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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도로 미통당’ 향하는 여당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98호 30면

김창우 사회·디지털 에디터

김창우 사회·디지털 에디터

2004년 3월 12일 오전 11시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 의원들이 국회 경위를 대동하고 본회의장에 들어섰다. 박관용 국회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하자 이들은 의장석 주변에서 농성 중이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야당 의원들은 11시 55분쯤 찬성 193명, 반대 2명으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사회부 말단기자로 국회에 지원을 갔다가 얼떨결에 역사에 남을 순간을 지켜봤다. 어안이 벙벙했다. 설마 지지율과 여론에 민감한 정치인들이 스스로 관으로 들어가 누워 못질까지 하는 악수를 둘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한 달 뒤인 4월 15일 치러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과반인 152석을 차지했다. 한나라당은 수도권에서 109석 가운데 33석을 건지는 데 그쳤다. 그나마 박근혜 대표가 천막당사에서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읍소한 덕에 선방한 결과다.

윤 대통령 긍정평가 비율 12.9%P 하락
37세 대표조차 내치는 모습에 등 돌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지난 8일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이준석 대표에게 6개월간 당원권 정지 결정을 내렸다. 몇 시간 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징계 즉시 효력이 발생하므로 당 대표 권한이 정지된다”고 말하고는 자신이 스스로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자리에 올랐다. 다음날 장제원 의원은 1100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지지 모임을 3년 만에 재개했다. 이들은 대표적인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으로 꼽힌다.

2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지만, 경제와 사회 분야만 주로 담당한 정치 문외한의 눈에는 여전히 정치판이 어렵기만 하다. 물론 노 대통령과 이 대표, 국회의 탄핵과 당 내부 징계가 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여론을 읽지 못하고, 스스로 해가 되는 결정을 되풀이하는 것이 이상할 뿐이다. 성상납 의혹은 9년 전 두 차례 성접대를 받았다며 가로세로연구소에서 이 대표를 고발하면서 불거졌다. 아직 경찰 조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사안이다. 유승민 전 의원은 “진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의혹만 가지고 중징계를 내렸다”며 “정말 정치 보복, 토사구팽”이라고 말했다.

50대 이상 보수층은 37세의 이 대표가 마뜩잖은 것 같다. 불독처럼 물고 늘어지는 태도도, 피아 구분 없이 쏟아내는 날카로운 말도 부담스럽다. 전원책 변호사는 “(이준석의 문제) 하나는 진실하지 않다는 것, 또 하나는 겸허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바른미래당 시절 대선배인 손학규 대표를 밀어내기 위해 그 얼마나 모진 말을 쏟아냈나”라며 “업보라고 생각하라”고 적었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선거에서 4연패하던 당을 이끌고 두 차례의 대승을 거둔 30대 대표조차 품지 못하는 이유는 2년 뒤 총선의 공천권이라는 잿밥 때문이라는 걸 말이다.

이 대표에게 힘을 보탰던 ‘이대남(20대 남성)’들은 ‘미드 오픈’ 상태다. 국민게임이라 불리는 리그오브레전드(LOL)는 다섯 명씩 팀을 나눠 승패를 겨룬다. 한쪽이 너무 몰린다 싶으면 가장 짧은 길을 열고 본거지 수비도 하지 않는다. 빨리 게임을 끝내 달라는 얘기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대표 지지선언을 하거나, 국힘에 입당해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깨끗이 포기하고 관심을 끊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최근 국힘 지지율은 39%로 7주 연속 하락세다. 특히 윤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18~29세 비율은 30.9%에 그쳤다. 일주일 만에 12.9%포인트 떨어졌다.

20대의 이탈로 국힘은 ‘도로 미통당’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서울 구청장은 국힘 17곳, 민주당 8곳을 차지했다. 하지만 600표 차이로 승부가 갈린 중구를 비롯해 6곳이 3%포인트 이내의 박빙이었다. 이대남이 등을 돌리면 11대 14로 뒤집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122석에 그쳤던 20대 총선의 새누리당과 103석으로 주저앉았던 21대 총선의 미래통합당, 그게 5060만 바라보는 보수당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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