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리셋 코리아

글로벌 디지털·지식 은행 창설 주도하자

중앙일보

입력 2022.07.25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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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창용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국제개발협력위원회 위원

최창용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국제개발협력위원회 위원

지난달 말 윤석열 정부 들어 첫 국제개발협력위원회가 열렸다. 공적개발원조(ODA)를 전략적으로 추진하여 ‘글로벌 중추 국가’를 실현하자는 비전을 공유했다. 우리나라 ODA 예산은 2022년 4조원을 넘어 세계 15위권이다. 협력국 수도 120여 개에 달한다. 그동안 국내에서 대외 원조는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국익도 고려하면서 접근해야 한다는 관점과, 경제적 이익보다는 국제사회 규범과 가치를 존중한다면 국격은 자연히 높아진다는 입장이 대립했다.

그러나 국익과 국격은 상반되는 목표가 아니다. 국제 개발 협력은 경제·안보·외교를 아우르는 정책 패키지로 활용되고 있고, 국제사회가 강조하는 투명성·책무성·효과성에 더해 협력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국가 역량이 요구된다. 국익과 국격을 높이는 국제 개발 협력의 전략적 추진을 위해 3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국익·국격 높이는 국제개발협력
디지털시대 맞는 규칙 제정 절실
한국은 주도할 수 있는 역량 충분

첫째, 국제 정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개발 협력의 세부 목표를 설정하는 대관세찰(大觀細察)이 필요하다. 글로벌 팬데믹 이후 세계화-탈세계화 논쟁에 이어 최근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표제로 실린 ‘세계화 재창조(Reinventing Globalization)’까지 국제 경제·안보 질서는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은 국가 단위로 축소되고 있고, 국익 우선 현실주의와 협력 기반 자유주의 간 대립은 재소환되고 있다. ‘큰 정부’가 ‘작은 정부’를 대체하고 있고, 글로벌 차원에서 재분배 기능을 담당했던 개발 협력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다. 국제 개발 협력 전략·방향이 더욱 정교하게 구축되어야 할 이유라 할 수 있다.

둘째, 빠른 추격자에서 선도형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규칙 제정자(Rule setter)가 되어야 한다. 브레턴우즈 체제로 탄생한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에 이어 일본은 1966년 아시아개발은행(ADB) 창설을 주도했고, 중국은 2016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조직했다. 일본·중국을 따라가자는 협소한 관점을 넘어 우리는 과연 국제사회에 어떤 표준과 기준을 제시할 것인가. 한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디지털·지식 은행 창설을 제안한다. 디지털 금융, 디지털 거래세, 환경과 디지털 트윈 전환, 디지털 거버넌스, 디지털 격차, 노동의 미래 등 세계는 디지털 시대 전·후로 나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디지털 국가전략’을 ‘디지털 글로벌전략’으로 확장해 국제 표준과 규칙을 제정하는 국제기구 창설을 주도하자. 자본의 시대에서는 뒤졌으나 디지털 시대는 우리가 선도한다는 자신감과 역량은 충분하지 않은가.

셋째, 인도주의(H)-개발 협력(D)-평화(P)를 연계하는 3각 협력 모델로 우리나라 국제 개발 협력의 기초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기아·재난에 대응하는 인도적 지원, 저개발국 경제사회 발전을 위한 개발 프로젝트, 분쟁과 전후 복구 프로그램을 통합한 HDP 모델은 국제 개발 협력 분야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영역 간 분절화·파편화를 극복해 투입 대비 효과성을 극대화하자는 게 목표다. 미국은 이미 이런 방식으로 유럽연합(EU)과 협력해 7500억 달러 이상의 ‘우크라이나 재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HDP는 재원·역량이 뒷받침돼야 하는 고난도 협력 방식이지만, 우리에게는 협력국은 물론 향후 북한 개발 협력에 대비한 경험을 축적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해외 산업단지에 개별 기업이 진출하기보다는 산단 전체의 용수 공급을 확보한 프랑스, 몽골 의료센터 건립과 의료진 교육, 의약품 공급망을 구축하는 독일, 인도의 전력·에너지산업을 민관 개발 금융으로 재구축하는 일본 등도 있다. 남남 개발 협력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는 시진핑과, 이에 맞선 주요 7개국(G7) 정상들의 대외 원조 확대 결의 등 인류 공존을 기획하는 국제 개발 협력도 국가 간 협력·경쟁이 치열하다. 원조를 앞세운 공세적 팽창 모델을 탈피해 연대·상생의 국제 개발 협력 본래 가치를 실천하는 새 규범을 우리가 만들어 가자. 세계는 지금 연결과 단절, 개발과 회복, 현재와 미래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후 3개월이 지났다. 소모적 정쟁을 멈추고 무섭게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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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용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국제개발협력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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