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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파일] 제임스웹과 누리호의 메시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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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8호 31면

이창균 경제부문 기자

이창균 경제부문 기자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 이하 제임스웹)이 인류의 시야를 넓히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지난해 말 발사한 제임스웹이 우주 깊숙한 곳들을 고해상도로 촬영한 영상과 분석 데이터를 이달 12일부터 공개하고 있다. 지구로부터 46억 광년(1광년=약 9조5000억㎞) 거리에 있고 태양 질량의 839조 배에 달하는 ‘SMACS 0723’ 은하단의 선명한 모습, 우주 생성 초기인 131억 년 전 외계은하의 위치와 모습, 외계은하 행성 중 하나인 ‘WASP-96b’ 대기에 물 성분이 존재함을 나타낸 분광 데이터 등이 공개됐다.

제임스웹은 주 반사경 지름 6.5m, 전체 길이 20여m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우주망원경이다. 크기만 압도적인 게 아니다. 관측 성능도 기존 ‘허블 우주망원경’의 100배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제임스웹은 적외선 감지를 위해 영하 223℃ 극저온 환경에서만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이를 위해 머리카락 두께보다 얇은 고분자막을 알루미늄으로 코팅한 5겹의 가리개가 태양빛을 차단한다. 이런 안정화에만 반년이 걸렸다. 발사 후 지구에서 150만㎞ 떨어진 목표 지점까지 도달하는 데 걸린 한 달은 제외한 기간이다. NASA는 제임스웹 개발에 25년의 시간과 100억 달러(약 13조원)의 비용을 쏟아부었다. 29개국 출신 1만여 명의 인원이 투입됐다.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촬영한 ‘SMACS 0723’ 은하단의 이미지. [AP=연합뉴스]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촬영한 ‘SMACS 0723’ 은하단의 이미지. [AP=연합뉴스]

당장은 제임스웹처럼 화려하지 않겠지만, 한국도 본격적인 우주시대를 맞고 있다. 자력으로 만든 첫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지난달 21일 성공적으로 발사됐고 다음달 3일엔 최초 달 궤도(탐사)선 ‘다누리호’가 발사대에 오른다. 지난달 이런 내용을 담은 기획 기사(본지 6월 11~12일자 8·9면) 보도 이후 몇 명의 원로 학자로부터 긍정적 피드백이 담긴 e메일을 받았다. 국내 척박한 우주개발 환경을 뒤로하고 수십 년간 기술 연구·개발과 실용화, 우주법 등 관련 분야 개척 등에 헌신했던 이들이다. 악조건을 딛고 우주강국을 향하고 있는 조국을 지켜보는 감회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누리호는 2010년 3월부터 개발됐다. 12년 만의 결실이다. 그사이 2조원의 예산과 250여 명의 인원이 투입됐다. 미국·러시아 등 다른 나라 도움 없이 맨땅에 헤딩해야 했다. 1.5t급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는 우주발사체라 군사적 목적으로도 쓰일 수 있어 국가 간 기술 이전이 금기시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시행착오도 있었다. 지난해 10월 1차 발사 땐 3단 엔진이 출력 부족으로 조기 연소돼 궤도 진입에 실패했다. 이 문제 해결에 또 반년이 넘게 걸렸다. 누리호 사업의 사령탑인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본부장은 TV 방송에서 “부족한 기술 정보를 하나라도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고 회상했다.

제임스웹의 25년과 누리호의 12년이 이끈 결실은 그래서 우주의 신비만큼이나 느낌표를 준다. 이토록 긴 시간을 들여, 수많은 인력이 괴로움을 참아 내며 굵은 땀방울을 흘렸을 때 고고한 우주도 비로소 우리에게 반갑다고 손짓을 한다. 단지 우주개발에서만 있는 일일까. 긴 관점에서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기초학문 분야의 성취 과정엔 우리한테 익숙한 ‘빨리빨리’가 없다. 조금 해 보고 안 되면 빨리 접고 다른 길을 찾으라며 주위에서 채근만 해서는 성취도 요원해진다.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걸어온 길이 구불구불했지만 그게 가장 빠른 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제임스웹과 누리호도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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