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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독직폭행' 무죄로 뒤집혔지만…法, 정진웅 꾸짖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채널A 사건’(이른바 검언유착 사건) 압수수색 과정에서 한동훈(48‧사법연수원 27기) 법무부 장관을 폭행한 혐의를 받는 정진웅(54‧29기)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차장검사)이 1심과 달리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은 정 연구위원에게 한 장관을 폭행할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에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정진웅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뉴스1·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정진웅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뉴스1·연합뉴스

판결문 뜯어보니…‘미필적 고의’ 판단, 유‧무죄 갈랐다

서울고법 형사2부(이원범‧한기수‧남우현 부장판사)는 이날 21일 정 연구위원의 항소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날 “독직 폭행의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 이상 독직폭행 유죄가 유지될 수 없다”고 했다. 1심에서는 “휴대전화를 빼앗으려는 의사뿐 아니라 유형력 행사를 위한 미필적 고의가 있는 폭행이 인정된다”고 했었다.

항소심은 ‘압수수색 영장의 집행을 위해 휴대전화를 확보하겠다’는 의도 아래 행동하던 중 예상과 달리 정 연구위원과 한 장관이 바닥에 떨어지게 된 것이라면, 바닥에 떨어진 뒤 정 연구위원에게 갑자기 독직폭행의 미필적 고의가 별도로 생겨났다고 보는 것은 부자연스럽다고 봤다.

미필적 고의란 고의의 일종으로 범죄 발생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고, 나아가 범죄 발생 위험을 용인하는 마음 속 의사를 일컫는다. 앞서 대법원은 당시 행위의 형태와 상황 등 구체적인 사정을 기초로 일반인이라면 범죄가 벌어질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고려해서 미필적 고의가 있는지 심리 상태를 추측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항소심은 당시 제반 사정에 비춰 정 연구위원이 한 검사장의 신체에 유형력을 행사하게 되는 결과가 벌어질 가능성에 대해 알았거나 이를 용인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정 연구위원이 소파에 앉아있던 한 장관(당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휴대전화를 향해 손을 뻗을 당시 ‘압수수색 영장의 집행을 위해 휴대전화를 확보하겠다’는 의도만이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한동훈 검사장과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이 몸으로 부딪힌 모습. 오른쪽은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유심 카드. 삽화=김회룡 기자aseokim@joongang.co,kr

한동훈 검사장과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이 몸으로 부딪힌 모습. 오른쪽은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유심 카드. 삽화=김회룡 기자aseokim@joongang.co,kr

한 검사장이 몸을 피하는 방향으로 정 연구위원이 이동하며 휴대전화를 확보하려던 과정에서 중심을 잃고 한 검사장 몸 위로 쓰러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 한 검사장과 정 연구위원이 소파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질 때까지의 시간 간격은 매우 짧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도 거론됐다.

다만 재판부는 “이 사건 직후 이뤄진 객관적 확인 절차에 의하면 한 검사장의 증거인멸 시도 등은 없었다고 보이는 바, 정 연구위원의 행동이 적절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증명이 부족해 형사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직무 집행이 정당했다고 확인하는 취지가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다시 직무에 복귀하더라도 영장 집행 과정에서 행동에 부족했던 부분과 돌발 상황에서 피해자가 겪어야 했던 아픔을 깊이 반성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한 장관은 재판 이후 “법무부장관으로서 개인 관련 형사사건에 대해 입장을 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정 연구위원은 “검찰과 1심이 오해했던 부분을 (2심이) 바로잡아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한 장관이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는 생각에 변화가 없느냐’는 취재진 질문에는 “재판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어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답했다.

앞서 정 연구위원은 1심에서 정당한 업무 수행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유죄가 인정돼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친정인 검찰에 많이 서운하다”며 “압수수색 상황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한 상황이었을 뿐 당시 검사장(한 장관)을 폭행하거나 할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판결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며 상고할 뜻을 내비쳤다. 수사팀은 입장문을 통해 “항소심이 피고인의 직무집행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나아가 잘못된 유형력 행사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유형력 행사에 대한 피고인의 고의를 부정한 것은 순간적으로 이뤄지는 유형력 행사와 그에 대한 고의를 인위적으로 분리한 것이므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항소심 판결에 대해 상고해 항소심 판결의 위법성을 적극 다툴 예정”이라고 밝혔다.

채널 A 사건 뭐길래…독직폭행 논란까지  

정 연구위원은 2020년 7월 법무연수원에서 당시 검사장이었던 한 장관의 휴대전화 유심칩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한 장관이 유심칩 내용을 훼손하려고 한다고 오인해 그를 넘어뜨리고 목을 눌러 전치 3주의 부상을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정 연구위원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으로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와 한동훈 장관이 유착돼 유시민씨 관련 비리 의혹을 쟁점화하려 했다는 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을 수사 중이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 발동 다음날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날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차량에 탄 채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 발동 다음날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날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차량에 탄 채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이는 소위 ‘추·윤 갈등’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헌정 사상 최초로 검찰총장 지휘권을 박탈하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윤석열 전 총장(현 대통령) 직무정지에 이어 징계를 청구하면서 ‘채널A 사건 감찰·수사 방해’를 사유 중 하나로 제시했다. 다만 강요미수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동재 전 채널A 기자는 무죄가, 한 검사장은 “증거 관계상 공모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이후 정 연구위원은 1심 유죄 판결 이후 당시 한 검사장이 좌천돼 근무했던 보직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인사 조치됐다. 추 전 장관과의 갈등으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사법연수원 부원장 등 4차례 좌천당했던 한동훈 당시 검사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뒤 법무부 장관으로 파격 발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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