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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제 먹으면 내성? 식사중 물 마셔도 OK? 둘중 하나만 맞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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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소화력 높이기

무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소화불량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단순히 ‘더위를 먹었겠거니’ 하고 방치했다간 몸속 영양소 불균형과 이로 인한 면역력 저하 등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한양대병원 소화기내과 이항락 교수는 “소화기관에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서 소화력이 떨어졌다면 흔히 ‘신경성 위염’으로 불리는 기능성 소화불량증을 의심할 수 있다”며 “폭염·환절기 같은 기후변화도 소화불량의 원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상 속 소화력을 높이는 법과 소화에 대한 오해를 풀어본다.  

단백질 분해 돕는 파인애플·키위

위는 위산으로 음식물의 세균을 죽인 뒤 연동운동을 통해 음식물을 소장으로 내려보낸다. 소장은 십이지장과 공장·회장으로 구성되는데, 십이지장에서 소화액인 담즙·췌장즙을 분비한다. 이들 소화액엔 단백질과 지방을 분해하는 소화효소가 담겨 있다. 소화효소는 십이지장에서 음식물을 잘게 쪼갠다. 이렇게 분해된 음식물 속 영양소는 공장·회장을 통해 체내 흡수된다. 이때 단백질을 분해하는 소화효소가 프로테아제다. 췌장에서 분비되는 프로테아제는 십이지장에서 단백질을 잘게 쪼갠다. 단백질 소화가 버겁다면 이 소화효소를 과일로 보충해보는 건 어떨까.

파인애플 속 브로멜라인, 키위 속 액티니딘, 무화과 속 피신, 파파야 속 파파인 등은 프로테아제의 종류다. 가천대 길병원 허정연 영양실장은 “파인애플·키위 등으로 고기를 재워 두면 이들 과일 속 소화효소가 고기의 단백질을 분해하고 단백질 결합을 느슨하게 한다”며 “고기가 잘 소화되지 않는 노년층도 부드럽게 섭취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는 고기를 먹고 나서 이들 과일을 디저트로 곁들이는 것만으로도 단백질의 소화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한 번에 30회 이상 씹기

식사할 때 ‘오래 씹기’는 소화력을 높이는 쉬운 방법이다. 침 속 아밀라아제의 탄수화물 분해 기능 때문이다. 하루에 분비되는 침의 양은 1~1.5L 수준이다.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소화효소인 아밀라아제는 침 1L에 약 0.4g이 들어 있다. 침 자체는 입에서 음식물을 오래 씹을수록 더 잘 분비되며, 이로 인해 아밀라아제가 음식물과 잘 섞여 탄수화물 분해를 촉진한다. 섭취한 탄수화물의 약 30%가 입속 아밀라아제로 인해 분해된다. 한림대성심병원 소화기내과 신동우 교수는 “그뿐 아니라 음식물을 오래 씹을수록 몸 전체적으로 소화 기전이 활발하게 작동한다”며 “장의 연동운동이 촉진되고 입·십이지장에서 소화효소가 잘 나와 소화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과거엔 하루 6000번을 씹었지만 현대인은 200번만 씹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크림·요구르트 등 부드러운 식품이 많아 씹을 거리가 줄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한 번에 30회, 한 끼에 30분 이상 천천히, 오래 씹어보자.

심신 안정 취하기

위는 뇌 자율신경계의 영향을 받는다. 음식을 섭취하면 뇌가 명령하지 않아도 위가 알아서 연동운동을 하고 위산을 분비해 소화 과정에 착수한다. 하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 자율신경계 중 교감신경이 항진된다. 이로 인해 위의 연동운동 기능이 떨어지고, 위산이 과다분비돼 속쓰림·소화불량 등을 일으킨다. 신동우 교수는 “시험·면접 기간에 배가 아파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 대다수가 기능성 소화불량증을 갖고 있다”며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한 상태가 되면 부교감신경이 활성화하고, 이는 위 연동운동을 촉진해 위 속 음식물이 소장으로 빠르게 내려가게 하고 소화효소 분비를 촉진한다”고 강조했다. 명상,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 노래하기 등 자신만의 릴랙스 방법을 찾아 실천하며 심신의 안정을 되찾는 게 권장된다.

