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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째 이준석 소환도 못했다…"애초 불가능" 경찰 딜레마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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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이 계속 지금과 같은 ‘반(反) 페미’자세를 밀어붙여 국민의힘을 그 함정으로 몰고 가면, 국민의힘을 죽이는 데에 기여할 게 분명하다.”

지난해 9월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66)가 잡지 ‘더 인물과 사상’에 실은 ‘발칙한 이준석’이라는 글에서 예언한 이준석 대표(직무정지)와 국민의힘의 미래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그 예언은 반쯤 빗나가고 있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추락중이지만 이 대표의 ‘반 페미’ 갈라치기 탓이라기 보단 그를 징계하는 과정이 자중지란으로 흐른 영향이 더 컸다.

지난 13일 광주 무등산에 오른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이 대표 행적이 확인된 것은 지난 8일 이후 6일 만이다. 이 전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사진과 함께 "정초에 왔던 무등산, 여름에 다시 한번 곡 와봐야겠다고 이야기했다"며 "원래 7월에는 광주에 했던 약속들을 풀어내려고 차근차근 준비 중이었는데 광주시민들께 죄송하다. 조금 늦어질 뿐 잊지 않겠다"고 적었다. 이준석 페이스북

지난 13일 광주 무등산에 오른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이 대표 행적이 확인된 것은 지난 8일 이후 6일 만이다. 이 전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사진과 함께 "정초에 왔던 무등산, 여름에 다시 한번 곡 와봐야겠다고 이야기했다"며 "원래 7월에는 광주에 했던 약속들을 풀어내려고 차근차근 준비 중이었는데 광주시민들께 죄송하다. 조금 늦어질 뿐 잊지 않겠다"고 적었다. 이준석 페이스북

지난 8일 당원권 6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고 탁발승마냥 전국을 유람중임에도 이 대표는 몇몇 여론조사에서 ‘차기 당대표 감’ 1위를 기록하며 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 전 대표가 링 밖을 도는 동안 피가 마르는 건 경찰이다. 경찰은 사후적으로라도 의혹이 사실임을 규명하고 사법처리해서 징계의 정당성을 입증하라는 정권 차원의 숙제를 떠안은 모양새다.

경찰이 성접대 의혹 사건(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을 검찰로부터 넘겨받은 건 지난 1월7일,보수 단체가 수사 의뢰한 증거인멸교사 의혹 사건을 접수한 것은 지난 4월1일이다. 그러나 경찰은 6개월이 지나도록 이 대표를 부르지 못하고 있다.

‘미션 임파서블’ 떠안은 경찰

경찰의 의지나 용기의 문제라고 보기엔 이 전 대표의 처벌을 바라는 정권 실세들의 열망이 너무 크다. 행정안전부에 경찰국도 생기는 마당에 누가 대어를 흘려보내고 싶겠는가. 문제는 이 숙제가 애초부터 법률적으로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웠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성접대 제공자로 지목된 김성진 전 아이카이스트 대표를 상대로 한 경찰의 두번째 구치소 접견 조사가 진행된 지난달 30일. 김소연 변호사는 “김 대표가 경찰 조사에서 ‘2013년 7월11일과 8월15일 대전 유성구에서 두 차례의 성 상납을 제공한 것을 포함해 2016년까지 총 20회 이상 이 대표를 접대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당시 김씨의 청탁은 “(박근혜) 대통령을 우리 회사에 모실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는 것이었고 김씨는 “이 대표가 두 명을 거론하며 ‘이 사람들을 통해 힘을 써보겠다, 자기가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2013년 11월29일 박근혜 대통령이 교육학습시스템 '아이카이스트'의 시연을 보고 있다. 왼쪽 위 인물이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 [중앙포토]

2013년 11월29일 박근혜 대통령이 교육학습시스템 '아이카이스트'의 시연을 보고 있다. 왼쪽 위 인물이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 [중앙포토]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에 관해 알선을 명목으로 금품 등을 수수한 사람을 처벌하는 특가법상 알선수재죄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특정한 시기와 장소에서 이 대표가 김씨에게 성상납을 받은 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2020년 8월15일로 공소시효가 끝난다. 김 변호사가 접대 회수와 기간을 “2016년까지 총 20회 이상”이라고 언급한 것은 공소시효를 염두에 둔 말이다. 그러나 이는 김씨가 아직 경찰에 진술하지 않은 사실들을 포함한 숫자다. 김 변호사는 지난 1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2016년까지 밥 사주고 술 사주고 한 횟수를 러프하게 세어보았을 뿐,각각의 접대 사실을 조서에 남길 수 있는 형태로 진술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만약, 김 변호사의 말대로 김씨가 2016년까지도 이 대표에게 금품과 접대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믿을만한 정도로 구체적으로 진술한다면 경찰은 공소시효가 지난 것으로 보이는 2013년의 행위까지도 모두 처벌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여러 개의 행위가 1개의 범죄를 구성하는 것으로 보아 처벌할 수 있다는 포괄일죄의 법리가 희망의 끈이다.

