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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슈트·조거팬츠·버킷햇…패션쇼 런웨이 된 페어웨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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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8호 26면

강찬욱의 진심골프

타이거 우즈의 시그니처 패션. [AP=연합뉴스]

타이거 우즈의 시그니처 패션. [AP=연합뉴스]

외국에 골프를 하러 가면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한국 사람은 딱 보면 알겠어.” 이는 표정이나 말투, 걸음걸이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골프패션이다.

한국 골퍼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한국 골퍼들은 팔토시를 즐겨한다. 화려한 컬러와 눈에 띄는 디자인을 좋아한다. 피부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선크림을 많이 바르고 최근엔 선패치까지 등장했다. 한 외국인 친구가 SNS를 통해서 ‘그 눈 아래 붙인 게 뭐냐’고 물어봤던 경험이 있다. 분명한 것은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의 골퍼만큼 골프패션에 신경 쓰는 사람들은 없다는 것이다. 거리에도 패셔니스타들이 가득하지만, 대한민국의 필드 역시 패셔니스타들의 무대가 된다.  때론 페어웨이가 패션쇼의 런웨이가 되기도 한다.

필드에 옷 두세 벌 가져가 갈아입기도

최근 들어 과감한 스타일에 개성을 드러내는 디자인의 골프웨어가 국내에 크게 늘었다. [사진 FJ]

최근 들어 과감한 스타일에 개성을 드러내는 디자인의 골프웨어가 국내에 크게 늘었다. [사진 FJ]

골프 패션은 세상보다 늦게 변해왔다. 한마디로 보수적이었다. 클럽하우스에 입장할 때는 드레스코드가 있었고 ‘입어서는 안 되는’ 다소 엄격한 룰이 존재했다. 골프장에서 오는 예약문자에 아직도 자켓을 입으라든지, 슬리퍼를 신고는 입장이 안 된다든지 하는 알림이 함께 오기도 한다. 불과 10여년 전 만해도 자켓 뿐 아니라 청바지를 입고 클럽하우스에 오면, 클럽하우스 옆에서 준비된 양복팬츠로 갈아입고 입장해야하는 골프장도 있었다.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동남아시아의 골프장에서 칼라가 없는 셔츠를 입었다가 플레이 할 수 없다고 해서 프로 숍에서 급하게 칼라가 있는 셔츠를 구입했다는 경험담도 충분히 있을만한 일이었다. 드레스코드에 엄격한 골프 선배들은 바지 안에 반드시 셔츠를 넣어 입었다. 셔츠를 밖에 내어 입은 동반자들에게 넣어 입으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 역시 이제 ‘그런 때도 있었지’라는 추억팔이가 돼버렸다.

주말골퍼들은 선수들의 패션을 따라간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등장하고 난 후의 남자 골퍼들의 패션을 보자. 타이거 우즈가 쓰는 야구 모자 타입의 모자에 ‘선데이 레드’라고도 불리는 레드 셔츠 그리고 블랙 팬츠가 한동안 대한민국 남자골퍼의 표본과 같은 적도 있었다. 예전의 골퍼들은 비슷비슷한 골프 옷들을 고르면서 패션이라는 생각보다는 ‘운동복’이라는 개념으로 옷을 고르기도 했다.

‘필드 위의 패셔니스타’라고 불린 스웨덴 골퍼 야스퍼 파르네빅은 골프 모자를 뒤로 제쳐 썼다. ‘오렌지 보이’ 리키 파울러는 힙합가수들의 스냅백을 골프모자로 쓰는 파격적인 패션 행보를 보였다. 이 역시 기존의 틀을 전격적으로 뒤집는 급진적인 패션이라기보다는 부분적인 진화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패셔니스타 하면 제일 먼저 언급되는 이안 폴터나 폴라 크리머,  나탈리 걸비스 역시 오늘의 필드패션으로 보면 모범생에 가까운 패션이었다.

어쩌면 골프패션은 대한민국의 주말골퍼들이 주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공수부대의 점프슈트를 연상시키는 골프 옷을 입는다. 언뜻 보면 트레이닝복 같은 조거팬츠를 입는다. ‘벙거지’라고 하는 버킷햇을 쓴 대한민국의 골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후디를 입고 코스에 등장한다. 골프 드레스코드의 마지막 보루라고 여겼던 칼라있는 셔츠 대신 라운드 셔츠를 입는다.

