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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경호원 목졸랐다"…400일간 파헤친 美치욕의 그날 [똑똑, 뉴스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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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독자 임진경(가명) 님의 문의를 받아 작성했습니다.  

리즈 체니 미국 하원의원이 지난 12일 '1·6 사태' 진상조사를 위한 청문회 개회를 선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리즈 체니 미국 하원의원이 지난 12일 '1·6 사태' 진상조사를 위한 청문회 개회를 선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1일 오후 8시(현지시간), 미국 하원의 ‘1‧6 의회난입 조사 특별위원회(특위)’가 사실상 마지막 청문회를 연다.

특위는 지난해 1월 6일 발생한 미국 연방 국회의사당 난입‧폭동 사태(1·6사태)에 대한 전말을 밝히기 위해, 초당적 차원에서 구성됐다. 지난해 6월 9일 출범해 408일 간 1000여 명의 증인 심문, 14만 건의 문서 검토 등 대대적인 조사를 벌여왔다.

특위의 칼끝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트럼프)을 겨누고 있다. ‘의회 폭거’로 불리는 그날, 트럼프가 배후에서 무엇을 부추기고 지시했는지 낱낱이 밝히는 게 목표다.

트럼프는 2024년 차기 대선 출마에 마음을 굳힌 상태다. 특위는 21일 8번째 청문회에서 송곳 검증을 통해 트럼프의 불법성을 밝혀내겠다는 각오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2021년 1월 6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을 습격하며 벽을 타고 기어오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2021년 1월 6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을 습격하며 벽을 타고 기어오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대선 불복이 부른 초유의 폭거

2021년 1월 6일은 ‘2020 미국 대선’ 결과를 최종 마무리하는 날이었다. 각 주(州)가 실시한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승인하기 위해 연방의회의 상‧하원 합동회의 일정이 잡혀있었다.

알려진대로, 당시 대선에서 공화당 소속 대통령 트럼프가 민주당 후보 조 바이든에게 일반투표에서 700만 표 이상 뒤졌다. 선거인단 수 역시 306 대 232로 바이든이 크게 앞섰다.

트럼프는 이 결과를 ‘빅 라이(Big Lie, 새빨간 거짓말)’라고 주장했다. 애리조나‧조지아 등 일부 경합 주에 조작이 있었다며 재검표를 요구하고 줄소송을 제기했지만 전부 패소했다.

6일, 격분한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백악관 앞에 집결했다. 이들은 의회의 ‘바이든 승리 선언’을 막으면, 대선 결과를 뒤집을 방법이 있을 거라 믿었다. 트럼프는 “여러분들이 지독하게 싸우지 않으면 조국은 없다. 힘을 보여줄 때”라 연설하며 이들을 격동시켰다. 이에 수천명의 군중은 “도둑질을 멈추라”고 소리지르며 의사당을 향해 뛰어갔다.

광분한 트럼프 지지자들은 의사당의 경찰 저지선을 무너뜨리고 유리창을 박살낸 뒤 내부로 난입해 회의장과 하원 의장실을 점거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1명과 시위대 4명이 숨졌다. 모든 장면은 TV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2021년 1월 6일 워싱턴 의사당에 난입해 회의장을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사진은 의사당 로툰다 홀을 점거한 시위대.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2021년 1월 6일 워싱턴 의사당에 난입해 회의장을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사진은 의사당 로툰다 홀을 점거한 시위대. [EPA=연합뉴스]

美 치욕의 날…‘민주주의 후퇴국’ 오명도

국회의사당이 공격당한 건 1814년 영·미전쟁 때 영국군이 불을 지른 뒤 207년 만이다. 1‧6 사태는 외부의 적이 아닌 미국 시민이 국회의사당을 공격한 ‘미국 민주주의 치욕의 날’로 기억됐다.

세계 지도자들은 “미국 민주주의가 포위됐다”며 경악했다. 정부간 기구인 ‘민주주의와 선거 지원 국제기구(IDEA)’는 2021년 보고서에서 미국을 ‘민주주의 후퇴국’으로 분류하며 ‘트럼프의 대선 불복’을 이유로 꼽았다.

