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하지 말아야 할 말 넘쳐나는 한국사회

중앙선데이

입력 2022.07.23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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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8호 31면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서양사람들이 한국인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 중의 하나가 예의가 바르다는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구부려 인사를 하고, 악수도 두 손으로 하기도 하고, 명함도 공손하게 주고받는다. 이름조차 함부로 부르지 않고 직책 등을 붙인다. 존댓말이란 것도 있다고 한다니 꽤 예의범절을 깍듯이 따지는 사람들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한국인에 대해 서양사람들이 뜻밖에 놀라는 일이 좀 있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외모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경우다. 한국인은 손쉽게 타인의 외모에 대해 말을 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체중이나 머리숱을 언급하기도 한다. 뭐 그리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말이다. 별 생각 없이 하는 소리라지만 듣는 입장에서야 썩 좋지는 않다. 젊어 보인다거나 건강해 보인다거나 미인이라는 등의 외모를 칭찬하는 말이라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다. 하는 쪽에서는 좋은 의도라고 해도 어쩐지 평가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니 외모에 대한 말을 하느니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쪽이 낫다. 어지간히 가까운 사이라도 그렇다.

외모·체중·머리숱 등 손쉽게 언급
생각은 자유지만 표현은 다른 문제
타인의 인격이나 명예 훼손 말아야
차라리 말하지 않는 쪽이 나을 수도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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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이라는 한국 속담이 있다. 하지만 사실은 말이란 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쓸데없거나 하지 말아야 할 소리를 해서 잃게 되는 점수가 말을 해서 딸 수 있는 점수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말이란 오히려 줄이고 덜하는 것이 맛인 듯하다. 나이 들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는 쪽이 낫다는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울 정도다. 하지만 같은 말을 수차례 거듭 들었다고 해서 실천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게 된다면 학창시절 거의 누구나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말을 아끼고, 하더라도 조심을 해야 한다는 건 비단 나이 든 사람들만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는 아니다.

비록 생각을 하더라도 말로 하지 않으면 오히려 문제가 덜 된다는 조언은 다른 심각한 주제에 대해서도 유용하다. 요즘같이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시절에는 ‘말’을 ‘글’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즉, 생각을 하더라도 글로 적어 소셜미디어에 내놓지 않으면 위험이 덜하다. 차별 내지 혐오 발언을 했다고 비난을 듣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차별 내지 혐오 발언이란 다른 사람이 속한 집단이 가지고 있는 특성, 즉 성별이나 인종이나 국적, 종교 또는 성적 취향 등에 대하여 폄하하거나 모욕하는 등의 표현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속으로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지 말로 하거나 글로 쓰는 등으로 표현을 하지 않으면 그 속마음을 따질 도리가 없다. 즉, ‘표현’을 하는 것이 문제다. 물론 애초에 속마음 자체가 차별적이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말이다.

물론 ‘표현의 자유’란 헌법상 보호되는 기본적인 권리다. 하지만 속으로만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밖으로 생각을 나타내고 밝힐 권리는 무제한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인격이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는 제한되는 권리다. 그러니 타인에 대해 품고 있던 차별적이거나 모욕적인 생각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까지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보호될 수는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데, 처벌로 인해 생각 자체가 바뀌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는 건 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무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

최근 한국에서는 대학교 1학년 여학생이 시험이 끝나고 같은 대학에 다니는 남학생과 술자리를 가졌다가 강간당하고 폭력적인 죽음에 이르게 된 사건이 있었다. 이런 종류의 사건이 유난히 끔찍하게 느껴지는 것은 피해자인 여성 입장에서는 일상적인 일을 했을 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결말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시험이 끝나 학교 친구와 술을 마시는 것이 강간을 당하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할 정도의 일이던가.

이 비극적인 사건에 대하여 옳지 않고 불쾌한 여러 말들이 떠도는 것을 본다. 이런 말들을 소위 2차 가해라고 규정할 것도 없다. 하지 말아야 하는 말들이다. 만일 어떤 말들을 해서는 안 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면 때 이르고 난데없는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하는 이외의 말들이라면 굳이 입 밖에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건과 관련하여 피해자의 탓을 하는 것, 즉 애초에 남자와 그것도 늦게까지 술을 마신 것이 문제라고 하는 것. 사체 발견 현장을 선정적인 용어로 묘사하고 소비하는 것. 죽은 피해자의 외모에 대해 궁금해 하고 신상을 알고자 하는 것. 가해자에 대해 섣불리 감정이입하고 동정하는 것.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기보다 범죄 자체와 가해자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혹시라도 유사한 생각이 든다면 속에만 담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절이 그나마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속없이 떠드는 못된 소리들을 한국 사회가 순순히 용납하지만은 않는 분위기가 된 듯하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이 예의 없다고 지적당하는 또 하나의 모습이 입을 가리지 않고 하는 재채기다. 이 역시 에취 소리를 내며 큰 재채기를 하는 쪽을 시원스럽게 여겼다면 이제 팬더믹을 거치며 조심하는 모습이 보인다. 재채기를 통한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해서든 설화를 막기 위해서든 입을 여는 것은 조심하는 쪽이 낫다.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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