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의 '스펙트럼'은 무슨 뜻? 변화와 낙인의 역사[BOOK]

중앙일보

입력 2022.07.22 14:30

업데이트 2022.07.22 16:22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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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은 없다
로이 리처드 그린커 지음

정해영 옮김

메멘토

'탄환 충격'은 제1차 세계대전 무렵, 군인들이 전쟁 중에 겪는 정신적 고통을 불렀던 말이다. 처음에 미 육군 의사들은 '히스테리'라고 불렀는데,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과연 단일한 질병을 뜻하는지 불분명했고, 무엇보다 군인들의 수치심을 불렀다. 당시 '히스테리' 는 여성의 신경증으로 여겨졌다. 감정 조절을 못 한다는 암시이기도 했다.

반면 '탄환 충격'은 신체적 외상을 직접 입지 않았더라도 폭발 현장 가까이에서 그 영향을 받았다는 함의가 있었다.  군인들의 증상은 '히스테리'로 불린 것과 다르지 않았지만, 수치심을 덜어주는 이 표현은 독일·영국으로도 퍼졌다. 그만큼 이런 증상을 겪은 군인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이 책 『정상은 없다』에 따르면, 현대의 전쟁은 과학기술만 아니라 정신의학 발전에도 중요한 계기였다. 전쟁이 끝나면 그전으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되긴 했어도, 정신 질환에 대한 부정적 낙인을 종종 바꿔놓기도 했다. '탄환 충격'이 흔해진 것은 누구라도, 용감한 군인도 신경증을 앓을 수 있고 불명예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메시지였다. 미국 정신과 매뉴얼 『정신 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약칭 DSM이 처음 만들어진 것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다.

책 '정상은 없다'의 저자 로이 리처드 그린커. [사진 메멘토]

책 '정상은 없다'의 저자 로이 리처드 그린커. [사진 메멘토]

미국의 문화인류학자가 쓴 이 책은 여러 역사적 사실과 함께 정신 질환의 낙인이 어떻게 형성됐고,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취지는 뚜렷하다. 사회적 낙인은 정신 질환 치료의 최대 장애물로 꼽힌다. 저자에 따르면 낙인은 정신 질환의 생물학적 특징이 아니라 문화가 만든 것, 사회적으로 학습된 것이다. 학습 내용은 바꿀 수 있다. 예컨대 한국에서 '조현병', 일본에서 '통합실조증'이란 말을 쓰는 것도 과거 '정신분열증'이 지녔던 낙인을 덜어낸다.

책에는 저자의 집안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프로이트에게 직접 정신분석을 받은 할아버지를 포함해 증조할아버지부터 아버지까지, 3대가 정신과 의사인 집안이다. 자랑거리만 내세우는 건 아니다. 증조할아버지는 여성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가졌고, 정신병이 있는 사람을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여겼다. 이를 비롯해 책에 나오는 서로 다른 시대 다양한 전문가들의 지금과 차이가 있는 생각과 활동은 정신의학의 여러 개념과 관점이 변화한 과정과도 맞물린다.

그 중에도 주목할 것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스펙트럼'. 저자에게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딸이 있다. 최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인기 덕에 친숙해진 이 용어에는 정신의학계의 상대적으로 새로운 개념이 들어 있다. 자폐증을 범주적으로, 즉 질환이 있다 없다로 구분하는 대신 차원적으로, 즉 정상행동과 이상행동을 정도의 차이로 보는 것이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제작 에이스토리, KT스튜디오지니, 낭만크루. 편성 ENA채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제작 에이스토리, KT스튜디오지니, 낭만크루. 편성 ENA채널]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의 차이를 뚜렷이 구분되는 별개의 질환들로 나누는 것은 색의 스펙트럼을 뚜렷이 구분되는 별개의 색들로 나누는 것과 같다. 우리가 대개 노란색과 주황색을 쉽게 구별할 수 있지만, 정확히 어디에서 노란색이 끝나고 주황색이 시작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마도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조현병처럼 심각한 질환도 입원이 필요한 환자부터 전문 분야에서 직업적 활동을 하는 유명인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물론 "우리가 특별한 재능이나 천재성과 결부된 자폐증 유형만 중시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1998년 개봉한 영화 '레인맨'이 자폐를 수학적 능력과 연결했듯, 대중문화의 묘사는 또 다른 고정 관념을 낳을 수 있다. 그럼에도 저자의 방점은 분명해 보인다. "공개는 낙인을 지우는 반면 은폐는 낙인을 만든다."(471쪽)

책에는 자폐인을 고용하는 미국 대기업의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정신 질환의 낙인을 근대 자본주의가 만든 것으로 보지만 그 해법을 자본주의 안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위험의 존엄성'이란 개념도 눈에 띈다. 정신 질환이 있는 이들이 안전하게 보호돼야만 하는 게 아니라 직업적 활동 등을 통해 성공과 실패의 위험이 수반되는 성장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전쟁, 그리고 의료화는 이 책이 낙인을 조명하는 세 가지 초점이다. 이를 통해 정신 질환과 관련한 지금 시대의 여러 논점이 드러난다. 의료화는 정신 질환의 생물학적 특성을, 이른바 '망가진 뇌'의 문제라는 것을 강조하는 시각으로 이어진다. 이런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 낙인 역시 줄어들 것이란 보지만 저자는 '현대판 골상학'이라며 오히려 또 다른 낙인을 강화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데카르트 이래로 신체와 정신의 분리하는 관점의 문제도 지적한다. 의사는 물론 환자 스스로도 신체적 질환은 진짜이고 정신적 질환은 가짜인 양 여기게 만들기 때문이다.

책의 원제는 'Nobody's normal'. 책에는 수학적 평균값을 뜻하는 '정상'(normal)이 미국 사회에서 이상적 상태를 의미하게 된 계기와 함께 '정상성'의 허구성에 대한 비판이 실려 있다. 저자는 2000년대 중반 한국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대규모 역학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당시의 얘기를 비롯해 한국과 관련된 내용도 여러 곳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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