공화당 출신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역겹고 가슴 아픈 장면”이라며 “이런 식으로 선거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바나나공화국(부패 등으로 정국 불안을 겪는 후진국에 대한 경멸적 표현)에서나 있을 일”이라고 통탄했다.

1970년대 미국 최대 정치 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해 현직 대통령을 물러나게 했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워싱턴포스트 공동 기고문에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폭력 선동 대통령”이라며 “(워터게이트 사건의 장본인)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상상력조차 뛰어넘는 기만행위”라고 썼다.

이후 미국 사회는 ‘사실상 내전’이라 불릴 정도로 극심한 분열과 대립 상태다. 지난달 30일 AP통신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1‧6 사태에 책임이 있다는 응답자는 58%, 바이든이 지난 대선의 진정한 승자라고 인정한 응답자는 55%에 그쳤다. 정치평론가 시드니 블루먼솔은 “남북전쟁 때 남부 분리주의자도 링컨의 대선 승리는 인정했다”며 미국내 대립이 남북전쟁 수준 이상으로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합의를 위해 1‧6사태에 대한 명확한 진상 규명이 전제조건이라고 보고 있다.

2021년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미국 국회의사당을 에워싸고 있다. [AFP=연합뉴스]

2021년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미국 국회의사당을 에워싸고 있다. [AFP=연합뉴스]

청문회 1등공신, 20대 백악관 전 직원 허친슨

특위는 ‘그날의 전말’을 밝히기 위해 11개월의 사전조사에 이어 공개청문회를 진행 중이다. 지난달 28일 6차 청문회에선 전 백악관 직원 캐서디 허친슨(25)이 출석해 트럼프의 1‧6 사태 책임론에 기름을 끼얹는 메가톤급 폭로를 터뜨렸다.

트럼프의 밀착 수행원이었던 허친슨은, 폭동 당일 트럼프가 지지자들과 함께 의사당행(行)을 고집했다고 진술했다. 만류하는 경호원의 목을 조르고 운전대를 탈취하려 했다고도 했다. 이에 팻 시펄론 당시 백악관 법률고문이 트럼프에게 “지금 의회로 가면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범죄 혐의로 기소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증언했다.

시위대가 “(계획에 협조하지 않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교수형에 처하자”고 외치자 트럼프가 “그는 당해도 싸다”고 말했다고도 전했다. 또 “윌리엄 바 법무부 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선거 사기 주장에 대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말하자, 격분한 트럼프가 음식이 담긴 접시를 백악관 식당 벽에 던졌다”면서 “난 수건을 가져다 벽에 묻은 케첩을 닦았다”고 말했다.

앞서 1차 청문회에선 트럼프의 장녀이자 전 백악관 선임보좌관인 이방카 트럼프가 화상으로 참석해 트럼프의 부정선거 주장을 부인하는 증언을 해 화제가 됐다.

전 백악관 직원인 캐서디 허친슨이 청문회에 출석해 증인석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AFP=연합뉴스]

전 백악관 직원인 캐서디 허친슨이 청문회에 출석해 증인석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AFP=연합뉴스]

특위의 최종 보고서, 美대선 판도 가를까

8차 청문회는 특위 일정상 마지막 청문회다. 다만 제보‧증언 등의 이유로 추가 청문회를 여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특위는 이번 청문회에서 1‧6사태 당시 트럼프의 직무 유기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증인으로 시펄론 전 백악관 고문, 트럼프의 전 책사였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 전략가가 출석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특위는 이르면 9월, 늦어도 11월 중간선거 전에 최종 보고서를 낸다. 여기에 트럼프에 대한 기소의견이 담길 가능성이 크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2024년 치러질 차기 대선에 미칠 영향은 작지 않다. 특위가 트럼프의 행동을 명백한 헌법 위반으로 규정하면, 대선 재출마 의사를 밝힌 트럼프의 정치생명이 중대 기로에 놓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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