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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대우조선 해법은 ‘주인 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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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경제산업디렉터

김원배 경제산업디렉터

올해 상반기 전 세계에서 발주한 LNG운반선 89척 중 63척을 한국 조선업체가 수주했다. LNG운반선은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꼽힌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 조선업체는 올해 상반기 수주량에서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됐다. 2018년 이후 4년 만이다.

조선업이 회복 기미를 보이지만 국내 3대 조선사인 대우조선해양은 50일째 파업의 덫에 빠져 있다. 하청업체 노조원은 배를 만드는 작업장인 독(Dock)을 점거하고 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기는커녕 수렁으로 빠지고 있다.

하청노조 파업으로 손실 눈덩이
언제까지 정부 지원에 의존하나
해외 매각 뺀 모든 카드 검토해야

21일 거제시 옥포수변공원에 대우조선해양 정상화를 기원하는 파란 리본이 달려 있다. [연합뉴스]

21일 거제시 옥포수변공원에 대우조선해양 정상화를 기원하는 파란 리본이 달려 있다. [연합뉴스]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측은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 하루 3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달 말까지 파업이 이어지면 손실액이 8000억원으로 불어난다고 한다. 예정된 납기를 맞추지 못하면 배를 넘겨주고도 보상금을 따로 지급해야 한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대주주(55.7%)인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에만 1조6998억원의 적자를 냈다. 올해 3월 말 기준 자기자본은 1조7265억원이다. 자기자본은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수한 자기 돈을 말한다. 적지 않은 것 같지만 내용을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자기자본 항목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것은 수출입은행이 사준 2조3328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장기 전환사채)이다.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인 전환사채는 원래 부채이지만 이 경우는 만기가 30년인 데다 일정 시점까지 금리가 연 1%라 ‘자본’으로 인정된다. 신종자본증권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상은 ‘꼼수’에 가깝다. 요즘 같은 금리 상승기에 연 1%라는 금리는 상당한 특혜다. 일반 회사채 금리와의 차이는 그만큼 정부가 간접 지원을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적자가 계속되면 신종자본증권의 약발도 다한다. 자기자본이 전액 잠식되면 상장 폐지 사유가 된다. 결국 정부가 또 지원하지 않으면 연명할 수 없다는 의미다.

“국민이나 정부나 다 많이 기다릴 만큼 기다리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산업 현장에 있어서, 또 노사 관계에 있어서 노든 사든 불법은 방치되거나 용인돼서는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출근길에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파업 사태를 두고 한 말이다. 윤 대통령의 강경한 어조 때문에 공권력 투입이 임박한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그래도 현장에선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공권력을 투입해 파업을 끝내는 것으로 대우조선해양이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위험을 감수하고 시도할 만하다. 하지만 적자에 시달리는 대우조선해양이 경쟁력을 찾기 위해선 하청업체 근로자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진짜 오래 기다린 것은 대우조선해양 주인 찾아주기다. 산업은행의 그늘에선 자생력을 갖춘 회사가 되기 어렵다. 분식회계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도 신물나게 경험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이동걸 회장이 5년간 산업은행을 이끌며 대우조선해양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2019년 3월 현대중공업그룹에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지만, 올해 1월 유럽연합(EU) 경쟁 당국의 불허 결정으로 무산됐다. 돌이켜 보면 EU가 불허한 사유인 LNG선 독점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것이 뼈아프다.

산업은행은 EU의 불허 결정 이후 컨설팅을 통해 새로운 정상화 방안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아직 구체안이 나오지 않았다. 쌍용차의 사례를 볼 때 경쟁 관계에 있는 신흥국 기업에 매각하는 것은 상당한 부작용을 낳는다. 이를 제외한 모든 카드를 테이블에 올려 검토해야 한다.

대우조선해양과 협력업체 임직원도 민영화가 살 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적극 협조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대우조선해양 경영진의 역할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난 3월 임기를 시작한 박두선 현 대표이사는 문재인 전 대통령 동생과 대학 동기라는 이유로 취임 전부터 ‘낙하산 논란’에 휩싸였다. 박 대표가 회사 사정에 밝은 내부 인사인 것은 맞다. 하지만 지금은 무난한 관리자가 아니라 창의적인 정상화 방안을 내놓고 구성원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지난 2월 경남 거제의 유세 현장에서 “빠른 시일 내에 대우조선해양이 유능하고 능력 있는 주인을 맞이해 거제 지역 경제와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해답은 나와 있다. 정부는 파업 해결 못지않게 그 이후의 근본 해법을 준비하고 실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