그러나 이런 희망도 곧바로 논리적 모순에 봉착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우리 회사에 모실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는 게 청탁의 내용이었다는 게 김씨의 진술이라는데 박 전 대통령이 아이카이스트에 다녀간 건 2013년 11월 29일이다. 성접대를 알선수재로 처벌하기 위해선 2013년 7~8월부터 최소한 2015년까지 관통하는 또 다른 청탁이 있었고, 이 대표가 청탁의 내용을 박 전 대통령 또는 또 다른 공무원에게 전달하는 알선 행위를 했다는 게 입증되어야 한다. 여러개의 행위를 한 데 묶으려면 같은 범죄의도가 그 기간 내내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2014년 7월 새누리당의 혁신위원장을 맡은 이 대표는 그 전후 당과 청와대를 향해 좌충우돌했다. 그런 와중에 박 전 대통령이나 정부 요인 누구를 상대로 알선행위를 했다는 건 그럴싸하지 못한 시나리오다.

판례의 벽에 부닥친 증거위조교사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내린 중징계의 실질적 이유로 작용한 증거인멸교사 의혹이 형사처벌의 근거가 되기란 더욱 난망하다. 이 의혹은 가로세로연구소가 성상납 의혹을 폭로한 직후 이 전 대표가 자신의 정무실장이던 김철근씨를 ‘성상납 의전 담당’으로 지목된 장모씨에게 보내 ‘성상납 부인 사실확인서’를 받게 했다는 내용이다. 정확히 말하면 증거위조교사 의혹이다.

이 대표는 김 실장을 장씨에게 보낸 사실은 시인했지만 다만 그 취지에 대해선 “김 실장에게 증언하겠다는 인사에게 찾아가 만나보라고 했다. 거기까지 얘기했다”고 선을 그었다.(지난달 22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문제는 성상납이 실제로 이뤄졌다고 치고, 또 다른 청탁과 접대가 2015년까지 이어졌다고 가정하고, 이 대표가 김 실장을 통해 장모씨의 입을 막으려고 시도한 게 사실이라고 전제하더라도 증거위조교사죄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판례에 수사기관에서 허위 진술을 하거나, 허위의 사실확인서나 진술서를 작성해 제3자에게 건네는 것은 ‘증거 위조’의 범위에 들지 않는다고 반복하고 있다.

사기범 김성진의 입에 달린 수사 

기소 가능한 혐의를 인지하지 못한 채 수사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경찰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사기 혐의로 징역 9년형을 확정받아 수감중인 김씨의 입뿐이다. 2013년의 일에서 시작된 조사가 그 다음해 그 다음해로 넘어갈수록 김씨를 마주한 수사관의 입술은 바짝바짝 타들어갈 것이다. 김씨가 몇년 간의 기억을 법률 요건의 아귀에 맞춰 쏟아내 줄 수 있을까.그걸 판사가 믿어줄까.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의 법률 대리인인 김소연 변호사가 지난달 30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날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 2013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게 성접대했다는 의혹을 받는 김 대표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뉴스1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의 법률 대리인인 김소연 변호사가 지난달 30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날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 2013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게 성접대했다는 의혹을 받는 김 대표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뉴스1

지난 주 예정됐던 경찰 3회차 접견 조사는 김씨측의 사정에 따라 미뤄졌다. 김소연 변호사를 창구로 삼았던 김씨는 그 사이 ‘건희사랑’ 대표 강신업 변호사와 2시간 여 동안 접견했다고 한다. 출소일이 얼만 안 남은 지금,제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진술을 할지 말지 고민중이라면 다른 안전판이 절실할 수도 있다.

‘미션 임파서블’을 ‘가능’으로 바꾼다면 안그래도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장 후보 면접, 경찰국 신설 등으로 하명 수사기관이란 오명을 뒤집어 쓸 판인 경찰은 “정치 검찰과 다를 바 없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반대로 ‘불가능’을 시인한다면 정권 핵심부의 등쌀에 온몸에 생채기가 날 게 뻔하다. 그 결말을 보기 전에 기억할 것이 있다. 누가 경찰을 오도 가도 못할 외나무 다리 복판에 세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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