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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의 시선

한동훈, 내일 尹과 독대...미묘한 시점 '정권 구원투수'로 뜰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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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이제 겨우 1회 말인데 선발투수가 난타당하면서 분위기는 마치 9회 말 투아웃 상황 같다. 상대 팀이 우수해서 실력 발휘한 것도 아닌데, 몇 차례 폭투까지 던진 선발투수의 자책점이 결정적이었다. 투수가 안심하고 공을 던지도록 안방을 든든하게 지켜줘야 할 포수는 자기 색깔을 무리하게 드러내며 몇 차례 사인 미스를 범했다. 경험 많은 내야수들은 땅볼조차 제대로 잡지 못했고, 외야수들의 뜬 볼 처리 잦은 범실로 선발투수의 심적 부담을 키웠다. 이쯤 되면 이번 경기를 포기할 것인가.

1회말의 윤 정부, 9회말 같은 위기 #한 장관 주목할 이슈 줄줄이 예고 #민심 얻으면 개혁 과제 추진 탄력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6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국무위원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지지율 급락으로 위기에 빠진 윤 대통령에게 한 장관이 어떤 역할로 도울지 주목된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6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국무위원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지지율 급락으로 위기에 빠진 윤 대통령에게 한 장관이 어떤 역할로 도울지 주목된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야구라면 더블헤더 중 1차전을 버리고 2차전 승리를 노리는 전략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 무대는 단판 승부라 한번 지면 끝이다. 결국 사즉생(生卽死)의 각오로 심기일전해 진용을 가다듬고 다시 전장에 나가야 한다. 취임 두 달도 안 돼 '탄핵' 운운하는 야당의 언행이 경박하지만, 궁극적으로 국정 책임은 여당이 지는 것이다.
 상대평가인 대선에서 근소하게 선택받았으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자기 실력을 절대평가 받아야 할 차례다. 그런데도 비교 대상을 억지로 찾아 계속 상대평가해달라고 국민을 압박하니 민심이 시큰둥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경제 위기감 고조, 주가 폭락, 물가와 금리 폭등, 오미크론 재확산 등으로 '민심의 밭'은 불이 붙을 지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6일 정부세종청사를 방문해 국정운영실 직원들에게서 '국정 운영 홈런 기원 야구 방망이'를 선물받고 휘둘러 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야구 명문인 충암고 출신이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6일 정부세종청사를 방문해 국정운영실 직원들에게서 '국정 운영 홈런 기원 야구 방망이'를 선물받고 휘둘러 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야구 명문인 충암고 출신이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지율이 32%(7월22일 갤럽 기준)까지 추락한 위기 국면에서 국정 동력을 회복하려면 집권층의 오만한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처럼 과거 정권 탓만 해서는 민심을 얻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2일 '장·차관 국정과제 워크숍'에서 "정부 구성은 잘된 것 같다. 저만 잘하면 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이오(mea culpa)"가 위기 탈출과 문제 해결의 출발이다.
 야구도 정치도 혼자 할 수 없다. 이기는 게임을 하려면 감독의 용병술로 팀플레이를 살리고, 스타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한다. 지금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선의 방법은 주어진 인재풀에서 핵심 인재를 잘 골라 쓰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카드는 절제된 언행과 치밀한 일 처리로 호평받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일 듯하다. 공교롭게도 이제부터 '한동훈의 시간'이다. 대중성을 갖춘 한 장관이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들을 깔끔하게 처리해 윤 정부에 대한 긍정적 여론으로 이어질지가 관전 포인트다.
 실제로 한 장관이 주목받을 이슈가 줄줄이 예고돼 있다. 예컨대 윤 정부 첫 검찰총장 후보자를 추려서 대통령에게 추천하는 역할이 한 장관 몫이다. '식물 총장'이 아니라 '중립적 총장'을 찾아낸다면 인사 논란을 잠재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문 정부 실세들과 이재명 의원 의혹 수사는 한 장관이 두 차례 인사로 짜 놓은 검찰이 조만간 결과물을 속속 내놓을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의원이 한 행사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는 모습. 검찰과 경찰은 문 정부 실세들의 권력형 비리 의혹과 이 의원 관련 고소 고발 사건 등을 집중 수사 중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의원이 한 행사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는 모습. 검찰과 경찰은 문 정부 실세들의 권력형 비리 의혹과 이 의원 관련 고소 고발 사건 등을 집중 수사 중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우상호 민주당 비대위원장이 한덕수 총리를 만나 "야당의 협조를 받으려면 자극·공격·수사하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면서 “한동훈 장관에게 이야기 잘해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로 한 장관이 사실상 칼자루를 쥔 형국이다. 한 장관이 야당의 정치적 거래 제안을 단호히 거부해 중립적 방어막을 쳐주고 검찰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시행 시점인 9월 10일 전에 법에 따라 공정한 수사를 진행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한다면 여론이 호응할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 등의 8·15  광복절 특사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인 상황에서 한 장관은 오는 26일 법무부 업무보고를 위해 윤 대통령을 독대할 예정이다. '친문'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가석방해 이재명 의원의 '친명' 세력을 견제하자는 여의도 정치 시나리오가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에서 어떻게 처리될지도 지켜볼 일이다.

민주당 초선 강경파 의원들로 구성된 처럼회가 2020년에 결성되기 전에 열린 한 모임에서 당시 범여권 의원들이 한자리에 앉아 웃고 있다. 최강욱·김남국·이수진 등 처럼회 소속 의원들은 지난 5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청문회에서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가 여론의 집중 질타를 받았다.[페이스북 캡처]

민주당 초선 강경파 의원들로 구성된 처럼회가 2020년에 결성되기 전에 열린 한 모임에서 당시 범여권 의원들이 한자리에 앉아 웃고 있다. 최강욱·김남국·이수진 등 처럼회 소속 의원들은 지난 5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청문회에서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가 여론의 집중 질타를 받았다.[페이스북 캡처]

 25일부터 21대 후반기 국회의 대정부 질문이 시작되고 조만간 법사위원회도 열린다. 최강욱·이수진·김남국 등 '처럼회' 소속 민주당 초선 강경파들이 한 장관을 상대로 또다시 헛발질을 반복할 경우 한 장관과 윤 정부의 인기가 동반 상승할 수도 있다.
 다음 달 17일이면 윤 정부 출범 100일째다. 퇴임 100일을 앞둔 9회 말이란 각오로 배수진을 치되 과욕을 부리지 말고 잘할 수 있는 핵심 과제에 집중하면 된다. 부동산 정책 오판, 조국 일가의 불공정, 불통 리더십과 뻔뻔한 거짓말, 법치 붕괴 등 문재인 정부의 주요 실패를 극복하고 민생 살리기에 집중하면 지지율은 올라갈 수 있다. 국정 동력을 회복하면서 노동·연금·교육 등 국민이 바라는 개혁 과제를 뚝심 있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장·차관 국정과제 워크숍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장·차관 국정과제 워크숍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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