 가고 앨범을 사고 그룹에 관련한 것들에 돈을 쓰게 되는 거다. K팝 아티스트들은 스스로가 IP 주인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그걸 개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데뷔한 기획사와의 계약이 끝난 후에도 지속할 수 있다.  
에스파는 버추얼 멤버 4명을 포함한 8인조 걸그룹으로 데뷔했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에스파는 버추얼 멤버 4명을 포함한 8인조 걸그룹으로 데뷔했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IP 확장이 왜 중요한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의 도래는 모든 콘텐트 비즈니스의 판도를 바꿔놨다. 음반사들은 앨범으로 돈을 벌 수가 없고 제작사는 영화관이나 대여업에서 돈을 벌 수가 없게 됐다. 더는 제작 그 자체에 멈출 수 없고 어떻게든 창작물을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IP 비즈니스가 등장한다. 기술적으로 봤을 때 한국은 미국이나 다른 나라보다 10년에서 15년 정도 앞서있다. 영국 의회는 2020년 말이 돼서야 스트리밍 로열티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작년부터 스포티파이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K팝은 통신사가 음원 시장을 장악하고 음반 시장을 파괴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에 이미 이 전쟁을 한 차례 치른 바 있다. 이 와중에도 SM엔터테인먼트는 동방신기의 앨범을 100만장 넘게 판매했다. 팬덤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기획사들도 SM엔터테인먼트의 이 비즈니스 모델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K팝은 언제나 신기술을 빠르게 흡수해왔다. 현재 블록체인이나 NFT(대체불가 토큰)도 마찬가지다. K팝에는 시스템도 팬덤도 갖춰져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실험을 하는 일이다.  
왜 K팝은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나.
K팝은 음악 장르가 아니라 기획사의 선택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산업이고 시스템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티스트가 권력을 가지고 결정을 만드는 다른 음악 시장과 달리 K팝에서는 아티스트가 아닌 그들의 기획사가 철저히 시장을 분석한 선택을 해왔다. 어떤 면에서 K팝은 자동차 산업과도 같다. 자동차에서는 회사 이름이 먼저 오고 자동차 모델이 오듯, K팝에서도 회사 이름이 먼저 오고 그다음에 그룹의 이름이 온다. 20세기 초 미국 포드사에서 만든 표준화 시스템으로 같은 퀄리티의 상품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잘 알려진 포르쉐나 람보르기니도 이런 모델을 채택했기 때문에 현재의 위치에 오를 수 있게 됐다. K팝도 이런 방식으로 형성됐고, 이 지점에서 다른 음악 시장과의 차이점을 가진다. 한국에서 새 그룹이 데뷔했다고 하면 가장 먼저 어느 기획사인지부터 묻는다. 회사 없이 그룹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에스파는 그냥 에스파가 아니라 SM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한 걸그룹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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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K팝은 제조업인가.
그렇지는 않다. 왜냐면 여기에 휴머니티(인류적) 가치가 결부돼 있기 때문이다. 애플 맥북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애플을 좋아하고 애플의 창시자로서 스티브 잡스를 존경한다. 그렇지만 K팝에서는 아무리 프로듀서가 멤버를 모으고 기획을 해도 사람들은 방시혁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방탄소년단의 RM 개인을 좋아한다. 2010년대까지는 프로듀서들이 아티스트보다 더 강조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3사(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의 방법론 차이와 그게 어떻게 다른 스타일의 그룹을 만들었는지를 분석하는 기사가 많았다. 실제로 기획사들도 당시에는 통일된 느낌의 그룹을 만드는 데에 집중했다. 그렇게 해야만 회사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투자자들을 설득해서 기업공개(IPO)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아티스트 개인의 특징을 살리기보다 ‘이 기획사에서는 이런 느낌의 그룹이 나온다’는 것과 이것이 수익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이 방식을 꽤 효과적이어서 그룹이 데뷔하기도 전에 소속사의 힘만으로 이미 팬덤을 모을 수 있었다. 기획사에서 어떤 그룹의 멤버나 음악을 미리 조금 알리기만 하면 완성되지도 않은 그룹의 팬덤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방탄소년단 리더 RM이 지난 11월 미국 LA에서 열린 콘서트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빅히트뮤직]

방탄소년단 리더 RM이 지난 11월 미국 LA에서 열린 콘서트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빅히트뮤직]

최근 K팝 시장은 어떻게 변했나.
이제 메이저 기획사는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를 이뤘기 때문에 아티스트 개인의 독창성을 받쳐줄 수 있는 체력을 길렀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해야만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점이 되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 K팝은 제조업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소비자층은 확실히 다르다. 결국 K팝에서 팬들이 보고 싶어하는 건 스타 개인과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다. 과거에는 프로듀서들이 변화를 일으켰다면 이제는 아티스트 개인이 실험하고 한계를 넘어 나아가고 있다. 더 주체성을 가지고 본인 음악의 주인이 되는 형태다. K팝 내에서 아티스트들이 더 권리를 갖게 될 것이고, 이것을 인정해야만 기획사들도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기사는 코리아중앙데일리 6월 15일자 5면에 보도된 영문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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