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마약 아닌 치료제" 국내 최초 대놓고 대마 기르는 '뽕쟁이' [포토버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청년 스마트팜 기업 상상텃밭은 경북 안동 '경북산업용헴프규제자유특구'에서 첨단 농법으로 산업, 의료용 대마를 재배하고 있다. 수확할 때가 된 대마의 수정되지 않은 암꽃. 파킨슨 병과 소아 뇌전증(간질) 치료제에 원재료로 쓰이는 칸나비디올(CBD) 성분이 풍부하다. 김성룡 기자

청년 스마트팜 기업 상상텃밭은 경북 안동 '경북산업용헴프규제자유특구'에서 첨단 농법으로 산업, 의료용 대마를 재배하고 있다. 수확할 때가 된 대마의 수정되지 않은 암꽃. 파킨슨 병과 소아 뇌전증(간질) 치료제에 원재료로 쓰이는 칸나비디올(CBD) 성분이 풍부하다. 김성룡 기자

마약류의 대명사처럼 불리던 대마, 최근 파킨슨병이나 뇌전증(간질) 치료제로서 의학적 효능이 입증되면서 그 지위가 달라지고 있다. 대마의 산업적 가능성을 내다본 정부는 지난 2020년 경북 안동에 '경북산업용헴프(대마)규제자유특구'를 지정해 국내 최초로 대마를 합법적으로 재배하고 성분을 추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김수빈 상상텃밭 대표(오른쪽)와 직원들이 대마 재배 스마트팜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김성룡 기자

김수빈 상상텃밭 대표(오른쪽)와 직원들이 대마 재배 스마트팜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김성룡 기자

수직 농장 위층엔 수확을 앞둔 대마가, 아래층엔 어린 대마가 자라고 있다. 김성룡 기자

수직 농장 위층엔 수확을 앞둔 대마가, 아래층엔 어린 대마가 자라고 있다. 김성룡 기자

지난 21일 이곳에서 대마를 재배는 상상텃밭(대표 김수빈·30)의 스마트팜을 방문했다. 농장 문을 열고 들어가니 깻잎과 비슷한 대마 향이 콧속으로 들어왔다. LED 조명이 켜진 2층 구조의 스마트팜에서 약 2000주의 대마가 자라고 있었다. 각각의 대마에 연결된 튜브를 통해서 양액(영양분이 담긴 수용액)이 자동으로 공급되고 있었다. 대마가 자라고 있는 하우스 내부는 커다란 식물공장 또는 연구소를 연상케 했다. 하우스 안에서는 마침 대마 수확 작업이 한창이었다. 다 자란 대마에서 꽃과 잎을 채취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수확된 대마는 원료의약품(API) 제조 및 수출실증을 위해 규제자유특구 내 연구소로 옮겨진다.

상상텃밭 직원이 다 자란 대마를 수확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상상텃밭 직원이 다 자란 대마를 수확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상상텃밭 직원이 수확한 대마의 꽃과 잎을 채취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상상텃밭 직원이 수확한 대마의 꽃과 잎을 채취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대마가 마약이 아닌 산업·의료용으로 주목을 받는 이유는 대마에 함유된 칸나비디올(이하 CBD) 성분 때문이다. 대마는 마약으로 규정된 성분인 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이하 THC) 함량을 기준으로 크게 마리화나와 헴프로 구분되며, 마리화나는 통상적으로 마약으로 알고 있는 종으로 THC 함량이 높은 반면, 헴프는 THC 함량이 0.3% 미만으로 적고 유용성분인 CBD 함량이 높다. 현재까지 연구된 바에 따르면 CBD 성분은 통증과 염증을 줄이고, 간질·발작을 조절하는 데 효과가 우수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CBD 추출물은 의약품(뇌전증, 치매, 암, 근육통 등), 건강기능식품(면역력 향상․콜레스테롤 저감), 화장품(염증, 여드름, 주름), 동물용 치료제 등에 활용되고 있다. 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3조9000억원을 기록한 대마(CBD) 글로벌 시장 규모는 오는 2028년엔 15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씨를 직접 발아시켜 배양 중인 어린 대마들. 김성룡 기자

