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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부처·원효·임제 가르침에서 지혜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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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탄탄 불교중앙박물관장

탄탄 불교중앙박물관장

나라가 어수선하다. 새 정부 초기의 혼란으로만 보기엔 여러 정황이 염려스럽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이라는 ‘3고’ 위기에다 경기 침체의 그림자까지 몰려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두 달 만에 30%대로 떨어졌다.

장관급 고위직이 잇따라 네 명이나 중도 사퇴해 인사 혼란이 빚어졌고, 여당 대표는 6개월 당원권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는 사태도 벌어졌다. 권력 실세라는 ‘윤핵관’ 인물들이 웃고 있는 얼굴 사진을 포털 사이트에 내걸자 “나라 안팎 사정이 한가해 보이냐”며 따끔하게 일침을 놓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대통령 취임식 전후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나라 혼란, 현실 바로봐야 하는데
엉뚱한 처방하면 부작용만 생겨
지도자는 삿된 주변인 멀리해야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처럼 나라가 뒤숭숭한 시점이니 2500여년 전 부처(佛陀)의 가르침으로 실타래처럼 꼬인 정국을 풀어보면 어떨까. 먼저 팔정도(八正道)가 해법이다. 팔정도의 첫 항목은 정견(正見)이다. 정견은 바른 견해를 의미하며, 팔정도 실천의 첫 항목 또한 수행으로 도달해야 하는 ‘바른 지혜’를 의미한다.

바른 판단을 하고 바른 지혜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견(邪見)이 끼지 않으면 된다. 대부분 인간은 경험하고 읽고 배운 것을 ‘세상의 전부’라 착각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경험과 지식을 들이대면 반사적으로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서로 다른 세계관이 충돌하는 이유다.

원효(元曉·617~686) 대사가 『화쟁론(和諍論)』에서 ‘장님과 코끼리 일화’를 거론한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코끼리 다리를 만진 장님은 “코끼리는 기둥과 같다”고 하고, 배를 만진 장님은 “코끼리는 벽과 같다”고 한다. 여기서 장님은 불완전한 인간을 상징한다. 서로 옳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선 절대 온전한 코끼리를 알 수 없다.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코끼리는 영원히 기둥과 같고, 벽과 같다. 온전한 모습에 가까워지려면 서로의 주장을 내려놓고 상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치인이라면 서로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사람이나 당이 아닌 ‘사안’을 봐야 한다.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이라는 당나라 임제(臨濟) 선사의 가르침도 여기에 해당한다. 어디서든 스스로 주인이 되면 자신이 서 있는 그곳이 진리의 세계라는 의미다.

살불살조(殺佛殺祖), 즉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스승)를 만나면 조사를 죽인다는 말은 경계에 휘둘리지 말고 권위든 경험이든 관념이든 바른 판단을 속박하는 건 버려야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붓다의 이 설법은 상황에 맞춰 설법한 것이며 환자의 병에 따라 알맞게 처방을 내린 것이다. 사용법도 모르면서 받아들이면, 잘못 처방된 약을 먹는 것처럼 부작용이 생긴다.

진리를 공부하는 사람은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되며 국가 대사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는 삿된 주변인을 멀리해야 마땅하다. 임제 선사가 선문답(禪問答)할 때 “할(喝)”하고 고함을 치는 것으로 제자를 깨우치니, 제자들은 의미도 모르면서 “할”이라고 따라 했다. 이에 임제 선사는 제자들을 모아 말했다.

“사람 두 명이 와서 동시에 ‘할’ 하고 외쳤을 때, 과연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이냐. 일러보아라.” 제자 중 누구도 대답을 못 하자 임제 선사는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 알지 못하면, 다시는 ‘할’을 외치지 말라”고 꾸짖었다. 진정한 깨우침이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진리가 아니며,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서 스스로 깨우침에 이르는 길이다.

많은 사람이 의지하는 두 가지가 있으니, 유(有)와 무(無)다. 취함(取)에 부딪히기에 유에 의지하거나, 혹은 무에 의지한다. 이 유무의 두 극단을 떠난 중도(中道), 즉 진리로써 ‘세상의 생겨남(集)’과 ‘세상의 소멸(滅)’을 여실하게 바로 알고 보는 것(如實正知見)이 중요하다.

무언가가 세상에서 일어나고 또한 사라짐을 바로 보라는 것은, 곧 세상이 연기법(緣起法)에 의해 일어나고 소멸하는 이치를 보라는 것이다. 새로운 질서가 재편되는 이때 한쪽으로 치우친 이념으로 성급하게 국정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치국을 위태롭게 할 뿐이니 차분히 시간을 갖고 좀 더 지켜보자.

탄탄 불교중앙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