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클리프 아펠은 어떻게 공간이 되었나 [더 하이엔드]

중앙일보

입력 2022.07.24 15:09

브랜드는 어떻게 공간이 되었을까. 중앙일보 더 하이엔드가 브랜드들, 특히 ‘명품’으로 불리는 브랜드의 공간을 보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읽었다. 그 공간에서 독자들이 눈여겨 봐야할 관전 포인트를 짚었다. 그 첫 번째는 최근 서울 청담동에 자리 잡은 '반클리프 아펠 서울 메종'이다.

반클리프 아펠 서울 메종. ⓒYongjoon Choi [사진 반클리프 앤 아펠]

반클리프 아펠 서울 메종. ⓒYongjoon Choi [사진 반클리프 앤 아펠]

명품의 공간 ① 반클리프 아펠 서울 메종

서울 강남구엔 '명품거리'가 있다.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에서부터 시작해 청담사거리까지 이어진 1.2km 정도의 압구정로를 말하는데, 내로라하는 해외 유수의 럭셔리 브랜드의 플래그십 매장들이 모여있다. 행정구역상 청담동에 속해있어 ‘청담명품거리’라고도 하는데, 사실 정확한 이름은 ‘청담패션거리’다. 1996년 서울시가 특화거리 조성 계획을 실행하면서 청담동을 ‘패션’으로 특화했고, 이후 2008년 지식경제부가 아예 압구정 청담동을 ‘패션특구’로 지정하며 '청담패션거리'가 됐다. 이후 거리 대로변에 명품 브랜드들이 모이면서 명품거리란 명칭이 일반적으로 쓰인다.

여기서 잠깐 압구정동의 첫 전성기를 살펴보자. 압구정동은 1990년대 중반 패션을 중심으로 한 럭셔리 문화를 처음 소개하는 공간(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갤러리아백화점(지금의 명품관)이 생기면서부터였는데, 거리엔 이 문화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오죽하면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라는 영화가 나올 정도였으니. 하지만 트렌드의 중심이 홍대입구·한남동·성수 등지로 옮겨가며 압구정·청담동은 점점 인기를 잃었다가, 최근 2~3년 사이 다시 부흥기를 맞으며 이곳의 기운도 사뭇 달라졌다.

관전 포인트 1. 세계에 5개만 있는 메종 중 하나

반클리프 아펠 서울 메종. [사진 반클리프 앤 아펠]

반클리프 아펠 서울 메종. [사진 반클리프 앤 아펠]

최근 청담 명품거리엔 새로운 브랜드 공간이 만들어지거나 기존 공간을 새롭게 바꾸는 리뉴얼 공사가 한창이다. 공통점은 모두 일반 매장을 벗어나 세계적으로 랜드마크가 될만한 문화 코드와 위풍을 겸비하고 있다는 것. 이중에서도 눈여겨 볼만한 공간 중 하나가 바로 이곳, 반클리프 아펠 서울 메종이다.

반클리프 아펠은 1906년 시작한 프랑스의 하이엔드 주얼리&시계 브랜드다. 브랜드 설립 10년 전 보석세공사의 아들 알프레드 반클리프와 보석 딜러의 딸 에스텔 아펠이 결혼하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두 가문의 형제들이 의기투합해 주얼리 브랜드를 만들었고, 두 가문의 이름을 따 브랜드명을 지었다. 국내에선 부르기 편하게 접속사를 생략하고 있지만, 프랑스어 표기(Van Cleef & Arpels)를 보면 두 가문의 결합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엔 꽤 일찍 들어왔다. 1989년 처음 한국에 들어와 주로 백화점에 매장을 가지고 있다가 올해 서울 메종을 마련했다. 지상 5층의 서울 메종은 1900년대 처음 문을 연 프랑스 파리 방돔 광장, 미국 뉴욕 5번가, 도쿄 긴자, 홍콩에 이은 반클리프 아펠의 5번째 메종이다. 다른 메종들과 달리 설계부터 반클리프 아펠이 직접 주도한 공간이라 브랜드 내부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2020년 첫 삽을 떴는데, 건축에만 2년이 걸렸다. 이전의 준비 기간도 상당했으니 이 공간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건물 디자인과 설계는 디자이너 패트릭 주앙과 건축가 산지트 만쿠가 이끄는 프랑스 건축디자인 회사 '주앙 만쿠 에이전시'가 맡았다. 이들은 전설적인 셰프 알랭 뒤카스의 ‘오 플라자 아테네’ ‘로텔 드 파리’ 등 레스토랑과 파리 드골 공항의 에어프랑스 라운지, 파리 몽파르나스 역사 등 공간을 만든 회사다. 특히 15년 전부터 반클리프 아펠의 파리·뉴욕·도쿄 매장을 함께 만들어온, 반클리프 아펠의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공간디자인 팀이다.

