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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같은 정책…신자유주의 맹비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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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8호 23면

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

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

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
폴 크루그먼 지음
김진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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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본주의의 역사는 위기의 역사다. 지금 우리가 겪는 고물가·저성장의 경제 위기도 사실 따지고 보면 처음이 아니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세계를 휩쓸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러자 미국과 유럽에선 자본주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중심에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의 이론을 따르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있었다.

80년대 미국에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영국에선 마거릿 대처 총리가 신자유주의를 경제 정책의 전면에 내세웠다. 이후 미국 공화당은 신자유주의를 당의 핵심 이념으로 받아들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전까지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전성기를 누렸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신자유주의에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낸다. 신자유주의의 핵심 강령은 ‘작은 정부, 세금 감면, 규제 완화’다. 저자가 보기에 이런 주장은 실제 사람들의 생활을 나아지게 하기는커녕 해롭기만 하다. 죽지 않고 사람을 괴롭히며 돌아다니는 ‘좀비’와 닮았다고 하는 이유다. 저자는 “좀비 아이디어는 반증에 의해 이미 쇠멸됐어야 하는데 여전히 비척비척 걸어 다니며 사람들의 뇌를 파먹고 있다”고 말한다.

노벨상 수상자인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지난달 스페인에서 연설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노벨상 수상자인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지난달 스페인에서 연설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는 저자가 뉴욕타임스(NYT) 등에 기고한 글을 중심으로 주제별로 분류했다.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쓴 글을 모았다. 조지 W 부시(공화당) 대통령에서 버락 오바마(민주당) 대통령을 거쳐 도널드 트럼프(공화당) 대통령에 이르는 시기다. 미국에선 2020년에 펴낸 책이다. 그래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한 내용은 서문에만 잠깐 나온다.

저자는 감세, 사회보장 축소, 기후변화 부정 같은 공화당 정강·정책을 좀비라고 규정하며 맹렬히 공격한다. 그중에서도 트럼프의 경제 정책을 비판하는 데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트럼프의 감세안에 대해 저자는 “역사상 최악의 세금 사기”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부자 감세라는 마법에 보내는 광신이야말로 최강 좀비”라고 말한다.

반면 오바마 집권 시절 ‘오바마케어’라고 부르는 의료보험 개혁은 높이 평가한다. 저자는 “(오바마케어는) 미완성의 불완전한 개혁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결함에도 기본적 의료보험을 미국 국민 수천만 명에게 확대했다”고 소개한다. 다소 아쉬운 점은 있지만 공화당의 극렬한 반대에도 이 정도 개혁을 성공시킨 건 매우 잘한 일이란 얘기다.

신자유주의를 부정한다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하자는 건 당연히 아니다. 저자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건 케인스주의다. 30년대 세계 대공황 때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정부가 적극적으로 돈을 풀어 시장에 개입하자고 주장한다. 저자는 “모든 사람은 합리적이고 시장은 완벽하게 작동한다는 가정을 포기해야 한다. 케인스를 다시 포용하자”고 말한다. 그러면서 ‘작은 정부, 세금 감면, 규제 완화’를 대체하는 ‘큰 정부, 부자 증세, 환경규제 강화’를 내세운다.

과거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외팔이 경제학자를 데려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영어식 표현으로 ‘한편으로(on the one hand)’ ‘다른 한편으로(on the other hand)’라면서 경제 정책의 장단점을 균형 있게 지적하는 경제학자들이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신자유주의 비판은 명백히 한쪽으로 편향돼 있다. 트루먼이 말한 외팔이 경제학자의 분류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다른 쪽 팔을 찾아내 균형을 맞추는 건 독자의 몫이다.

덧붙이자면, 저자가 책의 맨 뒤쪽에서 남긴 암호화페에 대한 견해는 별도로 읽어볼 만하다. 참고로 신자유주의 경제학 논쟁과는 관계가 없다. 2018년 7월에 쓴 이 글의 부제는 “내가 암호화폐 비관론자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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