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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루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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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위문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위문희 사회2팀 기자

위문희 사회2팀 기자

64개 칸으로 이뤄진 체스판에서 ‘룩’은 좌우 코너에 1개씩 자리한다. 성채의 탑처럼 생긴 말이다. 체스는 편당 6종류의 기물 총 16개를 가지고 경기한다. 킹·퀸(각 1개씩), 룩·비숍·나이트(각 2개씩), 폰(8개)이다. 상대편의 킹을 잡으면 승리한다.

우리 편 진용에서 가장 뒤편에 있는 룩은 엔드 게임(종반전)으로 갈수록 진가가 드러난다. 스포츠계에서 신인을 뜻하는 ‘루키(rookie)’의 어원이 룩과 관련 있다는 설이 있다. 룩은 나중에 나서기 때문에 그 경기에서 새로운 선수로 여겨진다.

미국 야구계에는 아예 ‘루키리그’가 있다. 고졸 신인이나 중남미에서 넘어온 유망주가 선을 보이는  곳이다. 마이너리그(MiLB) 중에서도 등급상 가장 낮은 리그다. 월급도 없으며 식비와 숙박비, 교통비를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루키리그에서 싱글A, 더블A, 트리플A를 거친 다음이 메이저리그(MLB)다.

MLB에서 16년간 뛰었던 추신수(40·SSG랜더스)도 루키리그부터 트리플A까지 마이너리그 과정을 단계적으로 밟았다. 부산고 졸업을 앞둔 2000년 고향 팀 롯데자이언츠가 1순위로 그를 지명했지만, 미국으로 건너갔다. 고교 시절엔 최고의 왼손 투수였지만 시애틀 매리너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외야수로 전향한 그다. 추신수의 『오늘을 즐기고 내일을 꿈꾸다』에 루키리그에서 마음고생 한 기록이 남아있다.

한국 여자 골프계가 ‘슈퍼 루키’ 등장으로 떠들썩하다. 올 시즌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 263.7야드(241.1m)로 1위를 기록 중인 윤이나(19·하이트진로)다. 윤이나는 지난 17일 경기도 양주 레이크우드 골프장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에버콜라겐 퀸즈 크라운에서 합계 20언더파로 우승했다. 정규투어 데뷔 첫해 14번째로 나선 시합에서 거둔 우승이다.

4라운드 내내 선두를 놓치지 않은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지만 막판에 고비도 있었다. 투어 8년 차 박지영에게 한때 선두를 내주고 역전당했다. 윤이나는 하지만 15번홀(파5)에서 3m 버디 퍼트를 집어넣고 다시 공동 선두로 복귀했다. 그리고 18번홀(파4)에서 6m 거리의 버디 퍼트에 성공해 우승을 확정했다. 윤이나의 루키 시즌이 항상 승리로만 장식될 순 없을 것이다. 고비가 올 때마다 첫 우승 마지막 라운드의 시합 내용을 기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