관전 포인트 2. 한국을 품다, 품위있게

반클리프 아펠이 한국과 브랜드 문화가 만든 지점으로 잡은 '예술의 정원'. [사진 반클리프 앤 아펠]

반클리프 아펠이 한국과 브랜드 문화가 만든 지점으로 잡은 '예술의 정원'. [사진 반클리프 앤 아펠]

브랜드의 현지화 전략 중 가장 높은 차원의 접근법은 그 나라의 문화를 품는 것이다. 진출 국가의 랜드마크나 전통 문양을 디자인 모티프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쉽고 직접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브랜드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방법은 고도화되고, 공간의 경우엔 더 문화적이고 철학적인 접근이 이루어진다.

반클리프 아펠 서울 메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니콜라 보스 반클리프 아펠 회장은 서울 메종에 대해 “프랑스 주얼리 역사를 만들어온 우리의 전통과 한국의 문화유산이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고, 향후에 있을 두 문화의 활발한 소통을 이끌도록 공간을 설계했다”고 했다. 한국적인 물건이나 디자인을 몇 가지 준비해 보여주기 보다, 두 문화 자체를 융합하려 노력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문화·전통을 넘나드는 경이로움이 가득한 세상.’ 반클리프 아펠이 서울 메종을 정의한 문구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다가도 실제로 공간을 방문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국과 반클리프 아펠의 문화를 ‘반클리프 아펠스럽게’ 풀어낸 결과물들을 경험할 수 있어서다. 한국의 자연을 건물 안팎에 배치하고, 우리의 청자 도자기를 과감하게 건축 소재로 사용했다. 겉모습은 프랑스 주얼리 브랜드의 매장이지만, 품고 있는 감성은 정성스럽게 가꿔진 한옥이 떠오른다.

관전 포인트 3. 한옥 차경 도입한 세라믹 커튼월

외벽 사선 커튼월에 부착된 초록색 세라믹 패널은 한국의 청자 도자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사진 반클리프 아펠]

외벽 사선 커튼월에 부착된 초록색 세라믹 패널은 한국의 청자 도자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사진 반클리프 아펠]

한국 문화와의 접목은 메종 건물 외벽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외벽을 감싸고 있는 사선의 커튼월 파사드다. 밖에서는 건물 안을, 내부에선 건물 밖 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고 즐길 수 있는 형태다. 창과 문을 통해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창밖의 풍경을 잠시 빌려 즐겼던 한옥의 ‘차경(借景, 자연의 경치를 빌리다)’과도 맞닿아 있는 건축 양식이다.

특히 커튼월을 이루고 있는 사선 구조물엔 우리 도자기 청자에서 영감을 받은 청자 세라믹 패널이 붙어 있다. 철제로 뼈대를 잡고 그 안쪽을 모두 사각의 도자기 조각으로 연결했는데, 날씨에 따라 빛에 따라 은은하고 오묘하게 색이 바뀐다. 세라믹 패널은 국내 도자공방에서 강도와 색 크기를 계산해 하나하나 구워낸 것이라고. 반클리프 아펠이 중요시하는 장인정신을 한국의 도자기를 통해 풀어냈다.

관전 포인트 4. 한국의 자연을 옮겨온 정원

매장에 들어가자마자 볼 수 있는 1층이 정원 공간. [사진 반클리프 앤 아펠]

매장에 들어가자마자 볼 수 있는 1층이 정원 공간. [사진 반클리프 앤 아펠]

암석으로 표현된 부분은 서울을 둘러싼 7개의 산에서 영감 받았다. [사진 반클리프 앤 아펠]

암석으로 표현된 부분은 서울을 둘러싼 7개의 산에서 영감 받았다. [사진 반클리프 앤 아펠]

“우리는 반클리프 아펠의 작품들과 한국 문화의 중심을 이루는 자연이 웅장하고 은밀한 정원에 공존하게 하고 싶었다. 그 장치로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모호하게 설정해 현실에선 꿈꿔보지 못한 매혹적인 환경을 만들어 내고자 했다.”_패트릭 주앙과 산지트 만쿠

이곳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건물 곳곳에 배치된 정원이다. 특히 1층을 내부를 둘러싸고 있는 암석과 식물에서 자연이 느껴지는데, 이것이 낯설지 않다. 이 플랜테리어(식물로 한 인테리어)가 한국의 지형과 식물에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1층 외에도 5층 건물 곳곳에 크고 작은 정원이 있는데, 모두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들이 심겨 있다.

반클리프 아펠은 주얼리 대부분을 자연에서 영감을 받는 만큼 이를 공간에 담길 원했다.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가 결합한 정원을 만들기 위해 서울을 둘러싼 7개의 산을 모티프로 삼았고, 암벽과 식물을 프랑스식으로 우아하게 배치했다. 이를 위해 한국 1대 조경가 정영선 교수가 이끄는 조경설계회사 '서안'이 참여했다. 서안은 최근 성수동에 생긴 디올 성수의 정원과 아모레퍼시픽 용산 사옥, 마곡동 서울식물원, 선유도공원 등의 조경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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