씨를 직접 발아시켜 배양 중인 어린 대마들. 김성룡 기자

다 자라 수확을 앞둔 대마. 대마의 수정되지 않은 암꽃에는 칸나비디올(CBD) 성분이 풍부하다. 김성룡 기자

다 자라 수확을 앞둔 대마. 대마의 수정되지 않은 암꽃에는 칸나비디올(CBD) 성분이 풍부하다. 김성룡 기자

상상텃밭은 이 CBD 성분에 주목하고 있다. 추출을 목표로 하는 CBD 성분은 수정되지 않은 암꽃에 많은데 노지재배를 할 경우 바람이 불어 대마가 수정되면 CBD 성분이 거의 사라지게 된다. 또한 정밀재배가 불가능해 1년 내내 일정한 CBD를 얻기 힘들다. 이를 위해 상상텃밭은 실내 스마트팜에서 AI(인공지능)를 활용한 온실 초정밀 제어기술, 작물에 최적의 영양과 산소를 공급하는 정밀 양액제어 시스템을 가동해 대마를 재배한다. 김 대표는 "식물에 어떤 물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자주 줄지, 빛을 어떤 방식으로 비춰야 하는지에 맞춰 스마트팜 환경을 설계했다"고 말했다.

상상텃밭 직원과 보안업체 직원이 수확한 대마의 무게를 측정하고 있다. 대마는 마약류로 분류되는 만큼 엄격한 유통 관리를 받는다. 김성룡 기자

상상텃밭 직원과 보안업체 직원이 수확한 대마의 무게를 측정하고 있다. 대마는 마약류로 분류되는 만큼 엄격한 유통 관리를 받는다. 김성룡 기자

이곳의 대마는 큰 나무에서 가지를 잘라 기르는 삽목 방식으로 주로 재배를 한다. 처음 잘라낸 가지는 뿌리가 내리는 배양 과정을 거쳐 배지로 옮겨지고 8주 정도가 지나면 키가 50~60㎝까지 자라 수확이 가능하다. 노지재배를 할 경우 1년에 한 번밖에 수확을 못 하지만, 스마트팜에서는 5기작이 가능하다. 다만 현재 이곳에선 재배 면적과 인력 등을 고려해 순차적으로 수확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일반적인 다른 농장과 다른 점은 대마라는 작물의 특성상 불법적인 유통을 차단하기 위해 하우스 내부 곳곳에 CCTV가 설치돼 있고 보안업체 직원들도 배치돼 있다.

대마 재배 하우스 내에 벌레를 잡는 끈끈이가 설치돼 있다. 김성룡 기자

대마 재배 하우스 내에 벌레를 잡는 끈끈이가 설치돼 있다. 김성룡 기자

상상텃밭은 김 대표가 대학교 4학년이던 지난 2017년 고교 동창 4명과 함께 창업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 중 김 대표를 포함해 식물 관련 전공자가 없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농업경제학을 전공하던 김 대표는 군 제대 후 컴퓨터 사이언스로 전공을 바꿨다. 식물 관련 공부는 거의 독학으로 했다. 창업 초기 스마트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엽채류 등 다양한 작물을 실험·재배하던 중 고부가가치를 가진 대마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김 대표는 "처음에는 대마 씨앗을 구하기 위해 무턱대고 섬유용 대마를 키우는 농가를 찾아가기도 했다. 막상 섬유용 대마를 키워보니 CBD 성분이 별로 없다는 걸 알고 나서는 외국에서 씨앗을 구입해 길렀다" 며, "대마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뽕쟁이'라는 농담을 듣기도 했지만, 대마가 가진 의학적 효과와 시장의 높은 잠재력을 믿고 대마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토양이 아닌 배지에 재배 중인 어린 대마들, 튜브를 통해 양액(영양 성분이 든 수용액)을 공급받는다. 김성룡 기자

토양이 아닌 배지에 재배 중인 어린 대마들, 튜브를 통해 양액(영양 성분이 든 수용액)을 공급받는다. 김성룡 기자

김 대표는 지난 4년간 대마 재배의 기술력과 시스템을 갖췄지만, 대마로 실제 수익을 창출하기까지는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마를 재배해서 CBD 성분을 추출한다고 해도 국내 현행법으로는 판로가 없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법 개정보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며 "인터넷 커뮤니티를 봐도 그렇고 특구 사업단에서 대국민 인식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긍정이 34% 정도고 나머지는 부정이었다"며 "우리가 생산한 CBD를 환자에게 치료제로 써보거나, 식품이나 화장품 등 샘플을 만들어서 사용해서 부작용보다 순기능이 더 많다는 홍보가 인식 변화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마 사업의 미래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김 대표는 "당장은 어렵지만 한국도 세계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지는 못할 것"이라며 "언젠가는 규제가 완화돼 한국에서도 대마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날이 올거라 희망한다"고 답했다.

김수빈 상상텃밭 대표가 재배 중인 대마를 살펴보던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김수빈 상상텃밭 대표가 재배 중인 대마를 살펴보던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