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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통신까지 장악 가능" 美, 화웨이 퇴출 진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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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로고와 회로기판을 합성한 이미지. [로이터=연합뉴스]

화웨이 로고와 회로기판을 합성한 이미지.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중국 업체인 화웨이 퇴출에 나선 건 미국 내 핵심 군사시설 인근에 설치된 화웨이의 통신 장비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의 장비가 핵무기 관련 통신을 가로채거나 교란할 수 있다고까지 판단했다.

CNN은 연방수사국(FBI)을 비롯해 10여명의 미국 전·현직 국가 방첩 담당자 10여명을 인터뷰한 결과, 지난 2017년부터 미 정부가 중국 감청 시설 설치 가능성을 조사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통해 중국 정부나 기업이 미국 내 중요 군사·정부시설 인근에서 기밀 탈취를 시도하는 걸 차단하려 했다.

전략 핵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와이오밍 워런 공군기지의 모습. 화웨이의 통신 장비는 워런 공군기지 인근에 설치됐다.[사진 워런 공군기지]

전략 핵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와이오밍 워런 공군기지의 모습. 화웨이의 통신 장비는 워런 공군기지 인근에 설치됐다.[사진 워런 공군기지]

가장 큰 문제로 꼽힌 건 미 중서부 지역에 설치된 화웨이의 통신장비였다. 이곳은 미군의 핵심 군사시설이 밀집돼 있다. CNN에 따르면 FBI는 화웨이 장비가 핵무기 사용을 관장하는 네브래스카주 전략사령부를 비롯한 주요 군사시설의 보안 통신을 가로채거나 교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전직 FBI 관계자는 “(화웨이 장비는) 미군의 핵무기 통제와 공격명령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고 말했다.

화웨이의 통신장비는 콜로라도주에서 몬태나주 방향으로 이어지는 25번 고속도로 주변에 설치됐다. 지난 2011년부터 미국 통신사 비애로가 3세대 통신(3G) 인프라를 깔기 위해 화웨이를 선택했다. 10년간 저렴한 화웨이 장비로 통신 기지국 1000여개를 네브래스카와 와이오밍 등을 포함한 인근 5개 주에 지었다. 기지국이 설치된 곳은 미군의 전략 핵무기 미사일이 있는 워런 공군기지 등과 매우 가까웠다.

화웨이, 핵 기지 주변에 장비 헐값 판매 

미 정부는 화웨이 장비가 군사기지 주변에서 확산하는 상황을 뒤늦게 발견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특히 화웨이가 수익이 나지 않을 것 같은 헐값으로 미 통신사에 장비를 판 점에 주목했다. FBI가 화웨이 장비를 분석한 결과, 국방부의 통신을 식별하고 방해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의 전략 핵미사일이 배치돼 있는 워런 공군 기지는 와이오밍주 샤이엔에 있다. 이곳은 화웨이 장비로 설치된 통신 기지국과 멀지 않다. [CNN 캡처]

미국의 전략 핵미사일이 배치돼 있는 워런 공군 기지는 와이오밍주 샤이엔에 있다. 이곳은 화웨이 장비로 설치된 통신 기지국과 멀지 않다. [CNN 캡처]

FBI는 비애로가 2014년부터 교통·기상 관측용으로 기지국에 고화질 카메라를 단 것도 군사시설 감시에 이용될 수 있다고 봤다. 카메라를 통해 미군 장비와 요원의 이동·활동 패턴 등이 포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정보당국은 중국이 해킹을 통해 이 카메라의 실시간 영상을 보거나 통제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카메라 중 일부는 화웨이 네트워크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이런 조사 결과는 2019년 백악관에 보고됐고,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정부 보조금을 받는 미 통신사는 화웨이와 또 다른 중국 통신장비업체인 ZTE의 장비를 철거하고 다른 장비로 교체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3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 중국 통신장비 퇴출 성과는 지지부진하다.

美 당국 지침에도 교체 지지부진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200여개에 달하는 소규모 지역 통신회사들은 여전히 중국 통신업체의 구형 장비를 사용하고 있지만 당장 교체 여력이 없다”며 “교체는 내년 또는 그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FCC가 중국산 장비를 교체하면 보조금을 지급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지만, 예산 부족으로 보상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있어서다. CNN은 “FCC는 관련 예산으로 약 30억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일단 승인받은 기업에 대해서만 철거 비용의 40%만 보상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감청 논란에 대해 화웨이는 “미국에 수출하는 우리의 모든 제품은 설치 전에 FCC가 검사하고 인증할 뿐 아니라 미군 통신 대역은 화웨이 장비가 다루는 대역과 다르기 때문에 통신 교란이나 감청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CNN은 전문가를 인용해 “비공개 전파 대역 감청이 가능하면서 이를 숨긴 채 FCC 인증을 받는 건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다”고 전했다.

중국 양저우의 유명 정원인 개원(個園)의 모습. 중국 정부는 2017년 워싱턴 국립수목원에 1억 달러를 들여 개원을 본뜬 중국식 정원을 만들려 했지만, 정원 내 지어질 탑이 국회의사당 등 미 정부 시설을 감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면서 백지화됐다.[사진 중국 정원 재단]

중국 양저우의 유명 정원인 개원(個園)의 모습. 중국 정부는 2017년 워싱턴 국립수목원에 1억 달러를 들여 개원을 본뜬 중국식 정원을 만들려 했지만, 정원 내 지어질 탑이 국회의사당 등 미 정부 시설을 감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면서 백지화됐다.[사진 중국 정원 재단]

관광시설 자재, 외교행낭으로 보내겠다? 

미 당국은 화웨이 외에도 중국 정부와 기업이 자국 기밀을 탈취하려는 움직임을 포착했다. 지난 2017년 중국 정부가 워싱턴DC 내 국립수목원에 1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제안이 대표적이다. 중국 양저우의 유명 정원인 개원(個園)을 본뜬 관광시설을 이곳에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CNN은 “중국 정부의 제안은 매년 수천 명의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 지역 관료들을 들뜨게 했다”며 “하지만 미 정보당국은 이곳에 설치할 탑이 국회의사당에서 약 3㎞밖에 떨어지지 않고, 워싱턴DC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설치되므로 정보 수집에 매우 용이하다는 점을 주목했다”고 전했다.

미 당국은 특히 중국 정부가 이 탑에 들어가는 자재를 미 세관 검사가 필요 없는 외교 행랑으로 보내겠다고 한 점 등을 의심했고, 결국 프로젝트를 취소시켰다. CNN은 2019년 유타주의 극초음속 무기 실험 시설 주변에서 중국 업체가 부동산을 사려다 FBI에 차단당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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