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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핵관 보란듯 '춤판' 벌였다…호남 눌러앉은 이준석의 전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당원권 정지 6개월’ 중징계 처분 뒤 전국을 돌며 장외 여론전을 펴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최근 눌러살다시피 하는 곳이 있다.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과는 심리적 거리감이 있는 호남이다. 이 대표와 가까운 당 인사는 “우연이라기엔 호남 방문 빈도가 잦다”며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이나 여권 지지층을 겨냥한 숨은 메시지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2일 전남 진도에서 열린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한 버스킹' 현장을 찾아 즉석에서 노래를 부르며 지역 군민들과 춤을 추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페이스북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2일 전남 진도에서 열린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한 버스킹' 현장을 찾아 즉석에서 노래를 부르며 지역 군민들과 춤을 추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페이스북

지난 8일 징계를 받은 이 대표는 12일부터 전국을 돌며 당원과 만나고 있다. 첫 방문지는 광주였고, 13일 아침 광주 무등산에서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 징계 후 처음으로 근황을 알렸다. 14일에는 전남 목포의 한 카페에서, 15일에는 순천 국밥집에서 포착됐다.

이후 부산(17일)과 춘천(19일)을 방문한 이 대표는 다시 호남으로 돌아왔다. 21일 전주 분식집에서 당원들과 떡볶이를 먹었고, 22일에는 전남 진도의 지역 행사장에서 주민들과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23일에는 광주의 공원에서 당원들과 ‘치콜’(치킨과 콜라) 모임을 했다. 그의 트레이마크인 ‘제로 콜라’를 마시는 장면도 포착됐다. 그는 최근 12일 중 절반 이상을 호남에서 보냈지만, 여권의 텃밭인 대구·경북(TK)이나 수도권은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7일 부산 광안리 수변공원에서 당원들과 음식을 먹으며 토론하는 모습. 이준석 대표 페이스북 캡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7일 부산 광안리 수변공원에서 당원들과 음식을 먹으며 토론하는 모습. 이준석 대표 페이스북 캡처

중징계를 받고 전국 유랑에 내몰리다시피 한 여당 대표가 왜 호남에 공을 들이는 것일까. 당내에서는 “대체불가 이미지를 강조하는 전략”(당 3선 의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3선 의원은 통화에서 “이 대표의 최근 행보를 요약하면 ‘호남에서 청년과 만남’인데, 모두 정부·여당에 부족한 부분 아니냐”고 말했다.

불모지이자 노다지이기도 한 호남에서 책임당원을 대폭 늘리려는 계산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한 달에 1000원 이상씩 석 달 이상 당비를 내야 하는 책임당원은 전당대회 때 투표권을 행사하는 등 당내 선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당 관계자는 “당원이 가입할만큼 가입한 타 지역과 달리 호남에는 잠재적 당원이 많다”며 “호남의 신규 당원은 이 대표 입장에선 우군이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이 대표는 21일 전주 분식집에서 40여명의 청년 참석자들을 향해 “책임당원 가입은 하셨냐”고 독려했고, “당원 가입하기 좋은 날”이라는 페이스북 글도 꾸준히 올리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 난조 속에 이 대표가 호남과 청년을 기반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비례대표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정부·여당에 대한 호남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호남 당원이 크게 늘면 ‘모두 이준석 공’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당 관계자는 “이 대표 취임 전 한 해 10~20명 증가에 그쳤던 호남 당원 가입 수가 취임 뒤 크게 늘었다”며 “이 대표 징계 직후에는 전주에서만 100명에 가까운 당원이 가입하는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페이스북에 공개한 영상. 진도에서 군민과 어울려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페이스북]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페이스북에 공개한 영상. 진도에서 군민과 어울려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페이스북]

이 대표에 대한 호남 여론이 호의적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조원씨앤아이의 16~18일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 적합도 조사에서 이 대표는 25.2%의 지지율로 1위였다. 안철수 의원(18.3%)과 나경원 전 의원(9.2%) 등이 뒤를 이었다. 호남 지역으로 좁히면 이 대표 29.0%, 안 의원 9.0%로 격차가 더 컸다. (자세한 여론조사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본격적인 당권 경쟁이 불붙기 전 진행된 여론조사라 일종의 ‘인지도 조사’일뿐이라는 반론도 있지만, 당 안팎에서는 직무가 정지된 이 대표의 여론조사 선전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난해 국민의힘 대표 예비경선에서는 당원 여론조사 50%, 일반 여론조사가 50% 반영됐고, 본경선은 당원투표 70%, 일반 여론조사 30%로 이뤄지는 등 여론조사 비율이 상당했다.

7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에 참석한 이준석 대표가 입장을 발표하던 중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 윤리위는 8일 이 대표에게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김상선 기자

7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에 참석한 이준석 대표가 입장을 발표하던 중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 윤리위는 8일 이 대표에게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김상선 기자

하지만 여권 일각에서는 22일 여야의 원 구성 협상 타결 이후 여론의 시선이 국회로 쏠리면 이 대표가 잊혀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친윤계 의원은 통화에서 “국회가 공전하는 상황에서 이 대표가 상대적으로 더 주목 받은 측면이 있다”며 “각종 민생 법안이 처리되고, 국정감사가 진행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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