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닥터헬기 출동 골든타임 5분…이걸 해내는 '베테랑 기장' 비결 [별터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주대병원 닥터헬기팀 허정욱 파트장. 40년 경력의 조종사로 6년째 닥터헬기를 운행하고 있다. 최모란 기자

아주대병원 닥터헬기팀 허정욱 파트장. 40년 경력의 조종사로 6년째 닥터헬기를 운행하고 있다. 최모란 기자

“무사히 골든타임 안에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지난 20일 오후 1시 20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 이착륙장. 짧은 기도와 함께 의료진을 태운 닥터헬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헬기는 20분도 안 돼 돌아왔다.기도대로 중증외상환자 골든타임(1시간 이내)을 지켰지만 조종석에서 내리는 허정욱(63) 기장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경기도 광주에서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환자에요. 큰 부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허 기장은 지난 1월부터 ‘하늘의 응급실’로 불리는 닥터헬기의 운항과 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기장 5명, 정비사 2명, 운항관리자 2명으로 구성된 팀의 파트장이자 기장이다. 출동 요청이 들어오면 인공호흡기와 심장충격기, 이동형 혈액화학검사기 등이 탑재돼 있고, 30여 가지 의약품이 비치된 이 헬기에 기장 외에 전문의 1명, 간호사 1명 등 2명 이상으로 구성된 아주대병원 의료진이 함께 탑승한다.

2011년 9월 인천시에서 시작된 닥터헬기는 현재 경기·강원·경북·충남·전북·전남 등 총 7개 지역에서 운영하지만 24시간 운영체제를 갖춘 건 경기도가 유일하다. 주간은 아주대병원 닥터헬기팀이, 야간은 소방헬기로 환자 이송을 맡는다. 경기도 닥터헬기는 올해 상반기에만 163회 운항했고 그 중 132회가 주간 환자 이송 건이었다.

출동 준비를 하는 아주대병원 닥터헬기. 최모란 기자

출동 준비를 하는 아주대병원 닥터헬기. 최모란 기자

군 전역 후 닥터헬기로 제2의 인생 

“하늘을 날고 싶었다”는 허 기장은 1981년 5월 육군 항공대에 입대하면서 헬기와 인연을 맺었다. “중학교 때까지 전남 보성에서 자랐는데 동네에 공군 비행사 출신이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일을 했다는 그 비행사가 선망의 대상이었죠.”

육군 항공대 시절의 허정욱 파트장. 본인제공

육군 항공대 시절의 허정욱 파트장. 본인제공

항공 준사관으로 입대한 허 기장은 2015년 3월 전역할 때까지 34년간 군 헬기 기장으로 근무했다. 총 7700시간 무사고 비행이다. 실력을 인정받아 육군항공작전사령부와 육군항공학교 등에서 헬기 평가관, 교관, 검토위원 등으로도 활동했다.닥터헬기와는 전역 이듬해인 2016년 2월에 인연을 맺었다. 헬기 기장 경력을 살려 할 일을 찾던 중 항공운송사업체에 재취업해 처음 맡은 일이 충남 천안 단국대병원의 닥터헬기 기장이었다.

충남 단국대병원에서 닥터헬기 기장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허정욱 파트장. 본인제공

충남 단국대병원에서 닥터헬기 기장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허정욱 파트장. 본인제공

똑같이 헬기를 다루는 일이지만 군 헬기와 닥터헬기는 운항 방식 등이 달랐다. 군 헬기는 야간이나 비·안개 등으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경우 헬기에 장착된 계기에 의존하는 계기비행이 가능하다.반면 닥터헬기는 조종사가 시각으로 지상을 관찰하면서 나는 시계비행을 해야 한다. 비가 많이 오거나 안개 등으로 시야가 가려진 상태에선 하늘을 날 수 없다. 응급처치나 치료 과정에서 난류 등으로 기체가 흔들리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빠르게 이동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유지해야 한다.

“닥터헬기를 담당하면서 날씨가 중요해졌어요. 시계비행규칙이 시정 거리 5㎞, 지표면에서 구름까지의 높이가 1000피트 일 때 운항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날씨를 확인합니다.”

조종관을 잡은 아주대병원 닥터헬기팀 허정욱 파트장. 그는 40년 경력의 조종사로 6년째 닥터헬기를 운행하고 있다. 최모란 기자

조종관을 잡은 아주대병원 닥터헬기팀 허정욱 파트장. 그는 40년 경력의 조종사로 6년째 닥터헬기를 운행하고 있다. 최모란 기자

골든타임 지키기 위해 항상 출동 준비  

5분. 출동 요청을 받은 닥터헬기가 의료진을 태우고 사고 현장을 향해 날아오르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병원에 일찍 도착할수록 생존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허 기장은 대기 중에도 늘 긴장상태다.

지난 20일은 유독 출동이 잦았다.갑작스런 출동으로 인터뷰 시각이 30분 늦춰는데, 대화를 시작한 지 15분도 안 돼 다시 출동 요청이 들어왔다. 오후 1시로 예정했던 인터뷰는 문답과 기다림을 반복하며 오후 5시가 다 돼 끝났다. “하루 최대 5번까지 출동해봤어요. 헬기는 기름이 가득 차면 무거워서 빠른 이동이 불가능해 적정량만 급유해야해서 출동이 없을 때도 늘 헬기 상태를 확인하고 기름 잔량을 살핍니다.”

닥터헬기는 기장도 2인 1조다. 파트너인 차주호(61, 왼쪽) 기장과 닥터헬기 앞에 선 허정욱 파트장. 최모란 기자

닥터헬기는 기장도 2인 1조다. 파트너인 차주호(61, 왼쪽) 기장과 닥터헬기 앞에 선 허정욱 파트장. 최모란 기자

닥터헬기 기장 경력도 벌써 6년 째, 군 비행경력에 900시간 무사고 비행이 더 해져 40년 동안 8600시간을 사고 없이 날았다. 비결을 묻자 허 기장은 간단히 답했다. “비행에만 신경 씁니다. 환자의 상태나 상황을 미리 알면 마음이 조급해져서 안전 운항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비행이 끝나기 전까진 환자의 상태나 신상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송했던 환자들을 전부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완쾌됐다’‘퇴원한다’는 말을 전해 들으면 온종일 기분이 좋습니다.” 단국대병원 닥터헬기를 몰던 2017년 3월 말에는 장문의 감사 편지를 받아 화제가 됐다. 그해 3월 심근경색증으로 수술을 받은 80대 여성 A씨의 자녀가 보낸 편지였다. “닥터헬기 덕분에 어머니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닥터헬기 항공의료팀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위급한 생명을 구하는데 더욱 애써주세요.”

“예전처럼 심하진 않지만, 아직도 가끔 헬기 소리가 시끄럽다는 민원이 종종 들어옵니다.닥터헬기 소음은 사람을 살리는 소리니 양해해주셨으면 합니다.” 허 기장의 당부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