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는 비서일 뿐, 입이 없다”던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24일 기자들과 만났다. 윤석열 정부 공식 출범 전 비서실장에 내정됐던 김 실장이 기자들과 간담회를 한 건 이 번이 처음이다.
김 실장은 “지난 주말, 윤석열 정부의 장ㆍ차관이 다 모여서 국정 상황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며 “경제가 제일 핵심인데, 앞으로도 경제가 좋아질 것 같지 않아서 걱정”이라고 운을 뗐다. 윤 대통령은 지난 22일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각부 장관과 차관·처장들을 한데 모아 워크숍을 했는데, 김 실장은 이날 논의 내용을 ‘경제 우선’으로 정리한 것이다. 김 실장은 “윤 대통령은 경제 이슈를 기획재정부나 산업자원부 같은 곳에만 의존하지 말라고 했다”며 “국방부는 방위산업, 국토교통부는 해외 건설, 농림수산식품부는 스마트팜같이 각 부처가 경제 살리기에 매진해달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김 실장은 그러면서 “저를 위시해 장ㆍ차관들도 정치인보다는 전문가들이 많다 보니 ‘나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들이 있었다”며 “정무 감각을 갖고 언론인들과도 자주 접촉하며 특히, 국회와 소통해달라는 윤 대통령의 지시 사항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과반 야당이 있는 상황에서 국회의 협조 없이는 입법 사항을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을 고려해 더 적극적으로 뛰라는 의미다. “국회를 설득하기 위한 정부의 전략이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김 실장은 “발이 닳도록 국회를 드나들라고 할 정도로 정성을 보이라는 말이 있었다. 결국은 나라를 잘되게 하는 게 정치인들의 목적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김 실장은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던 자신의 경험에 빗댄 발언도 했다. 김 실장은 “9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의 상황은 ‘사나워졌다’라거나 ‘거칠어졌다’는 느낌이 든다”며 “협조라기보단, 투쟁 같은 분위기가 많아 걱정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내외 환경 변화가 급격히 일어날 때, 우리끼리 싸우면 꼭 파탄이 났다”며 “임진왜란 때도 그랬고, 정유재란 때도 그렇고, 갈라진 민심 같은 것은 다듬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실장은 “연금개혁과 교육개혁, 노동개혁 등 정부가 하려는 3대 개혁은 국회 협조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한다”며 “국회에 가서 세미나도 많이 열고, 행정부도 사무실에만 앉아 있지 말고 전문가도 많이 만나고, 소통하라는 대통령의 주문이 있었다”고 전했다.
김 실장은 이날 예정에 없이 기자들과 만난 배경과 관련해 “하도 존재감이 없다고 해서…”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 참모들의 역할을 LCD에 비유해 설명했다.
김 실장은 “똑같은 TV 화면이라도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보다는 LCD(액정표시장치)가 낫겠다는 생각”이라며 “OLED는 소자 하나하나가 다 발광하는 반면, LCD는 백라이트가 있어서 빛을 비춘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OLED는 소자가 발광해 모양을 예쁘게 하지만, 자칫 번짐 효과가 크다고 한다”며 “비서실장은 뒤에서 백라이트 역할을 하는 게 더 맞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그는 다만 “(윤 대통령이 스타가 돼라고 얘기한) 장관들은 발광체가 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