식후 가볍게 운동하기

식사하고 나서 30분간 가볍게 운동하면 소화력을 높일 수 있다. 대한소화기기능성질환·운동학회의 ‘기능성 소화불량증 치료에 관한 임상 진료지침’에선 소화력을 높이기 위해 과음과 흡연을 삼가며 규칙적인 생활과 적당한 운동을 할 것을 권장한다. 이항락 교수는 “몸을 움직이면 전신의 신경이 자극돼 위도 더 잘 움직이게 된다”며 “걷기 운동 같은 비교적 가벼운 운동을 하면 위 운동력을 증가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자연 속에서 심호흡하며 걷는 ‘세로토닌 워킹법’은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하고 폭식을 막는 데도 도움된다. 세로토닌 워킹법은 걷기가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즐거운 행동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 연구된 걷기 방법이다. 평소보다 조금 빠르면서 보폭은 약간 넓게 걷는다. 가슴은 펴고 허리와 등은 반듯하게 세운다. 호흡은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쉰다. 주변의 바람과 새소리 등에 주의 집중하며 5분만 걸어도 세로토닌이 분비되며, 15분 후엔 세로토닌 수치가 최고치에 다다른다. 신동우 교수는 “위는 뇌와 연결돼 있어 걸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위로 가는 신경이 자극돼 위 연동운동까지 좋아진다”고 조언했다.

나물 양념에 무쳐 먹기

위 속 음식물이 소장으로 빠져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위 배출시간’이라고 한다. 위 배출시간은 사람마다 편차가 크지만 고형식은 60~100분, 액체는 30~40분 정도 소요되며, 일반적으로는 한 끼 식사 후 3시간째에 음식물의 70%가, 4~6시간째에 100%가 내려간다. 신동우 교수는 “위에서 음식물이 다 내려가야 배고픔을 느껴 다음 끼니를 해결하려는 욕구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방이 많은 음식을 먹으면 탄수화물·단백질 음식보다 위 배출시간이 길어진다. 마블링이 많은 삼겹살 같은 고지방식은 건강한 사람에겐 위에 오래 머물며 장시간 포만감을 준다. 하지만 고지방식이 소화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더부룩한 상태가 지속할 수 있어 이를 멀리하는 게 좋다. 마블링이 적은 고기를 선택하고, 음식을 조리할 땐 기름을 적게 사용해 보자. 나물은 기름에 볶는 것보다 양념에 무쳐 먹고. 튀김 요리를 할 땐 튀김옷을 최대한 얇게 입히면 기름 섭취를 줄일 수 있다.

소화에 대한 오해와 진실

소화력이 좋아지면 살찐다

자신의 소화력이 나빠졌다 좋아져 음식을 더 많이 먹게 되면 당연히 살이 찔 수 밖에 없다. 반면에 소화력이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보다 음식 속 영양소를 반드시 더 잘 흡수하는 건 아니다. 소화와 흡수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소화는 음식 속 영양소를 몸에 흡수하기 쉬운 형태로 잘게 분해하는 과정이며, 흡수 단계는 제외한다. 실제로 만성 소화불량 환자 가운데 체중이 이전보다 줄지 않거나 오히려 찌는 경우도 있다.

손 따면 소화가 잘된다

체했을 때 손끝을 찔러 피를 내면 혈액순환이 원활해져 체기가 사라진다는 민간요법이 있다. 하지만 체했다고 혈류가 정체되지 않는다. 손을 따서 피를 냈을 때 체한 증상이 치료된다는 것을 입증한 과학적인 연구결과는 없다. 단, 한의학의 침술이식후 팽만감과 조기 충만감을 개선해 준다는 효과는 2016년 소화불량증 환자 143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메타분석 연구에서 입증됐다.

소화제 자주 먹으면 내성 생긴다

소화제를 자주 먹는다고 해서 내성이 생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몸에서 소화효소를 만들어내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 소화제 가운데 소화효소가 든 약(주로 일반의약품)을 장기간 먹으면 몸에서 소화액을 만들어내려는 자생 능력을 떨어뜨려 몸에서 분비하는 소화액이 줄어들 수 있다. 또 위 운동력을 향상하는 약(전문의약품)도 오래 먹으면 파킨슨병 같은 신경계 질환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식사 시 물 마셔도 괜찮다

식사 도중·직후에 물을 많이 마시면 소화액이 희석돼 소화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있지만 과학적 근거는 없다. 물을 마셔도 소화에 문제없고 소화가 더 잘된다면 물마시고 싶을 때 참지 말고 마셔야 한다. 개인적 경험으로 판단하는 게 맞다. 식사 전이든, 후든 마신 물이 위에서 음식과 뒤섞이는 건 같다. 다만 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속이 더부룩할 수 있으므로 소화가 편할 정도의 적정량을 마시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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