최근 들어 과감한 스타일에 개성을 드러내는 디자인의 골프웨어가 국내에 크게 늘었다. [사진 FJ]

최근 들어 과감한 스타일에 개성을 드러내는 디자인의 골프웨어가 국내에 크게 늘었다. [사진 FJ]

셔츠에 타이를 매고 스포츠 자켓을 입은 것이 초창기 골퍼들의 모습이었다.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의 공동 설립자이자 미국 아마추어 골프의 레전드 바비 존스가 그랬다. 미국인으로서 디 오픈을 최초로 우승한 월터 헤이건은 슈트보다도 더 클래식해 보이는 골프 옷을 입고 플레이를 했다. 물론 당시 여자 골퍼들은 드레스에 가까운 긴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그러다 2차 세계 대전 후에 벤 호건, 샘 스니드가 폴로셔츠를 입기 시작하면서 타이를 매는 대신 칼라있는 폴로셔츠를 입게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칼라있는 셔츠를 입어야한다는 드레스코드가 된 것이다. 이제 칼라에 대한 골퍼들의 약속은 곧 사라질 듯하다.

시대는 유행을 만든다. 그 유행에 무심했던 골프가 유행을 주도하는 시대가 됐다. 골린이들이 늘었고 그들의 SNS가 퍼뜨려지기 시작했다. 골프 옷을 멋지게 차려입은 골퍼의 사진과 영상은 왠지 안하면 뒤처지는 것 같은 필수과제가 되어버렸다. 옷을 렌트해주는 서비스가 생겼고, 어떤 골퍼들은 옷을 두세 벌 가져가서 갈아입으면서 사진을 찍는다고도 한다.

문제는 이 패션에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하나씩 골프웨어 브랜드가 런칭된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다 보니 작년에 유행했던 브랜드가 혹은 디자인이 1년 지나서 다시 꺼내 입기 싫다는 골퍼가 있다. 골프 옷의 가격은 또 어떤가? 골프에 진심인  골퍼들을 이용해 사심을 채우는 것은 아닌가. 셔츠 하나에 스커트 하나에 양말 하나에 이렇게 비쌀 일인가. 대한민국처럼 골프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그 비용 중에 옷이 비싸서 골프를 못 하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블랙·화이트 컬러 옷 유행과 관계없어

여기서 몇 가지 생각해 볼 것들이 있다. 꼭 골프 옷을 입어야 하는가? 한 친구에게 이 셔츠 예쁜데…라고 얘기했더니 “골프 옷 아니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 바지 예쁘다”라고 했더니 골프 옷이 아닌 비교적 저렴한 스파브랜드라고 했다. 활동하기 불편하지만 않다면 굳이 골프 옷을 입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아직도 테니스복과 골프복, 배드민턴복의 차이를 모르겠다.  골프로고가 박혀있는 모자만이 골프 모자는 아니지 않은가? 반드시 골프 브랜드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골프 패셔니스타인 지인은 절대 로고나 브랜드가 크게 프린트 돼있는 옷은 사지 않는다고 한다. 그 브랜드가 언제 유행이 지난 브랜드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브랜드 때문에 산 옷인데 브랜드 때문에 안 입게 된다는 역설이다.

해마다 유행하는 컬러가 있다. 원색이 유행할 때가 있고 무채색이 유행할 때가 있고 파스텔톤의 컬러가 유행할 때가 있다. 한 골프패션 관계자는 “유행에 관계없는 컬러가 블랙과 화이트다. 이 두 가지 컬러의 상하의를 갖고 있으면 어떤 컬러와 매칭을 해도 어울린다”고 말한다. 어쩌면 유행과 관계없는 것이 아니라 블랙&화이트는 항상 유행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자나 양말 같은 소품을 다양하게 연출함으로써 색다르게 코디한 느낌을 주는 것도 실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골프 옷은 더 이상 운동복만이 아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렇다. 필드 밖에서는 그리 과감해 보이지 않았던 사람도 필드 안에서는 용감무쌍한 패션을 선보일 때가 있다. 노란색, 보라색을 필드가 아니면 어디서 입겠는가?

다만 골퍼로서 바란다. 멋있으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의 골프웨어 브랜드가 더 많아지길. 골프의 대중화는 더 많은 사람이 골프를 하는 것만이 아니다. 더 쉽게 합리적인 비용으로 하는 것이다.

강찬욱 시대의 시선 대표.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했고, 현재는 CF 프로덕션 ‘시대의 시선’ 대표로 일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골프의 기쁨』 저자, 최근 『나쁜 골프』라는 신간을 펴냈다. 유튜브 채널 ‘나쁜 골프’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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